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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양 Oct 27. 2022

다시 걸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걸을게요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삼 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생각보다 일찍 산티아고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삼일을 어떻게 보낼까 아주 많이 고민했다. 다른 지역을 관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고 그렇다고 또 못 할 건 아니었다.


 '어차피 비행기 타러 바르셀로나에 가야 하니까 바르셀로나 관광을 할까?' 


개인적으로 바르셀로나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 여유가 있었다면 스페인 남부를 둘러봤을텐데. 많은 고민 끝에 나는 더 걷기로 결정을 했다. 남은 삼 일을 스페인의 끝, 묵시아에 가기로. 묵시아는 산티아고에서 약 칠십 키로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걸어서 삼 일 혹은 사 일이 걸리는 모양이다.  이렇게 하여 나의 남은 유럽 일정을 온통 순례길에 쏟게 됐다. 



굳이 묵시아에 가는 이유는 처음 가는 곳이고 끝이 아니라 또다른 길의 시작이라는 것이 맘에 들었다. 산티아고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는 다른 시작을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이었다. 들리는 소리를 보아하니 가볍게 내리는 비는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비가 온다면 더이상 걷는 것은 무리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나다를까 날씨 어플에 온종일 우산이 그려져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빗소리가 작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찌됐건 체크아웃을 하든 다시 길을 걷는 떠나야 하는 신세이니 서둘러 짐을 챙겼다. 


로비로 나가니 여자 두 명이 우비를 입고 있었다. 


'너도 오늘 출발해?' 


'비가 와서 잘 모르겠어.. 상황 보고'


상황을 본다고 했지만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 걸을 것인가 말 것인가. 만약 걷지 않는다면 이 마을에서 뭘 하지? 하필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도 없었다. 나는 멍하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배낭을 챙기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그리고 체크아웃을 했다. 



어제 저녁 먹은 식당 쪽으로 걸으니 노란 화살표가 보였다. 그래, 까짓거 그냥 가자. 나는 화살표를 따라 움직였다. 비가 많이 오는 것은 아니니까. 후드티 모자를 쓰고 가볍게 걸었다. 이른 아침의 깔끔한 공기가 몸을 가볍게 해주었다. 


화살표는 이전처럼 자주 등장하지는 않았다. 이 길이 맞는지 의심스러우면 한 번씩 화살표나 키로수가 적힌 이정표가 나왔다.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올 때 쯤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흙이 질퍽였고 등산화와 옷이 젖어가고 있었다. 울창한 숲 속에 있어서 비를 많이 맞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비는 점점 거세졌다. 어느새 후드티가 흠뻑 젖어서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잘하고 있는건가? 뭐하는거지? 아직 마을에 도착하려면 한참 남았는데. 


척- 처억 


조금 걸으니 버스 정류장처럼 생긴 천막이 쳐진 공간이 나왔다. 나는 의자에 배낭을 올려두고 수건을 꺼내 얼굴과 젖은 머리를 닦았다. 옷 소매를 쥐어짜니 물이 주루룩 떨어졌다. 걸을 땐 몰랐는데 쉬고 있으니 한기가 들기 시작했다. 비는 좀처럼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 십 분 쯤 있으니 사람들이 무리지어 가는 것이 보였다. 모두 판초우의를 입고 있었고 아주 드물게 나처럼 얇은 우비 하나 걸치지 않는 맨 몸이었다. 



앞으로 꼬박 십 오 키로는 걸어야 할텐데. 앞이 까마득했다. 비는 계속 내리고 먹을 것도 없고 배도 고팠다.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수도 없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천막 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판초 우의를 입은 사람들을 물끄러미 봤다가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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