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순 '자연의 숨', 박진숙 '자연의 표상'
- “자연”을 모티브(Motive)로 한 두 여류화가의 추상화전
-강영순 7회 개인전, “자연의 숨”,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 1층 그랜드관 2024 9/25(수)~ 10/1(화)
-박진숙 5회 개인전, “자연의 표상", 인사아트센터 4층 특별관 2024 9/25(수)~ 10/1(화)
강영순의 개인전은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 그리고 박진숙의 개인전은 인사아트센터에서 각각 같은 기간(2024 9/25~10/1)에 열렸다. “자연”이란 모티브(motive)의 추상화전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두 여류화가는 서로 관련성이 없는 것이 분명한데, 강영순은 “자연의 숨”, 박진숙은 “자연의 표상”이라는, “자연”이란 동일한 모티브의 추상화전을 여는 것에 필자는 주목하였다. 비록 우연일지라도 전시장소만 다를 뿐 유사한 주제의 추상화 작품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뜻밖의 기회에 반가움을 느꼈으며, 특히 추상화 작업을 통하여 화풍은 다를 지라도 과감하고 역동적으로 자신의 예술혼과 감성을 토해내는 두 여류작가의 정신과 열정에 크게 이끌렸다.
두 작가는 동일한 모티브임에도 자연에의 접근과 해석하는 시각은 각기 다를 뿐 아니라 시각적 표현의 전개와 작품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의 표출 역시 차이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필자는 두 작가의 개성이 차별적으로 표현되어진 작품들을 매우 흥미롭게 관찰하였다.
강영순 작가가 구조적이면서 동적으로 ‘자연’을 탐구하듯 파고들며 접근하는 데 비하여, 박진숙 작가는 자연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초자연적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을 조화와 균형을 지향하는 듯한 정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데, 이 또한 대조적이라 할 만하였다. 즉 강영순은 구조적이며 해체적인 시각으로 자연을 대하면서, 대상에 대해 분석적으로 조형적인 관념을 파고들기 때문에 다소 성긴 듯 거친 분위기에서 동적인 느낌이 강하게 드러나므로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하다고 한다면, 박진숙은 대상에 대한 독창적 내면성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하여 표상화한다고 할 수 있는데, 작가의 섬세하고 화려한 심상을 통해 자신의 미학적 표상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여성적인 분위기가 부각되고 있다는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두 작가는 “자연”이라는 모티브를 자신들의 내면에 내재한 의식과 무의식의 변주를 바탕으로 추상작업을 하면서도 관점과 방향은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1.
강영순 작가의 “자연의 숨”이라는 기본개념은 자연이 살아있다는 인식이면서, 자연의 생태계와 생명력의 순환을 상징화하여 자연의 실체와 현상을 파악하고 시각화하려는 것이다. 자연은 우리의 삶 자체이며 바탕이라는 이해로 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통찰과 재인식 그리고 자연에의 회귀를 통하여 생명 존중이나 인간성 회복 등과 같은 확장된 인식에 대한 기대를 가진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자연의 숨’은 자연에 대한 깊은 관심이며 인간의 생명에 대한 재인식과 존중으로 확대하여 이해할 만한 주제의식이라 할 것이다.
강영순의 작품들에서 드러나는 과감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는 자신의 생장(生長)의 모태(母胎)라 할 제주의 이미지에 영향 받은 바가 클 것이다. 작가는 스스로 고백하기를 수많은 체험을 통해 자연의 에너지를 느껴왔다고 했지만, 자신이 나고 성장한 제주의 자연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지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작품의 소재 대부분이 제주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이 성장한 제주의 자연을 대상으로 한 탐구와 이해는 자연스런 접근이라 할 수 있으며, 그가 체험하고 교감한 자연의 실체는 자신의 정서와 인식의 교류를 통해 예술적 영감을 자극하고 발현시킨다는 것은 순리적 발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추상화 중 일부는 마치 풍경화와도 같이 그려낸 작품들이 있다. 이는 작가의 제주에 대한 깊은 애정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내면으로부터 분출되는 예술적 정서라고 할 수 있고, 무의식적인 발현(發現)이기도 하며 그 만큼 깊이 내재된 것이라 할 만하다.
<자연의 숨-가파도>, <자연의 숨-한라산> 등은 제주의 실체를 재현한 작품으로써 추상 이전에 구상화처럼 자신의 표현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한 <자연의 숨3>, <자연의 숨4>, <자연의 숨11> 등은 뚜렷하게 제주도라고 할 수는 없으나 화폭에 드러난 형체를 통해 분명 제주의 일부를 연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제주에는 한라산의 백록담 외에도 수많은 “오름”들의 정상에 분화구와 같은 대형 ‘웅덩이’들이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숨’을 호흡하는 통로로 인식하는 자신의 관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숨”을 “생명의 시작이며 원천”이라 한다면 에너지로서의 ‘숨’을 호흡하는 입출구(入出口)로서의 “분화구”를 떠올릴 수 있고, 이를 마치 ‘꽃’을 형상화하여 표현하거나 요동하는 형상으로 시각화하여 살아있는 상태의 입출구를 연상할 수 있도록 시각적 표상을 시도하려 한다.
해바라기, 또는 분화구에서 영감을 받은 “숨”의 입구, 또는 출구와 같은 웅덩이는 다소 거칠지만 강한 동적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는데, 황색이거나 다갈색으로 그려지니 자연의 원천이나 총체적인 실체를 표상화한 듯하고, 언뜻 꽃의 형상을 하면서도 꿈틀거리는 듯 요동하는 것은 자연의 동적 에너지의 충만함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편 꽃으로 상징되는 자연의 형체들은 황색이나 붉은 색, 초록색으로 채색되어 자연의 원천과 생명력이 에너지의 순환으로 활발하게 살아있음을 부각하려는 작가의 심원(深遠)한 의도를 시각화하고 있는데, 강영순 작가는 자연을 복합적이고 구조적으로 파악하고 상호 유기적인 움직임, 즉 자연의 생명력이 활발하게 에너지 활동을 하고 있는 살아있는 자연 생태계의 실체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본래 추상은 구체적이고 일반화하기 어려운 대상으로부터 공통적인 속성이나 원리를 작가의 깊은 안목이나 영감으로 추출하는 것이라면, 제주라는 자연의 모티브를 다양한 형태와 색채, 그리고 무의식적인 시각적 요소들을 역동적으로 표출하면서 “자연의 숨”이라는 핵심개념으로 구성해 낸 것이라 여겨진다.
강영순은 자신의 작가노트에서 말하고 있듯, “자연은 늘 변화한다. 이런 변화를 기반으로 자연과 호흡하며, 그 감흥을 조형화”하는 과정을 거쳐 왔으며, “자연은 단순히 모방의 대상이 아닌, ‘숨’이라는 순환하는 생명과 연결된 자연”이라는 인식으로 그동안 자연과의 교감한 이미지를 재탄생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
박진숙은 자연의 드러난 외양에 주목하며 자연의 존재를 ‘생성과 창조’를 통하여 확인하고, 삶의 기반이며 바탕인 ‘자연’의 온갖 영향과 그 결과를 ‘기억’으로부터 끄집어내면서 자연의 힘과 가치를 예술적 미학으로 재현해내고자 한다. 복합적이고 다양한 기억과 관련한 자연의 이미지나 드러난 현상들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특히 ‘꽃’과의 대화는 그가 결국 다다르려는 미학의 종결일 수도 있다는 추측을 하게 한다.
“화담(花談)”이라 했으니 ‘꽃에게 던지는 말’이거나, ‘꽃이 건네는 말’, 또는 ‘꽃과의 대화’일수도 있는 이 압축적 메시지는, ‘꽃’이 완성이거나 결실의 과정에서의 절정(絶頂)이라 한다면, 박진숙 작가는 꽃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성향과 탐구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박진숙은 “자연의 표상”을 ‘자연의 생성과 창조’, ‘자연에의 기억’, 그리고 ‘자연이 건네는 메시지’ 등으로 나누어 추상적으로 시각화 하였다. 즉 그의 작품들은 (자연의) “생성창조”와 (자연에의) “기억(memory)”, 그리고 (자연(꽃)이 건네는) “메시지(화담)” 등 3부작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자연의 “생성창조”는 만물이 생성되기 이전의 혼돈상태(Chaos)와 그 혼돈 속에서 일정한 질서가 형성되며 자연이 생성되어지는 과정을 추상적 작업으로 표상화하고 있다. 이런 ‘생성과 창조’이후 자연에서 체험하고 이입된 “기억”을 내면으로부터 인출하여 시각화하고 있는데, 그의 기억 속 자연은 ‘생성 창조’에서 보여주는 혼란스럽고 활발한 무의식적 작용과는 달리 차분하고 안정적이며 정감어린 이미지들이 화폭에 그려지고 있다. 작가는 자연으로부터 전해지는 기운과 자극을 즐겁게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즉 작가의 기억 속에 내재한 이미지들은 자연의 밝고 아름다운 영감과 어울리며 조화롭게 드러나고 있다.
나아가 자연이 작가에게 건네는 메시지라 할 “화담(花談)”은 자연의 총체적 조화로서의 상징이라 할 “꽃”에 대한 담론(談論)이다. 이것은 한편 “꽃에게 건네는 말”이면서 “꽃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자연(꽃)에 대한 작가의 내면으로 부터의 정서적 반응이며, 꽃에게서 전해 받은 “꽃의 전언(傳言)”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한편 ‘꽃’으로 시각화하였으나, 작품을 통한 “화담(畵談)”이기도 한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3단계로 나누어 자신의 자연에 대한 표상을 완성하고자 하였다. 특히 “화담”은 작가의 심성과 내재한 예술적 혼을 감지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는데, 다른 작품들에서도 충분히 연상되고 있지만, 밝고 화려한 예술에의 취향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으며, 이는 작가의 내적 성향과 무한한 꿈과 동경을 암시하는 창조적 열정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강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