지난주 10년간 계속 책을 읽고 있다는 글을 쓰다 보니 예전에 읽은 책 목록이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2014년부터 기록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매일 글을 쓰지도 않았고 어쩌다 한 번씩 몰아서 일기나 인상 깊은 책이야기를 썼다.
바쁜 생활 중 조금의 틈이 생기면 뭐라도 쓰곤 했지만 노트 한 권을 다 채우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다이어리에는 스케줄 외에 그날의 일을 5~6줄 정도 짧게 써놓았는데 그게 생각보다 재밌었다.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는데 그 짧은 글을 보니 그 당시의 생활이 훤히 보이고 ‘아 이런 일도 있었지’ 하고 기억이 났다. 안타깝게도 그 기록은 일 년을 못 채우고 중단되어 있었다.
그래도 읽은 책 목록만은 꾸준히 적어놔서 무슨 책들을 읽었는지 알 수 있었다. 책을 막 읽기 시작해서인지 책을 읽으면 삶이 달라진다는 내용이나 좋은 책을 소개하는 책 읽기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있었다. 그리고 미니멀라이프와 정리에 관한 책들을 더 이상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읽고 있었다.
일본의 유명한 정리 전문가와 미니멀라이프에 관련된 책을 좋아해서 정말 많이 읽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좋아했던 도미니크 로로의 책은 전부 읽었고 새로 출판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비슷한 내용일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책은 필사도 꼼꼼히 해놓았는데 다시 읽어보니 책의 내용을 많이 따라 하고 있었고 그렇게 변화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10년의 세월 동안 무의식에 자꾸자꾸 새기다 보니 어느새 내 행동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왜 책을 읽는데도 난 그대로인지 왜 나쁜 습관을 고치지 못하는지 한탄하는 일기를 많이 썼던데 이렇게 긴 시간을 지나고 보니 나도 모르는 새 그런 행동들이 스며들어 있었고 나의 의식이 많이 변했음에 깜짝 놀랐다.
미니멀라이프 책을 많이 읽다 보니 나의 잘못된 소비습관이 보이고 무지했던 경제관념에 대한 깨달음이 생기면서 경제 관련 책들도 읽었다. 부동산이나 경제생활에 대한 의식을 깨워주는 책과 부자 되는 법 같은 책들도 많이 읽었다.
나와 남편은 정말 경제관념이 부족하다. 돈에 대한 두려움만 많고 어차피 모아도 큰돈이 되긴 어렵다는 합리화를 하며 제대로 된 저축과 경제 계획이 없었다. 사실 아이 둘 키우며 양가에 용돈도 드리고 2년마다 오르는 전세금을 올려주기에도 빠듯했다.
투자나 부동산에 대한 통찰력을 키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돈 문제를 회피했다. 당장 쓸 돈은 부족하지 않았기에 충동적으로 돈을 쓰는 일도 많았다. 집은 언젠가 폭락하면 사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현재의 경제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계획적인 경제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도 책을 보고 배웠다. 부동산에 대한 감각도 그렇게 키웠고 일본 같은 대폭락이 오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집을 살 수 있었다.
2018년 대폭등이 오기 직전 우리 수준에 맞는 집을 살 만큼 현실감각을 키울 수 있었다. 전세로 살던 동네의 비싼 집을 언젠가 살 수 있겠지 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그 동네의 집이 폭락하기만을 기다린 게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대출을 낼 용기만 냈어도, 소비를 줄이고 그렇게 현실에 맞게 살 용기를 조금 더 일찍 냈었으면 하고 후회하지만 지금 집이라도 산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깨닫고 있다.
2016년부터는 건강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있었다. 시어머니가 뇌종양 말기 진단을 받으시고 투병을 시작하신 해다. 그때 어머님을 대학병원에 모시고 다니고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위중한 상태가 되어 요양병원에 모시면서 병마에 시달리는 많은 분들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나의 노후도 저럴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고 이제부터라도 몸을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건강 서적들을 찾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건강하다는 음식, 그냥 스쳐 들었던 막연한 건강상식이 다 옳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요한 건 좋은 음식도 내 몸에 맞지 않으면 소용없고 약만 먹으면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몸에 대한 판단을 남에게만 맡겨서는 안되며, 몸의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건강한 생활 습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등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내 몸을 그냥 병원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사실 시어머님도 이미 뇌종양 말기였기에 차라리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았더라면 좀 더 명료한 의식으로 가족들과 이별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 당시 치료를 받으면 받을수록 무너져 내리시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노인들은 병이 악화되는 속도도 느리기에 차라리 치료를 받지 않았으면 마지막 삶의 질이 오히려 높았을 거라는 생각이 지금까지 종종 든다.
의사에게 이렇게 힘들어하시는데 치료를 받으면 얼마나 더 사실 수 있냐고 물었더니 “3개월?”이렇게 얼버무릴 때 멈췄어야 했을까? 의식 없이 3개월 연명하기 위해 그 힘든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받아야 했을까? 그때는 모두 그런 일이 처음이라 의사가 하라면 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자식 된 도리로 치료를 멈추겠다는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다.
그때부터 내 몸을 무조건 다른 사람의 판단에 맡겨서는 안된다는 것과 몸 공부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독서목록은 당시 상황과 문제에 따라 채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책을 읽어가면서 그 분야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과 판단을 해나갈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상대방의 의견을 무기력하게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내 몸과 영혼에 관한 일은 평소에 잘 알고 의식하고 있어야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나에게 가장 잘 맞는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걸 배우게 됐다.
지금도 텔레비전을 틀면 갱년기엔 당연히 병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없던 병도 만들어내며 뭔가를 먹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방송 천지다. 치매, 뇌졸중, 심장마미, 관절통증 등등 각종 중증 병명을 들이대며 두려움과 건강염려증을 조장하는 건강하지 않은 건강방송과 쇼닥터들이 매일 아침 떠들어댄다.
사람의 몸까지도 뭔가를 팔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지금 내 몸을 지키기 위해 몸에 대한 공부는 필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다가는 하루에 몇 십 알이 넘는 약을 털어 넣으며 그들의 돈벌이에 내 건강을 돈을 쓰며 내어주기 십상이다.
내 독서 목록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심리학과 마음을 다스리게 도와주는 영적스승들의 책이다. 종교가 있는 분들이 성경이나 불경 공부를 하듯이 그런 책들을 읽고 필사하며 마음 닦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고 깨달은 건 내가 어떤 면을 감추고 있었는지 그래서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 원인을 외부에서 찾을 때는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고 피해의식만 가득한 채 불행했다.
가족이나 자식 문제도 그 방향을 나에게 돌리고 내가 변하자 문제가 스르르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많은 책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것이다.
문제를 대할 때의 나의 태도와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는 깊은 이유를 찾으면 나의 본질적인 모습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그게 시작이다. 나를 의식하고 알아나가는 것이 시작이다. 그렇게 무의식 속 깊이 감춰왔던 자신의 본모습과 감정들을 마주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길이 보이고 방법이 찾아졌다.
남 탓을 하며 타인을 바꾸려 해서는 그 문제가 반복되는 결과만 초래한다. 문제는 늘 자신을 돌아보라는 신호였다. 내가 깨달아야 할 것을 보여주고 알려주기 위해 생기는 것이 인생문제였다. 그렇기에 문제를 두고 서로 상대방을 바꾸기 위해 힘을 쓰고 비난해서는 관계의 단절만을 초래하고 사랑은 메말라 버린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책을 읽으며 내 세상이 풍성해지자 그 찬란한 세계 속에서 나는 더 이상 피해의식에 가득 찬 열등하고 분노에 사로잡힌 혼돈스러운 존재가 아니었다. 내가 누군지 잘 알고 나만의 방향으로 드디어 항해를 시작한 온전한 사람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