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자들의 향기. _ 경주책방 어서어서.

by 시골서재 강현욱


이제는 그만 잊으라는 말은, 여전히 잔인하였다.

모니터의 커서는 깜빡거리며 손가락을 재촉하고 있었으나, 몇 시간 째 나는 단 한 자도 쓰지를 못하였다. 그걸 공포라고 말한다면 누군가는 어처구니 없다며, 겨 볼 지도 모르겠지만, 시작조차 하지 못한 문장이 목을 죄어오는 일은 글쟁이에겐 간혹 생겨나는 일이었다. 그럴때면 근원을 찾아보려 애쓰지만, 마음 안에 꼭꼭 숨어버린 것들을 찾아내어 다그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년 전, 어린 후배의 죽음과 같은 날의 나의 생일. 탄생과 죽음은 다른 것이 아닌 삶의 모습이라 여기면서도, 나의 생일이 다가오면, 자명한 듯 그의 죽음이 떠올랐다.

불안의 근원이 글을 쓰지 못하는 것 때문인지, 글을 써야 한다는 집착 때문인지를 알 수 없을때면, 그저 읽거나 산책을 하곤 했는데, 오늘은 타인의 문장조차 휘발되어버리기에 걷기를 선택하였다. 한 밤의 호수 위로 내려앉은 짙은 안개가 품고 있는 것들은 알아볼 수가 없었으므로 매혹적이었으나, 슬퍼보였다. 창백한 안개 속에서 위선을 벗어버린 나를 온전히 마주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무엇을 쓰고 싶은 것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싶은 것인지, 또 나는 무얼하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을지도. 스스로를 바로 볼 수 있을 때, 존재는 선명해졌고 치유는 시작될 수 있었다.

나는 오늘 저 안개를 넘을 것이다.


낡은 운동화와 무릎이 주름진 체육복은 내 목을 죄어오는 양복과는 달리 외부와의 연결을 독려하였다. 건너편 할아버지네 강아지인 가을이가 달려와 나의 걸음을 맴돌며 함께 하는 일에도 이제는 익숙하였고, 나의 안온한 풍경 중 하나가 되었다. 중년의 남자와 한 마리의 강아지가 나란히 걷고 있노라면, 달빛은 말 없는 말로 그들을 인도해 주었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없었다.

가을이의 목에 걸린 방울소리가 조금 성가시긴 하였으나, 나는 안개를 가르는 달빛을 보았고, 달빛도 나를 바라보았기에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달은 간혹 문장을 던져주곤 하였는데, 어둠을 밝히는 달의 속성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곤 하였다. 주름진 피부를 타고 전해지는 오롯이 존재한다는 전율이 한 밤을 서성이게 하였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를 비추는 달빛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미약하기만 한 바람의 소곤거림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는 분명 공명하고 있었다. 갈대가 같이 울고 있었기에 나도 묻혀가듯 조금 울 수 있었다. 보아줄 이 없는 이런 울음은 목적지가 없었기에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였다. 하지만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사랑보다 가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슬픔을 느끼고 함께 울 수 있을 때, 희망은 비로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주홍빛으로 상기되어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연신 수줍어하던 죽은 후배의 아이가 안개 속에서 자꾸만 생각났다. 그 아이는 절규 속에서 만난 희망이었다. 나의 생일이 다가오면, 그리고 장마가 찾아오면, 이와같이 슬픔과 희망이 번갈아가며 자리를 바꿔 앉곤 하였고, 그래서 조금 아팠다.

시골서재를 가꾸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백목련을 심는 것이었다. 목련은 떨어질 때, 너무 지저분하다며 동네 할아버지들은 여전히 손사레치곤 하시지만, 나는 그런 백목련을 사랑하였다. 백목련은 봄이 떠나는 게 너무나 서러웠기에 속이 문드러지고 썩어가다 결국 한 잎, 또 한 잎 중력에 의해 처참히 사라져 다. 백목련의 그런 모습에서 자신이 사랑한 것들에 대한 존엄을 보았다. 한 순간 작별을 말하며 순교하는 여느 꽃무리들과 달리 자신을 소진시켜 작별을 뱉고 또 뱉으지난하게 안녕을 말하고서, 반짝이는 푸른 잎사귀를 결국 그 자리에 피워내곤 하였다.

이것이 백목련의 이별이었다.


나는 남았고, 후배는 떠났다. 매년 반복적으로 돌아오는 그에 대한 회상에 남은 자들의 향기를 생각하였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이별들이 미덕인 세상에서 흩날리는 낙엽들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건, 찬란했던 시절을 못내 아쉬워하는 그들의 향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바람에 어찌하지 못해 결국 떨어지는 누런 잎새들에게 누군가는 질척거린다며 타박할 수도 있겠으나, 흩어지는 낙엽은 목련의 낙화만큼이나 처절하였고, 겨울을 향해 치닿는 그들의 향기가 가장 아름다웠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끈질긴 슬픔에 침잠하는 일은 소중한 것이라고 말해 주었기에 그들의 말에 주억거리며, 남겨진 것들의 침묵 위에 세워진 경주가 간혹 그리워지곤 하였다.

안개 낀 경주의 아침은 헤아릴 수도 없는 애와 환이 속수무책으로 달려들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모습을 보여주곤 하였다. 어찌 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경주의 돌담을 쓰다듬으며 길을 걸을 때면 남겨진 자들의 환이 들려오곤 하였다. 떠나버린 것들이 남겨두고 간 것이 환이었지만, 그리움의 대상이 사라졌기에 남겨진 자들은 말을 할 수가 없었고, 그저 환과 함께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가진 각자의 마음 속 무덤들은 누군가의 부재가 아닌 누군가를 향한 환이 자리하는 곳이었다.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 '강은교', '사랑법' 중. -


남겨진 것들의 미덕은 침묵이었며, 가늘게 뜬 실눈이었다. 떠나가버린 것들을 축복하는 침묵의 기도였으며, 떠나가는 뒷 모습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겠으나, 아니 바라 볼 수도 없는 애처로운 실눈이었다. 검은 띠를 두른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그 녀석을 생각하였다. 그는 가늘게 타오르는 향불을 따라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찾아 준 손들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그의 미소가 내 손에 쥐어질 것만 같은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그저 웃고만 있었다. 참으로 멋있는 후배였습니다는 말에 모두 통곡하였으나, 변하지 않는 그의 표정에 처음으로 무심한 녀석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사랑이 끊겨 버리고, 남은 자리에는 남겨진 자들의 끝을 알 수 없는 슬픔과 상실이 있었지만, 분홍빛 아이가 희망을 들고서 끊겨버린 자리를 이어나갔다. 붙잡아둔 슬픔 속에서 피어난 희망이 공명하며 살아지는 것이 삶인 듯하였다.

슬픔이 없다면, 희망을 알아볼 재간이 없는 것이다.


'엄마 치마 자락에 매달려 웃던,

곱디 고운 분홍빛 아이를 따라

오늘도 붉은 해는 지평선에 걸렸다.

자그마한 분홍빛 아이야.

너와 나는 살아야겠다.'

- '분홍빛 아이' 중.-



'나는 그 사람이 아프네요.'


그랬다. 후배를 생각하면 아렸고, 아이를 떠올리면 쓰렸으며, 통점은 언제나 명확하였다. 통점은 남겨진 자들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심장이 아플 것이고, 누군가는 오금이 저릴 것이며, 또 누군가는 머리가 깨어질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오른쪽 옆구리와 명치가 통점이었고, 글을 쓰기가 버거운 증상이 나타나곤 하였다. '롤랑 바르트'가 그 사람이 아프다며 중얼거린, 어법이 맞지 않는 이 문장에 대하여 나의 통점은 적확한 문장임을 이와같이 명징하게 설명해 주곤 하였다.

대릉원 돌담길을 지나 읽는 약을 처방한다는 황리단길의 '어서어서'라는 책방을 아픈 옆구리를 부여잡고서 찾아갔다. 수많은 이들이 오고가는 거리에 '정숙'이라는 글자만으로도 소란스러움은 사라지고 통증은 무뎌지는 것만 같았다. 유리문을 열고서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약을 처방해 달라며 책방지기에게 엄살을 부렸다.


'책방이 이렇게나 붐비니 좋으시겠어요.'

'처음엔 이렇지 않았는데, 잘 되는 책방보다 좋은 책방이고 싶어요.'

'작가님이시지요? 사인 해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이쪽 일을 하시는 분이세요?'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하려합니다. 작가님처럼 평온한 얼굴을 갖고 싶네요. 책 추천 부탁드립니다.'


책방지기이자 작가인 그는 웨딩 사진 작가에서부터 식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도전을 하다가 모두가 떠나버린 황량한 골목에 책방을 열었다. 낙엽을 쓸고서, 떨어지는 목련을 입을 벌린 채 바라보며, 그는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남겨진 그는 두려움과 희망이 교차하던 곳에서 문장을 읽고, 글을 써내려 갔으며, 책을 처방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책방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동네책방이 되었고, 어서어서 2호점을 준비하게 되었다. 내가 고른 책과 그가 처방해 준 책을 황색 갱지로 만들어진 읽는 약 봉투에 담으며, 그가 나의 이름을 물었기에 나는 그에게 대답하였다. 물음과 대답만으로도 다시 뛰어가 읽고,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봉투 겉면에 나의 이름을 반듯한 정자로 써내려 가는 그의 손에서 자부심이 새어나왔다. 아홉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지만, 시집부터 신간 소설에 이르기까지 그의 세심한 손은 바쁘게 움직인 듯하였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빼곡하였다. 그가 마음이 낫기를 바란다 하였기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희망이 수놓인 황리단길을 다시 걸었다.

옆구리의 통증이 가라앉고 있었다.



'내 기억 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중. -


후배가 떠나버린 부재의 자리를 봉합할만 한 정당한 언어는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시간 또한 아무것도 사라지게 하지 못할 것이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을 무뎌지게 할 수는 있겠으나, 거대한 무덤들의 침묵을 침묵시키진 못할 것이다. 나의 생일과 장마철이면 어김없이 찾아올 대체할 수 없는 그 누군가들의 부재한 자리를 채우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그저 고유한 슬픔을 동력으로 글을 쓰고, 아픔을 치유하려 책을 읽으며, 희망을 슬픔 옆 자리에 다시 써내려 가는 것이다. 푸른 실핏줄이 내비치던 후배의 아내와 그녀에게 달라 붙어있던 분홍빛 아이를 생각한다. 아이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엄마에 대한 아이의 사랑이 난폭한 생에게 보란 듯이 살아내게 하리라고 또박또박 적었다. 죽은 그가 간절히 바라는 건 그것뿐일 것이다. 누군가와의 추억을 온전히 간직하고 떠나거나, 혹은 그리워하며 남겨질 수 있는 건, 그 시절이 너무나 애틋하기 때문이기에, 슬픔은 지켜야 할 특별한 감정이며, 중요한 가치였다. 목련이 낙화하듯 오랫동안 아파하는 것은 무거웠던 사랑에 대한 지극한 예의였으며, 남겨진 자의 향기이다.

이제는 그만 잊으라는 말은, 여전히 잔인하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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