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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m Nov 02. 2020

유치원 교사는 퇴사가 어렵다.


 유치원의 1년 중 교사들의 눈치싸움이 절정에 이르는 때가 있으니, 바로 다음 학년도 거취를 결정해야 하는 2학기 후반부이다. 시기는 기관마다 다르겠만 내가 재직하던 유치원의 경우 10~11월이면 한 해의 노고를 회식과 함께 털어내며, 나갈 사람과 남을 사람을 점쳐보곤 했다.


 직장이란 뼈를 묻겠단 각오로 들어와, 가슴에 품은 사직서와 함께 침 뱉고 나가는 곳인 줄로만 알았다면 단단히 오산이다. 여기 예외인 곳이 있으니 바로 유치원이다. 여초 집단의 특성상 그녀들 중에서도 유독 친한 그녀들이 있다. "선생님, 저 아무래도 내년에는 못 있을 것 같아요." 하고 친한 그녀 1이 넌지시 나를 떠본다. 그녀가 못다 한 말은 '선생님은요?'라는 물음이겠지. 왜 관두면 관둔다 시원하게 말을 못 하는가. 한 명쯤은 더럽고, 치사해서 못해먹겠다 할 법도 한데...


 그녀들의 공통점은 '예쁘고, 착한 우리 선생님'이라는 것이다. 학부모도, 아이들도, 심지어 상사의 칭찬에서도 담임 선생님에 대한 최고의 표현으로 예쁘고 착하다는 수식어를 붙인다. 나 역시 서른 가까이 예쁘고 착하다는 말은 유치원에서만 들어봤다. 이미 결혼을 핑계로 한 번의 퇴사를 경험한 나는 조금 덜 예쁘고, 착한 모습으로 두 번째 퇴사를 선언했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로 마주한 원장님과의 재직 상담에서 나는 10번도 넘게 흔들렸다. 여전히 아이들이 좋고, 유치원이 좋고, 이 일이 좋았던 것이다.


 당시 나는 (내가 알기론) 해당 유치원 최초로 출산휴가를 사용한 교사였다. 전례가 없었기에 백방으로 나서 대체 교사를 알아보았다. 타 기관에서 일하는 친한 동기는 "출산휴가? 우리 유치원 선생님은 임신하자마자 관뒀잖아."라며 되려 부러워했다. 이쯤이면 사립유치원이라는 곳은 으레 결혼을 하거나, 임신을 하면 제 발로 나가야 하는 무언의 룰이 있음이 분명했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하지만 이는 임산부로서 쟁취해야 할 마땅한 권리가 아닌가. 만삭에도 반 아이들과 둥글게 둥글게를 하는 열정 넘치는 교사에 대한 신임 덕이었는지 나는 달콤한 출산 휴가를 얻어낼 수 있었다.

 본격적인 워킹맘의 시대가 열리며 나는 어느 노래처럼 24시간이 모자란 사람이 되었다. 100일이 채 안된 아이를 맡기기 위해 서울에서 시댁 근처인 인천으로 이사를 하고, 나는 여전히 직장인 서울로 출근을 했다. 하루 중 대중교통에만 4시간을 쏟으며 퇴근 후에도 눈에 밟히는 아이를 보기 위해 시댁에 들렸다 밤 9~10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으니,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이었어도 부족했을 것이다.

 그때 내 사정을 잘 아는 지인들은 한결같은 조언을 했다. "급여가 빵빵한 것도 아니고, 버티면 육아휴직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래 봤자 유치원 교사인데... 너 이렇게까지 해야겠니?" 나의 퇴사가 순전히 그들의 조언에 흔들려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진짜로 흔들렸던 건 이 짓을 조금만 더 해볼까 하는 나의 욕심이었다.

 "원장님, 자꾸 붙잡지 마세요. 저 그럼 더 일하고 싶어 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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