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받고 싶지 않다면 차별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라.
작년 6월, 뉴욕을 나갈 때마다 이상하리만큼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길거리는 물론이고 식당과 가게 입구, 사람들의 옷까지 왜인지 뉴욕 전체가 무지갯빛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6월 내내, 도시를 가득 채운 이 무지개 물결의 정체는 마지막 주에 열린 퍼레이드를 보고서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미드타운부터 로어 맨해튼까지 길게 이어진 이 행진은 'Pride march(이하 프라이드 행진)'로 불리는데, Stonewall riots(스톤월 항쟁)을 기념하는 동시에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한 행사이다. 뉴욕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과 세계 곳곳에서 매년 6월 마지막 주에 열리는 대규모 행진이다. 그리고 내가 궁금했던 무지개 기는 각각 Life(빨강), Healing(주황), Sunlight(노랑), Nature(초록), Serendipity(파랑), Spirit(보라)을 의미하며 성소수자들의 상징으로 쓰인다. 다시 말해, 6월 한 달간 내가 목격한 무지개 물결은 성소수자들이 자긍심을 높이고 자신들의 문화와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동시에, 이를 지지하고 축하하는 활동들이었던 것이다.
프라이드 행진은 1970년 뉴욕에서 처음 시작하여 근 반세기에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 모은 그 첫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1960년 대 뉴욕은 불시 단속, 함정 수사 등으로 동성애를 엄격하게 단속했다. Stonewall Inn(이하 스톤월)은 맨하탄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게이바로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동성애자들이 갈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였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프라이드 행진의 배경이 되는 스톤월 항쟁이 일어났다. 사건은 1969년 6월 28일 새벽 경찰들이 스톤월을 급습하면서 시작되었다. 표면적으로는 허가받지 않은 술을 불법으로 판매한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실제로는 당시 주기적으로 행해지던 게이바 단속이었다. 경찰들은 평소 절차대로 줄을 세우고 신분증을 검사하고 여성복을 입은 사람들은 화장실로 데려가 성별을 확인하고 체포할 사람들을 추려내려 했다. 하지만 그 날은 어쩐지 평소와 달랐다. 여성복을 입은 사람들은 성별 확인을 거부했고 줄 서 있던 남자들도 신분증 검사를 거부했다. 경찰들은 이들을 모두 경찰서로 데려가려 했고 두 집단 사이의 긴장감은 팽팽해졌다. 바에 있던 술들을 싣고 갈 호송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손님들도 약 15분가량 기다려야 했다. 이미 풀려났던 사람들도 가게 앞을 떠나지 않은 채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구경하는 관중들도 점점 더 많아졌다. 관중 대부분이 동성애자였으며 이들은 그저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군중 속에서 'Gay power'라는 외침이 들렸고 누군가가 'We shall overcome.(우리는 승리하리라 - 흑인들의 저항 노래)'을 부르기 시작했다. 군중들이 이에 동조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하였다. 이 기세를 몰아 스톤월은 그동안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멸시받고, 천대받고, 약탈당한 동성애자들의 치열하고 살벌한 항쟁 현장으로 변했다.
스톤월 항쟁 이후, 급진적 성향을 띄는 동성애 단체와 운동들이 생겨났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각성하여 이전보다 적극적이고 격렬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로부터 일 년 뒤인 1970년 6월 28일,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고 동성애자들의 해방을 위해 미국 역사 최초로 퀴어 퍼레이드가 열렸다. 이 퍼레이드가 바로 지금까지 이어져 온 프라이드 행진의 첫 시작이었다.
지난달 서울에서도 퀴어 축제가 열렸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여러 채널에 달린 댓글들을 읽어보았는데,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이 혐오와 비난이 담긴 메시지를 남겼다. 내용의 대부분은 '동성애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일이며, 불쾌하고 혐오스러워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어릴 적 겪은 트라우마 등으로 인한 정신적 질환이니 치료를 받아야 한다'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의견들에 동의할 수 없었다.
첫 번째로 자연의 순리란 대체 무엇인가? 태초 인간은 그 수가 적었기 때문에 번식이 아주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래서 번식을 할 수 있는 관계가 필요했고 그 관계인 남녀관계가 가장 일반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인간 멸종을 막기 위해 개체 수를 늘릴 필요도 없고 인간을 단순히 번식하는 존재로만 여기지도 않는다. 오랜 시간 인간이 추구하는 목표나 가치 그리고 삶의 방식 등이 아주 많이 변했고 또 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자연의 순리가 기존의 모습과 방식을 계속 따르며 사는 것이라면, 이미 모든 사람이 그 순리를 다 거스른 채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동성애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게 아니라, 인간과 세상이 진화하고 발전하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변형된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불쾌함과 혐오감을 주며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다는 의견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나는 성소주자들에 대해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도 없다. 한국에서는 아직 성소수자들에 관해서라면 부정적인 여론이 지배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수의 의견이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며 개인의 성적 취향에 혐오를 표하는 것이 당연하고 정당한 일이 될 수도 없다. 그리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는 의견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일부 스스로가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동성애를 혐오하지는 않는데, 퀴어 축제나 시위 같은 건 보기 싫고 안 했으면 좋겠어. 그냥 자기들끼리 조용히 즐기면 되는 거 아니야?" 물론 퀴어 축제나 시위가 지나치게 음란하거나 폭력적으로 행해지는 것은 나도 반대한다. 그리고 이런 활동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일부 동의한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성소수자들이 '왜' 퀴어 축제를 열고 시위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사회 속에서 자신들의 정당하고 평등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흑인들의 인권 운동처럼, 여성들의 페미니즘 운동처럼, 그래야 사람들이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래야 사회가 변하기 시작하고 그래야 권리를 되찾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도 모르게 너희들끼리만 조용히 즐기라는 그 말이 나는 너무 폭력적으로 들린다. 마치 보이면 때려죽이고 싶으니 맞고 싶지 않으면 눈에 띄지 말라는 소리만큼이나 폭력적으로 말이다.
세 번째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등으로 생긴 일종의 정신병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에 대해서 전문가가 아닌 내가 확실한 주장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동성애와 심리 및 정신 상태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수많은 연구가 있었는데, 1970년 대 이후로 세계보건기구(WHO)를 포함하여 호주&뉴질랜드 정신건강의학과 협회, 미국 정신의학회 등 전 세계적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동성애는 정신질환이 아니라 성적 취향의 변형일 뿐이라고 성명을 냈다. (참고 : https://goo.gl/UHMLjX) 과거 동성애라는 개념이 처음 생겼을 때, 당시 사람들이 기존의 신념이나 생활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동성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신병으로 취급하고 학대했던 것이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프레임을 씌우는 데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도덕 시간에 배운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라는 말이 이렇게나 실천하기 어려운 일인 줄 그때는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당장 나만해도 알게 모르게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을 기피하고 배척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나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또 어떤 바보 같은 이유로 언제 어디서든 차별받고 배척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다양성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진정으로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게 만들었다. 나를 비롯해 이 사회는 여전히 다양성을 인정하기보다는 다른 것을 배척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우리가 차별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우리 스스로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이 유일한 예방법이자 해결책임을 잊지 말자.
[출처 및 참고]
메인이미지 출처 : The empire state buil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