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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양 Jun 01. 2022

세 번의 여름과 영하의 이르쿠츠크

파리에는 사랑도 넘치고 소매치기도 넘친다

어떤 시간은 기억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냄새, 향기, 특정 사물 혹은 그 시절에 읽었던 책, 들었던 노래로 환기 되기도 한다. 특히나 파리는 그랬다. 파리에서 찍은 수많은 사진들보다 그곳에서 자주 들었던 노래가 파리를 완벽히 떠올리게 했다. 비를 맞는 감촉과 트로카데로에 앉아 읽었던 이슬아 수필집 혹은 은희경의 소설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파리가 생각난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나의 일기장이 있다. 스물 다섯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장은 현재 여섯 권이 쌓여 있다. 그 여섯 해 동안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이곳과 저곳을 옮겨 다녔고 썼다. 펜과 종이가 있으면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썼다. 길을 가다 툭 떠오르는 말이 있으면 휴대폰 메모장에 옮겨 적었다. 그렇게 붙잡아둔 단어와 말, 문장들이 모여 지금의 여행이 되었고 내가 되었다.


파리에 처음 왔을 때는 <기생충>이 난리인 때였다. RER을 타고 파리 시내에 오면서 기생충의 포스터를 몇 번이고 마주쳤다. 파리에서 한국 영화를 보게 되다니.  마침 오데옹 역 근처 영화관에 기생충이 상영하고 있었다. 12유로를 내고 영화표를 산 후 근처의 카페에서 비를 피했다. 날씨가 추우니 카푸치노가 간절했다. 파리 사람들은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았고 비가 와도 테라스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면서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개의치 않음이 저렇게 멋져 보일 수 있구나, 생각했다. 멋져 보이는 건 왤까. 쿨해 보여서 일까? 쿨하면 다 멋있는건가? 그런데 비오는 6월의 파리는 너무나 추웠다.


영화 시간이 되어 극장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맨 뒷 자리였는데 이유가 있다면 사람들을 좀 관찰하고 싶었다. 어차피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겠지만 말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이따금 들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탄식 , 놀라는 소리는 과연 저들이 영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게 했다. 번역이 잘 이루어졌는지, 그런 것은 뒤로 한 채로 그저 그들의 감상평이 궁금했다. 영화가 클라이막스로 가면서 나역시 몰입하느라 사람들의 반응은 잊었지만 한국인인 나도, 여기 파리 사람들도 영화에 빠져 들어간 게 틀림없었다. 흥미롭게 전개된 영화는 다소 충격적으로 끝이 나고 많은 공포감을 남겼다.  영화관 내부가 밝아지자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건지 분명 영화의 감상평일텐데, 너무 궁금했지만 불어는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아무라도 붙잡아 '영화를 어떻게 보셨나요?' 라고 묻고 싶었으나 용기가 없었다. 한국인 필살기를 써볼까도 싶었지만 역시나 용기가 없었다. 만약 내가 그때 용기를 내어 '기생충을 관람한 파리 시민의 반응'을 듣고 무언가를 피드백 해주었다면, 혹은 작은 궁금증이라도 해소하여 만족감을 느꼈더라면 내게 뭔가 달라진 것이 있었을까? 일기장에 몇 줄이라도 쓸만한 것이 생기지 않았을까.


파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참 다양했다. 학생, 퇴사한 직장인, 파리 유학생, 프랑스 군인, 출장 온 어른들을 만났다. 저마다 파리에 온 이유는 달랐지만 '한인민박'을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한식이었다. 나는 거기서 먹었던 김치전을 잊지 못한다. 김치전과 까르푸에서 산 레드와인의 맛. 김치전과 납작 복숭아의 맛. 우리는 한식 앞에서 행복해졌다. 먹지 않아도 눈으로 보고 냄새만 맡아도 그날의 여독을 풀 수 있었다. 밖에서 만난 소매치기 썰을 풀던 동생은 빨간 제육볶음을 먹으며 눈물을 훔쳤다. '지하철 출입문 옆에는 절대 앉지 마세요' 문이 닫히기 직전 휴대폰을 들고 튀었단다. 그런데 그걸 또 쫒아갔단다. 그러다가 주변 사람이 도와줘서 휴대폰은 찾았지만 소매치기가 뿌린 스프레이에 정신을 못차려 눈물이고 콧물이고 길거리에서 왕왕 흘리고 있었다고. 그 동생은 일주일 간 숙소 밖을 나오지 못했다.


민박 사람들은 한식을 든든히 먹고 뿔뿔히 흩어졌다. 누구는 봉마르셰에 쇼핑을 하러 갔고 누구는 디즈니 랜드에 갔으며 누구는 회사로 갔고 누구는 숙소를 지키며 사장님을 도왔다. 나는 쇼핑도 가지 않았고 그렇다고 숙소에 남아 사장님을 돕진 않았지만 일단 밖을 나가기는 했다. 동생의 조언대로 지하철에서는 문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파리에서 나의 루틴은 대개 정해져 있었다. 오르세에 가서 산책하듯 그림을 봤다. 어제 본 모네의 그림을 오늘 또 봤고, 여러 각도에서 봤다. 두 팔을 벌려도 한참 모자란 크기의 그림은 어제 볼 때와 오늘 볼 때의 느낌이 달랐다. 그림의 질감이 느껴지도록 가까이서 보기도 하고 아주 멀리서 보기도 했다. 바닥에 앉아 모사하는 사람도 있었고 가이드를 따라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는 무리의 사람들도 있었다. 그림도 구경하고 그림을 관람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내 일정 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배가 고프면 집에서 만들어 온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랬다. 오르세에서 나와 카루젤 다리를 건너 튈르리 공원에 앉았다. 마치 풀 밭위의 점심식사처럼 소박하게 점심을 해결하는 나의 방법이었다.


파리의 날씨는 비가 오냐 안 오냐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어제는 분명 추웠는데 오늘은 얇은 니트에도 후덥지근했다. 여름이라 해가 길어 일몰을 10시나 되서 볼 수 있었다. 덕분에 하루가 참 길다는 인상을 받았고 해가 갑작스레 떨어져 놀랍기도 했다. 한낮의 파리도, 일몰 시간때의 파리도 아름답지만 해가 다 진 후 짙은 밤의 파리도 빼 놓을 수 없었다. 상드막스 공원에서 반짝이는 에펠탑을 보다가 자정이 되길 기다리는 무수한 사람들의 마음, 와인을 홀짝이다가 근심 걱정이 없어지는 순간,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취기, 화장실을 찾아 헤메던 발걸음. 우리는 파리를 사랑해.


센 강에 앉아 일기를 쓴다. 지나가는 바토무슈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입맞춤하는 연인을 곁눈질로 흘긋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생각한다. 나에게는 사랑이 남아있나. 사랑의 대상은 다양하겠지만 그래서 사랑이 위대한 것이고 사랑도 나를 모르고, 나도 사랑을 모르고. 사라진 줄 알았지만 사랑은 내 안에 있었고 ...사랑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니 모든 것이 사랑으로 보인다. 파리는 사랑이라는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파리는 너무 위험한 곳이 아닌가. 파리에는 사랑도 넘치고 소매치기도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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