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경험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이유
*영화 <패밀리 맨> (The Family Man, 2000)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픽션이든 실제 사건이든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이야기들은, 사람에겐 돈과 명예 같은 것보다도 중요한 뭔가가 있으며, 그게 우리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걸 보여준다.
일회성이 아니라 소소하고 잔잔하게 지속되는 따뜻함과 행복이, 평소에 그리 눈에 띄진 않지만 사실은 가장 중요한 것들이라는 걸 말이다.
영화 <패밀리 맨>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는 주인공 ‘잭’이 연인 ‘케이트’와 공항에서 헤어지며 시작한다.
잭은 좋은 회사의 인턴으로 일하며 커리어를 쌓기 위해 1년 동안 런던으로 떠나 있어야 했다. 그들은 서로를 안으며 아쉬운 인사를 한다. 하지만 뭔가를 예감한 케이트는 잭이 비행기를 타기 직전, 함께하는 인생을 말하며 잭이 떠나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도 잭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떠나야 했고, 1년 후에 다시 돌아오면 함께하는 인생을 그때 하면 될 거라고 말한다. 서로 사랑하니, 그렇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게 런던으로 간 잭은 다시 케이트에게 돌아가지 않았고, 이후 두 사람은 각자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로부터 13년이 흘렀고, 잭은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크게 성공했다. 대표로 있는 투자 전문 회사는 업계 최고를 달리고, 일회성으로 여러 여자를 만나면서, 큰 집과 비싼 차를 가진 삶을 사는 그는 기업인으로서 부와 명예를 가졌다는 것에서 오는 성취감과, 순간순간의 쾌락이 일상이다.
이런 잭에게 어느 날,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
크리스마스이브, 잭은 여느 때처럼 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밤에 회사를 나와 모처럼 집으로 걸어간다. 눈이 내리는 거리를 걸어가던 중 왠지 모르게 어떤 가게가 눈에 띄고, 그는 그 가게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남자가 복권 당첨 티켓이라며 돈을 달라고 직원을 위협하는 걸 보게 된다.
잭은 남자에게 다가가 거래를 하자고 하며 그 상황을 끝낸다. 그리고 가게를 나와서는 그 남자에게 총을 들고 다니면 후회하게 될 거라고, 일도 열심히 하고 프로그램의 도움도 받으라고 조언한다. 그러자 그 남자는 잭의 말을 듣고 웃으며,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이번 거 기대되네요. 당신이 이걸 선택했다는 것 잊지 말아요. 당신이 선택한 거예요.
크리스마스인 다음 날 잭은 잠에서 깬다. 그리고 그의 옆엔 13년 전에 헤어졌던 그 케이트와 두 아이, 그리고 강아지가 있다. 비싼 차는 없고, 작은 집에 살며, 별 볼일 없는 직업을 가진 남자로서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걸 깨달은 잭.
그렇게 갑자기, 그에게 가족이 생긴다.
휴식이나 결혼 같은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기적인 연애 같은 것도 하지 않고 일만 하는 일 중독의 삶을 살던 잭은 이 인생에 나름 만족하고 있었다.
크고 좋은 집과 비싼 차, 하룻밤마다 바뀌는 여자들, 업계 1위 회사의 대표라는 건 그가 성공한 사람이라는 증거이고, 그래서 예전에 런던으로 간 후 다시 케이트에게 돌아가지 않은 것도 그리 후회하지 않는다. 이렇게 성공한 삶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던 그가, 별안간 케이트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되면서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 느꼈던 부와 명예에서 오는 풍족함과 성취감과는 다른, 사랑하는 배우자와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에서 오는 행복함. 다른 느낌의 풍족함과 성취감.
하지만 그 행복함과는 별개로, 잭은 그전의 일상에서 가지고 있던 직업과 집과 차를 다시 가져야 했다. 사랑하는 가족은 이제 생겼으니, 전에 가졌던 것들을 다시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는 마법이 일어나기 전의 인생에서 가지고 있었던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그 회사에 무작정 찾아가, 자신이 능력을 다짜고짜 보여준다. 그리고, 그 회사에 들어오는 것을 제안받는 것에 성공한다. 크고 좋은 집과 함께.
하지만 케이트는 잭이 말하는 성공한 삶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잭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아이들은 좋아하는 학교를 옮겨야 하고, 가족의 추억이 깃든 집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또 케이트는, 왠지 잭이 일로 바빠지면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잘 만들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든다.
잭은 그렇게 또 예전에 공항에서 케이트와 헤어지던 때와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
잭 : 우리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거야.
케이트 : 잭, 이미 모두 우리를 부러워해.
어떤 쪽이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삶인가. 바뀐 삶에서도, 아니 바뀐 삶이기 때문에 이런 난제와 마주하게 된 잭에게 케이트는 말한다.
그게 당신이 정말 원하는 삶이라면, 아이들이 사랑하는 학교랑 우리가 함께한 이 집도 다 버리고 당신이 가자는 데로 갈게. 당신을 사랑하니까 그렇게 할게.
사랑해. 어디 사느냐보다 그게 더 중요한 거니까.
난 우리를 택할래.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과거의 선택은 자신을 일로 성공한 부자로 만들어줬지만, 과거에 달리 선택했다면 살게 되었을 이 일상은 잭에게 계산해 보거나 값을 매겨볼 수 없는 종류의 가치에서 오는 행복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잭은 이 짧은 경험으로 그걸 알게 되었다.
자신과 케이트와 아이들이 담긴 사진들, 런던발 뉴욕행 티켓, 케이트의 말들. 아마도 이런 것들 덕분에, 일회성이 아니라 잔잔히 지속되는 진실한 행복함이 더 중요한 거라고 마음을 정하게 된 잭은, 지금의 이 일상 속에서 앞으로도 계속 살길 바라게 된다.
하지만 갑자기 생긴 마법은 갑자기 사라지기 마련이다. 갑자기 인생이 바뀌었을 때처럼 그 이상한 남자를 또 마주친 잭은 그에게 자신을 원래의 인생으로 되돌려 보내지 말라고 소리친다.
잭 : 난 안 돌아가요. 알겠어요? 이러면 안 돼. 남의 인생을 이렇게 휘저어놓으면 안 된다고요.
그 남자 : ‘잠깐의 경험’은 영원한 게 아니에요, 잭.
잭의 이 잠깐의 일상은 눈을 감았다 떠보니 사라져 있다. 당연히 케이트와 아이들은 사라지고, 전처럼 큰 회사의 대표이고, 큰 집과 좋은 차를 가지고 있는 삶.
그렇게 다시 혼자인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 영화가 행복하고 따뜻한 이유는, 잭이 행복하고 따뜻한 감정을 경험했고, 그 잠깐의 경험을 앞으로도 지속될 일상으로 만들기 위해 나아갔기 때문이다.
잭은 커리어를 위해 파리로 떠나려는 케이트를 찾아 말한다. 조금 늦었지만, 또 많은 일을 겪게 되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인생을 또 시작하기 위해.
당신 곁에 있으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돼.
어쩌면 꿈이었는지도 몰라. 외로운 12월 밤에 혼자 상상한 건지도 모르지만 너무도 현실적이었어. 당신이 이 비행기를 타면, 모두 환상이 되겠지.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도 잘 살겠지만, 난 우리가 함께인 모습을 봤어. 그래서 난 우리를 택할래.
그러니까 케이트, 커피 한 잔만 하자.
이 이야기는 잭이 이전보다 더 외롭지 않은, 그리고 인생의 행복에 대해 더 자신감이 생긴듯한 모습으로 끝난다. 공항에서의 말을 듣고 ‘알겠어’라고 대답한 케이트와 마주 앉아 대화하는 모습으로 끝났으니까.
아마도 잭과 케이트는, 그 테이블에 마주 앉은 채 앞으로 우리가 함께할 수 있을지, 케이트는 알고 있었고 잭은 이제야 깨달았던 행복의 결정적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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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충분히 가치 있는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걸, 또는 그런 걸 만들 수 있다는 걸 잊어버리곤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정말로 중요한 것들보다 당장 결과로 보이는 돈과 명예의 가치를 쫓게 되고, 또 누군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외로움 속을 파고들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현실적으로는 돈이 가장 중요하지, 성공해서 명예를 얻는 것도 엄청난 기쁨이잖아.
물론, 부유하다는 것, 일로서 성공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경제적인 안정감과 풍족함, 그리고 사회적인 명예로움 같은 가치를 가져다준다. 살기 위해선 꼭 필요하고, 그래서 많고 높을수록 좋게 느껴지는 것들.
하지만 아무래도 이 영화, 그리고 세상의 많은 이야기들은 돈과 명예보다 더 결정적인 무언가, 즉, 우리의 인생에 진실하고 건강한 행복이라는 게 있도록 해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 영화에서는 잭이 자신에게 중요한 것들을 제쳐두지 않는 인생을 선택하고, 어쩌다 잠깐 동안 경험하게 된 일상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전진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야기들이 말해주는 이런 사실들을 생각해야겠다. 돈과 명예와 같이, 내가 얼마큼 갖고 있는지, 내가 어느 높이에 있는지를 어떤 수단으로든 계산해 보고 따져볼 수가 있기에 목표로 삼기 쉬운 것들에 집중하는 일상을 살게 된다면, 정작 정말 중요한 것들은 멀리 제쳐두게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다가 누군가는, 성공한 것 같지만 뭔가가 빠진듯한 일상을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
나의 불안함을 안아줄 수 있는 따뜻함과, 생각해 보면 나를 소소하고 잔잔하게 품고 있는 행복함 같은 감정들은,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를 사랑하며 함께하고 노력할 때 피어난다는 사실도.
일상을 살며 이 사실들을 몇 번이고 잊을 수도 있겠지만, 순간순간이라도 이 가치들을 떠올려 낸다면 우리는 그래도 꽤 행복을 찾아가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잭의 이야기를 가끔 떠올리며,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리고 나 자신을 떠올리며 말이다.
아트인사이트 원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