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훈 < 잘될 수 밖에 없는 사람>을 읽고
최재훈이라는 심리학자의 <잘될 수밖에 없는 사람>을 읽었다. 그 책에는 ‘Big5 성격검사’라는 간단한 성격검사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우호성, 신경성의 5가지 영역에 대한 문항으로 성격을 살펴보는 방식이다. 각 항목 당 18문항으로 전체 90문항이다. 검사를 해보니 나는 모든 영역에서 평균보다 높은 점수가 나왔다.
성격을 분석하는 내용 중에 ‘불편한 관계가 너무 싫어 : 갈등 공포증’이라는 섹션이 있었다.
“ 갈등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이하 '콘포비아‘로 지칭)의 특징은 다음과 같아요.
1. 갈등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누구보다도 잘 감지한다.
2. 갈등의 당사자가 자신이 아니더라도 갈등으로 인한 숨 막히는 분위기를 유독 못 견딘다.
3.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yes’를 외치거나 굳이 스스로 나서서 상황을 정리한다.” 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이에 대응하는 콘포비아의 성격 요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고 개방성 :감수성이 풍부하고 상황이나 사람에 대해 호기심이 많아 주위에 항상 열러 있다.
2. 고 신경성 :스트레스에 민감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체감한다.
3. 고 우호성 :관계에 민감하고 나의 불편감보다 타인의 불편감을 해소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
바로 나였다. 난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거보다 남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불편해하는 상황을 유난히 견디지 못한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숨겨져 있는 부당함, 상호작용 중에 나타나는 특정한 사람의 이기적이고 배려 없는 요구에 민감하다.
나에게 그러는 거는 그냥 맞춰주고 만다는 생각으로 지나쳐 갈 수 있는데 힘든 상황인 게 뻔한 누군가에게까지 자신의 요구에 맞추기를 은근히 강요하는 듯한 언사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발견하고 참기 힘들 만큼 분노가 치밀곤 한다.
이러는 내가 이해되지 않아 한동안은 그런 상황을 흐린 눈으로 넘어가 보려고도 했다. 정작 그 대상자가 괜찮다는데 오지랖 떨지 말자, 이해하자라고 생각하며 무던한 척 넘기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다 최근에 나의 성향에 맞지 않는 그런 사람들을 참는 일에 큰 한계를 느끼게 됐다.
남에게 맞추느라 에너지가 다 소진되는 상황을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고 이해되지도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부모나 배우자, 자식이라면 그렇게 고민하고 힘들어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그렇지도 않은 사람들 때문에 이러는 나 자신이 나도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 그 답이 있었다. 난 그런 성격이었다. 그렇게 태어났고 살아왔는데 그걸 억지로 참고 견딘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책에는 도움이 되는 해결 방법도 소개하고 있었다.
“ 내 주변의 규모를 확 줄이면 됩니다. 이는 관계의 미니멀리스트가 되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갈등이 거의 일어나지 않을 만큼 관계를 확 줄여 버리는 거예요. 나와 맞는 소수 정예의 사람만 남겨 놓고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해 보세요. 그러고 나서 나의 초감각을, 나의 초친절함을 내 주변의 핵심 인물들에게만 베푸는 거예요. 다소 가혹해 보여도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몰라요”
맞다!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말이 맞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에너지 소모가 컸고 힘들었다. 나를 보호하고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관계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해오고 있었는데 이 책이 확신과 자신감을 주었다. 이 책을 만나건 운명인가 보다.
“ 갈등을 적절히 조율하며 살기 위해 콘포비아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1. 관계의 밀도와 범위를 재조정해 보세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
난 내가 조금이라도 친절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불편해서 싫은 소리를 전혀 하지 못한다. 싫은 소리도 아닌 그냥 일상적인 말도 상대가 마음이 상했을까 싶어 그 다음엔 과도하게 잘해주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그걸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 한정으로만 발휘할 생각이다. 조금 냉정해지고 거리를 두려고 결심한다.
“ 2. 갈등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 존재할 수밖에 없는 차이로 바라보세요. 갈등을 꼭 해결하거나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스스로에게 허락해 주세요. 감정을 공감하되, 책임까지 떠맡을 필요는 없습니다. "
이 문제는 사실 오랫동안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가 있는 채로 두고 볼 수 있도록 노력한 지는 오래됐다. 그런 모호함을 견디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생각이 맴도는 걸 멈추기 위해 밖으로 나가 걷거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거 같은 몰입할 수 있는 장치를 많이 만들어 두고 있다. 이 내용이 세 번째 해결책과도 연관되어 있다.
“ 3. 내가 가진 초감각을 갈등 해결이 아닌 창조와 기여에 사용하세요. 당신이 가진 초감각은 갈등을 예측하고 예방하기 위한 데이터로만 쓰기엔 너무 아까운 자원입니다. 이를 글쓰기, 상담, 예술, 창작 등 인간 내면에 귀 기울이는 작업이나 창조적 행위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이러한 예민함은 더 이상 짐이 아닌 섬세함이라는 능력이 됩니다.”
내가 많은 고민 끝에 찾아낸 지금의 생활 모습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기 위해 찾아낸 필사적인 삶의 모습이었다. 난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거 같다. 이런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우울증이나 알콜 중독자가 되었을 거 같다.
왜 아프냐고 화내며 자꾸 만져서 부풀 대로 부풀어 오른 상처를 쉬게 하고 돌보는 방법으로 산책을 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기를 선택한 건 나를 살리기 위한 나도 알 수 없는 긍정적 충동이었다.
나도 내가 이해되지 않는 마음의 소용돌이에 이러다 미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에게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까지 집착적으로 생각하고 해결하고 싶어 하는 나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난 고개방성, 고우호성, 고신경성이라는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였다. 내가 그렇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머리로만 아는 것과 달리 이렇게 객관적으로 수치화해서 드러난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가 훨씬 수월하다. 명확하고 간단해지는 거 같다. 큰 문제가 없어도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나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데 많은 도움이 될 거 같다.
모든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고 싶어 하고 집착적으로 고민하는 성격 때문에 진짜 상담이라도 받아야 하나 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힘든 인간관계에서 공통적으로 도출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해답은 역시 내 안에 있었고 내 생각이 맞았다.
그 사람이 저 우호적이고 저 개방적인 무신경한 사람인 것도 받아들이고 나의 성격적 특징도 조금은 더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거 같다.
그렇게 맞지 않는 사람까지 끌어안고 맞추려 노력할 필요없이 결이 맞는 비슷한 사람들과만 만나야 한다는 거다. 고 우호성과 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사람들을 좋아하고 깊고 의미 있는 인간관계가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했기에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지금까지 끌고 오며 고통을 받았던 거였다.
이제는 혼자 남을 용기를 내 보려고 한다. 다행히 나와 아주 잘 맞는 한 줌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존재인 가족과는 잘 맞는다.
남편과 아이들은 나와 결이 맞아 다행이다. 얼마 전 딸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 아빠가 내가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아니라서 참 좋아, 좋은 사람들이라서 다행이야 “라고 말이다.
그 말이 단순히 착하다거나 모든게 다 맞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딸과도 다른 점이 많다. 외모도 나보다는 아빠를 더 많이 닮았고 본인도 친할머니 성격과 비슷하다고 할 정도로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너무 다른 성향 때문에 서로가 힘들 적도 있었지만 그런 차이점과는 별개로 세상을 보는 기본적인 시선이나 가치관은 많이 비슷하다.
이만하면 인생을 잘 정리하며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과는 잘 맞고 나 자신에 대해서 점점 더 많은 것을 알아가고 있다. 많은 고민과 노력 끝에 찾아낸 해결책은 나에게 잘 맞는 거였다는 걸 확인한 독서였다. 이제는 그냥 나 자신을 믿고 나에게 더 친절한 선택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