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21세기에 만학 이야기를 전하는 20세기 샐러던트
95. 부부의 갈등
현대의 부부는 같은 집에 살지만, 마음은 서로 다른 방에 머물고 있다.
경제 성장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갖게 되었지만, 정작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개인의 능력과 개성이 강조되면서 ‘나’는 분명해졌지만, ‘우리’는 희미해졌다. 갈등은 단순한 성격 차이가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구조적 고립이라는 시선이 깊이를 만들고 있다.
부부의 갈등은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할 여유를 앓았기 때문이다.
경제적 부담으롤 마음의 여유를 앗아가고, 경제 사회가 상대를 동반자가 아닌 비교 대상으로 만들어 가고 있고, 개인 중심의 가치가 양보를 손해로 느끼게 한다.
결국, 대화는 줄어들고 침묵은 쌓이며 그 침묵은 오해로 굳어진다.
‘대화가 사라진 식탁, 각자의 방에서 켜진 불빛’, 가정이 무너지는 순간은 큰 사건이 아니라 작은 배려가 사라질 때이다. 한마디의 위로를 아끼는 순간, 상대의 피로를 외면하는 습관, ‘당연함’이라는 무관심. 이것들이 쌓여 사랑은 점점 생활 속에서 지워진다. 많은 사람이 부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참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참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태도이다.
가정은 완벽한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를 채워가며 살아가는 자리이다. 갈등은 피해야 할 실패가 아니라 다시 연결될 기회이기도 하다. 그 갈등이 상처와 폭력으로 이어진다면 그때는 멈추어야 하고, 바꾸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도움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
한 지붕 아래 산다는 것은 같은 공기를 나눈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숨을 쉬며 살아간다. 식탁 위에는 따뜻한 국이 놓여 있지만, 그 온기는 마음조차 데우지 못하고, 말없이 숟가락만 오가는 저녁은 하루의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고요한 단절로 남는다.
경제는 삶을 지탱하는 뼈대이지만, 때로는 그 뼈대가 마음을 짓누르는 무게가 되기도 한다. 생활의 무게에 눌린 부부는 서로를 기대기보다 서로에게 기대어야 할 이유를 묻는다.
“왜 나만 힘든가”라는 질문은 어느새 “왜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는가”로 바뀌고, 그 질문은 대답을 찾지 못한 채 서로의 가슴에 남아 작은 금이 된다. 금은 금방 드러나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틈 사이로 신뢰가 새어 나간다.
어떤 집에서는 소리가 커진다. 처음에는 답답함이었고 다음은 억울함이 이었으며 끝내는 분노가 된다. 말은 점점 거칠어지고 상처는 점점 깊어진다.
사람은 돌이 아니기에 던져진 말에 부서지고, 부서진 마음은 다시 예전의 모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폭언은 흔적이 남지 않는 폭력이라 말하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을 뿐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을 아이들은 조용히 바라본다. 닫힌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 멈추지 않는 긴장 속에서 아이들은 세상을 배운다.
사랑을 배우기 전에 불안을 먼저 익히고, 기다림보다 눈치를 먼저 배운다. 아이들의 가슴에 쌓인 감정들은 언젠가 또 다른 관계 속에서 되풀이될지도 모른다.
어떤 가정은 더 깊은 어둠 속에 놓여 있다. 손이 올라가고, 몸이 움츠려 조심해야 하는 공간 그곳에서는 사랑이라는 말이 이미 오래전에 떠나버렸다.
그런데도 그 자리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이거나, 책임이거나, 혹은 이미 무너진 마음이 갈 곳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고통을 견디는 것이 가정을 지키는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상처 위에 세워진 관계는 언젠가 더 큰 균열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묻는다. 부부란 무엇인가, 가정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부부는 서로를 완성해 주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완성해 주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이해하며 살아가는 동반자일 것이다.
갈등은 사라져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로 건너가야 할 다리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갈등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갈등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있다.
상대를 이기려 할 때 관계는 반드시 무너진다. 그러나 이해하려 할 때 비로소 관계는 숨을 쉬기 시작한다. 말을 이기기보다 마음이 들려는 순간, 비난을 멈추고 사연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나’에서 ‘우리’로 건너갈 수 있다.
가정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매일 조금씩 다시 만들어 가야 하는 자리다.
짧은 한마디의 안부, 사소한 배려 하나, 지나치지 않는 눈길과 늦지 않은 이해.
이 작고 느린 것들이 모여 가정을 지탱한다. 완벽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가정은 없다.
다만 서로를 향해 조금 더 다가서려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갈등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리이며, 상처는 지워지지 않더라도 보듬어질 수는 있다.
같은 집에 산다는 것은 같은 삶을 살아간다는 뜻이어야 한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마음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는 일. 그 느린 걸음 속에서 가정은 쉼이 되고, 사랑이 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자리가 된다.
같은 집에 사는 것이 가정이 아니라,
같은 마음을 향해 걸어갈 때 우리는 한 가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