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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응민 Dec 22. 2020

나의 죽음, 당신의 희망이 되다

장기기증 등록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1] 장기기증 등록 신청


2015년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관인 부천시청에서 처음으로 공황발작을 겪었다. 그 당시 경황이 없어 별도의 치료를 받지 않았다. 한동안 발작은 없었다. 그러나 예기불안을 비롯한 불면증에 시달려 휴학을 신청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신청한 봉사활동 및 생계를 위한 과외활동을 제외하고 외부활동을 차단했다. 말 그대로 대학교 인근 고시원에서 히키코모리 생활을 시작한 것. 그리고 같은 해 17일, 생일날 새벽에 두 번째이자 마지막 공황발작을 겪고서 치료를 시작했다.


굳이 공황발작 경험을 언급한 이유는 장기기증 등록일이 그 다음해인 2016년 1월 1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12월에는 대학병원에서 항우울제를 받고 약에 취한 채로 보냈다. 여기에 독감이 겹쳐 고열에 시달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새해가 밝다. 부모님이 일출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내왔고 별 문제 없다는 듯 답장했다. 실제로 죽지는 않았고 문제는 없었다.


그 때는 삶에 대한 의욕이 없어 사에 도움될 일을 물색해보았다. 마침 뉴스를 통해 사후에 장기를 기증해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올해 4월 조선일보에 게재된 기사와 오늘 방송에서 나온 음주운전 사고로 뇌사판정을 받은 경찰관에 대한 내용과 상이하지 않다. 생각할 틈도 없이 온라인으로 장기기증 등록 신청을 했다.



<7명에게 장기 선물하고 떠난 아홉살 소년>, 조선일보, 2020



<음주운전 차량에 뇌사 경찰관...새 생명 선물하고 영면>, KBS, 2020


우선 장기기증 등록 기관 선정과 절차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장기기증에 대한 편견을 비롯한 심리적 장벽이다. 특히 장기기증 등록시 필요하지 않지만 사후에 유가족 동의를 받아야 장기기증이 진행된다.


나의 경우, 부모님 두 분이 오랜 논의 끝에 장기기증 등록 절차를 마쳤고 사후에 장기기증 동의를 부탁해 이와 관련한 거부감은 없었다. 부모님도 장기기증 등록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상황이 닥치면 장기기증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난해 이웃 아저씨가 급작스럽게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아주머니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딸의 반대가 극심해 장기기증을 철회하는 모습을 봤다. 심정적으로 이해는 갔다. 한두 해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어서 더욱 그랬다.



<장기기증 동의했는데 실상은 기증이 안 된다?>, 경향신문, 2020


더욱이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확립되지 않아 부정적인 여론이 조성돼 민간기관을 중심으로 불법장기매매가 이루어진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에 황색언론을 통한 진위여부 가리기는 차치해두고 보건복지부 등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곳에 장기기증 등록을 신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기관에 위탁했지만 별개로 알아본 뒤 신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출처=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홈페이지 (https://www.konos.go.kr)


신청 당시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센터로 홍보 중이었다. 지금은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부모님이 등록한 기관에서는 사후에 장례 비용과 함께 관련 절차 진행에 도움을 준다고 들었다. 상기 기관은 등록 시 혜택에 대한 별도 언급은 없었다. 그럼에도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를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 시신 뒤처리하라니...이 꼴 보려고 장기기증 했나">, 조선일보, 2017


장기기증 절차와 관련해 체계가 미흡하고 여건이 열악하다는 부정기사를 보고 안타까웠던 적 있다. 하지만 장기기증 등록 당시와 같이 지금도 이렇게 생각한다. 죽으면 끝이라고. 죽음 이후는 연역적 사고의 결과물, 그 이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장기기증 등록의 기반이 탄탄해지는 건 좋은 일이지만.



다시 말해 사후의 문제는 상상의 영역으로 내 손을 떠나는 일이지만 이왕이면 별 문제 없이 도움을 주고 떠나고 싶다. 참고로 유가족이 장기기증 대상자 및 이식 받은 사람을 특정할 수 없도록 정보 공개가 제한되어 있다. 상호간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다른 사람 심장으로 살고있는 KBS 기상캐스터입니다>, 조선일보, 2020


장기기증이 이루어지는 사례가 드물기 때문에 기증이 이루어지면 한 꼭지의 기사가 게재되고는 한다. 이 시대에 접할 수 있는 미담 중 하나다.


최근 KBS 오수진 기상캐스터가 심장 이식을 받아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고백을 해 화제가 된 적 있다. <다른 사람 심장으로 살고있는 KBS 기상캐스터입니다>라는 기사를 보면서 장기기증을 통해 누구라도 사후에 선한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외에도 등록 기관에서 이식인 편지쓰기 캠페인 등을 진행하며 인식 제고에 앞장서고 있다. 앞으로 장기기증과 관련한 체계가 개선되고 긍정적 여론이 조성돼 더욱 많은 사람들이 뜻 깊은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를 바란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20년, 치료를 꾸준히 받아 공황장애를 극복했다. 장기기증을 등록한 사실도 잊은 채 사회생활에 전념하고 있다. 주요 장기부터 좌우 각막까지 기증 가능한 항목에 모두 체크한 걸로 기억한다. 언젠가 느닷없이 죽음을 마주할 때 누군가는 기적적으로 삶을 찾기를 희망한다.





[2]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관한 설명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웹사이트의 이미지컷으로 갈음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에 대해 생각한 건 작년 무렵이다. 당시 이직을 앞두고 시간이 남아 독서에 전념했다. 그 중에 인상 깊었던 책이 출판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한기호 작가의 <나는 어머니와 산다>라는 책이다.


출처=교보문고
 <'6년째 간병중' 아들,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오마이뉴스, 2015


오랜 친구의 할머니가 소위 악마의 병으로 불리는 '치매'를 앓았다. 그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친구의 가족이 겪은 어려움은 보통이 아니었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을 잃어버리는 동시에 가족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는 치매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 있다.


이 외에도 학창시절부터 곧잘 공부를 잘해 대기업에 들어가 기대를 한몸에 받던 이웃 사촌이 어느 날, 갑작스레 닥쳐온 뇌졸중으로 식물인간이 되어 주변을 안타깝게 하는 모습을 보았다. 특히 동생의 친구가 회식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의식을 잃고 보름 동안 혼수상태에 놓인 일 있어 앞날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사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의식이 살아 있다면 선택이 가능하지만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상태에서는 무기력하다. 더욱이 존엄사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연명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게 되고 이로 인해 한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그러므로 장기기증 등록도 했는데 대수인가 싶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도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총 400여 곳의 작성 가능 기관을 검색해 방문, 등록할 수 있다. 신분증을 꼭 지참해야 한다.


올해 2월에 연차를 쓰고 등록 신청을 하기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 관악지사에 직접 방문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별실에 들어서니 아주머니 두 분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었다. 담당자가 설명을 마치고 두 분이서 짧게 의논하더니 다시 방문하겠다고 말하고서 자리를 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과 관련해 사전에 내용을 숙지해 절차상 설명만 듣고 신속히 등록을 마쳤다. 장기기증 등록처럼 사전에 등록을 철회할 수 있고 연명의료 중단에 관해 가족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등 설명을 들었다. 장기기증 등록과 달리 연차를 쓰면서 직접 방문하는 데 번거로움이 있지만 사전에 불상사를 예방한다고 생각하면 품이 많이 드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체적인 노후의 시작 '연명의료중단 결정' 어디까지 왔나?>, KBS, 2020


해당 기사 URL :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027870


현재 '웰다잉'을 위한 연명의료 중단의 기반이 완벽히 갖추어진 상태는 아니지만 초고령화 사회 진입과 더불어 안락사 및 존엄사에 대한 논의는 계속돼 우리는 언젠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는 판단이다.


나는 단지 그러한 판단을 앞당겼을 뿐이다. 굳이 연차까지 쓰면서 등록하러 간 것은 이해받지 못했지만 말이다.


모자이크 처리할 필요가 있나 싶기는 한데... 어쨌든 사후 대비 방안을 2가지 마련했다.


살면서, 선택한 적이 별로 없다. 대부분 상황에 맞춰 움직였고 주변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주체적인 삶,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지금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장기기증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은 온전히 나의 선택이었다.


사후에 대한 선택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는다. 보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 각자 삶의 의미를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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