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9일. 새벽 3시.
알람 시계가 요란스럽게 밤을 두드렸고, 물먹은 솜이
되어있는 나의 몸은, 예상되었던 손님을 맞이하였다.
몸을 달래어 침대 밖으로 다리 하나를 꺼내놓고는,
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새벽의 밤은 아직 오지
않은 아침과의 재회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이
만나는 찰나의 순간, 오늘 하루의 기적은 빛과 함께
시작될 것이다. 세상에 편재하여 있는 각자의 마음에
담겨 있을 기적들이 오늘을 채워가길 바라였다.
특별한 오늘은 5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이었고, 나는 투표사무원이 되어, 본의
아니게 '선거관리워원회'의 업무지원을 하게 되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공공의 일에 대한 책임을 위하여,
나는 사전투표를 하였었고, 오늘은 타인의 선거권이
잘 행사될 수 있도록 의무를 부여받은 날이었기에,
새벽이 뱉어내는 날숨은 유난히도 짙고, 무거웠다.
일어나서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니, 투표에 대한
생각들이 두서없이 몸을 타고 흘러내렸고, 하수구로
빨려 들어갔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투표를 할 때마다
최선이 아닌 '차악이 누구인가'를 고민하였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고, 조금은 덜 나쁜
사람이 국민과 국가의 대리인이 된다면, 그래도 우리
사회가 조금은 덜 흔들리지 않을까하는 선명하지 않은
생각때문이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여야만 하는 내가
가끔씩은 처연하였다. 아직 밤의 손을 놓지 않은
새벽과 함께 투표소로 향하였다. 긴 하루가 될 것이다.
새벽 5시. 오늘 하루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 투표소에
도착하여 낯선 이들에게 가느다란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오늘 처음보는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하며, 버텨내어야 하는 나의 동지들이었다.
특히나 사전투표 논란이 거세게 있은 후라 투표소의
공기는 숙연하였고, 묵직한 무게감이 나의 어깨에
걸터앉아 나를 빤히 내려다 보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았고, 교육을 받은 후, 도착한
각 정당의 참관인들과 함께 투표함과 기표대의
정상적이고도, 공정한 상태를 확인하고서 모두가 모여
선서를 하였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공정한 선거가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각오와 다짐의 문장들이었고,
그 육중한 문장들은 까끌한 목에 걸려 가지도 오지도
못한 채, 오늘 하루 나와 함께 살아낼 것이었다.
투표의 시작을 알리는 여섯시의 시계바늘을 기다렸다.
초조함과 적요함이 새벽의 꼬리를 물고 있었고,
째깍거리는 손목시계만이 나의 호흡을 따라와 주었다.
문득 벽에 붙어 있는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입니다.'는
문장에 나의 시선이 가닿았고, 그 문장이 나의 머리를
혼라스럽게 하였기에 고개를 저으며, 이내 눈을
떼어내었다.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인가?'하는 의문의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우리 민주주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선거시스템만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우리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이었고, 더이상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접어버리게 하는 문장인듯하여, 나에게는
빈약하고, 불편한 문장으로 다가왔다. 모든 투표에
참여하였다 해서 우리 민주주의와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인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아도 공공성을
위하여 관심을 갖고서 참여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하는 생각을 하였다.
공공성을 나는 거창한 개념으로 여기지 않았다.
자신의 사익이 아닌 공동의 이익으로서, 나눔, 봉사,
정책제안과 비난이 아닌 비판 등 수많은 타인지향적인
것들을 포함하는 '루소(J.J.Rousseau)'의
'일반의지'에 가까운 개념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투표 참여 여부는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관심과 무관심을 가르는 수많은 기준들 중에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었을 뿐, 절대적인 척도는 아니었다.
인류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절대악인 히틀러도
절대적인 다수의 지지라는 투표를 통해 잉태되었다.
민주주의는 무관심이라는 병충해를 이겨 나가야하는
나무였고,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토양에서 잘 성장할
수 있는 것이었다. 투표 참여는 토양이 비옥해지도록
하는 비료인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의 꽃과 과실은
결국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인 것이고,
민주주의도 그런 과실을 얻기 위한 수단적 개념인 듯
하다. 공산주의도 결국 도구적 개념이었고, 현재는
실패한 수단이라 여겨지지만,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제도가 완결성과 무결성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단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보완하여 끝내는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깨어있는 시민들이 애달파하며, 애를
쓰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루소(J.J.Rousseau)'는
'사람들은 선거일 단 하루만 주인과 자유인이 되고,
이내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가 아니다. 선거가 꽃이라 생각하는 순간,
끝이라 생각하는 찰나에 제2의 히틀러가 빙긋 웃으며,
우리를 노려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피를 먹고 성장하며, 결국 안착하여 왔다.
권력과 자원을 향한 인간의 욕망 아래에서 민주주의는
권력의 방향과 배분의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붉은
피가 흘러야만 하였고, 헌납은 필수불가결 하였다.
프랑스는 자신들의 왕에게 목을 내어놓으라 하였고,
그들의 목은 민주주의의 붉은 깃발이 되어 나부꼈다.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피를 빨아 마시며, 성장하였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고무신 한짝과 바꿔
먹을 수 있는, 어느날 갑자기 잠에서 깨어 일어나 보니
하루 아침에 주어진 민주주의였고, 고무신 한켤레나
쌀 한봉지만 쥐어주면 하루 아침에 기표의 방향이
달라졌다. 하지만 그것을 탓할 수 만도 없는 우리의
역사였다. 절대적인 빈곤의 시절에서 허덕여야만
하였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되는지
그 누구도 우리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누군가를 위하여 투표하는
방법만을 알려주었을 뿐이었고, 따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 민주주의도 당연하다는 듯 피의 희생을
요구하였고, 지칠만큼 슬프도록 피를 갖다 바쳤다.
6.25 전쟁, 4월 혁명, 유신에 맞선 민주화, 광주항쟁,
6월 민주항쟁, 촛불집회. 그리고 공공성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끌려가서 두드려 맞고, 죽어갔을
숱한 이름 모를 순백의 붉은 피들. 왕의 목을 바치지
않은 대가로 우리나라는 수많은 이들의 피를 긴 시간에
걸쳐서 거름으로 내어 주었고, 지금의 우리들은
그들의 희생을 딛고, 조금은 더 나아진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고무신에 담긴 그들의 피가 오늘 이 투표소의 문을
열 수 있게 하였다. 감사함과 부채감이 밀려왔다.
달은 몸을 숨기고 있었고, 새벽은 다가오는 아침에
입 맞추고 있었다. 담배를 꺼내 물었고, 희뿌연
담배 연기와 한숨을 새벽의 대기가 단숨에 삼켰다.
담배를 끊어야 한다.
새벽 6시. '제20대 대통령 선거' 본 투표의 서막이
올랐고, 아침의 미소도 조금씩 번지고 있었다.
나는 투표관리관의 도장을 또박또박 투표용지에
찍어서, 투표용지에 적힌 일련번호를 떼어낸 후,
소중한 선거권을 행사하러 온 이들에게 한장씩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종이로 된 용지이다보니,
의도하지 않게 한사람에게 두장을 배부하는 실수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고, 두려움이
밀려왔다.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고, 정신차리라며
나에게 윽박을 질렀다. 실수가 있어서는 안되었다.
귀한 선거권이었고, 선거권이 훼손되어선 안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는 인주가 반만 찍힌다는데
여기도 그런거 아니냐'며, 투표를 하러 온 유권자가
말을 뱉어내었고, 그의 말이 투표를 위하여 기다리던
다른 유권자들에게 가닿았는지 조금 술렁였다.
참관인들과 함께 나는 정상적으로 기표가 되는지
확인하였던터라 마음의 일그러짐을 막지 못하였다.
결국 그는 기표하고 나오면서 '여긴 잘찍히네.'라며,
유유히 사라졌고, 나는 불필요한 선동을 등에 업은
그의 뒷 모습에서 아득해지는 처연함을 느꼈다.
편견과 추측성 말들은 타인에게 쉽게 전염되는
것들이었고, 그것들은 사람의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서
조금씩 마음을 갉아먹으며, 자라나는 것들이었다.
우리의 거대 정당들은 특정이익을 대변하기 보다는
다수의 이익을 모두 표방하는 포괄정당의 성격을 갖고
있다. 소수의 이익과 소수정당들의 안정적인 제도권
진입을 위하여 선거제도를 개정하고, 개편하여도
거대 정당들은 틈새를 파고들었다. 전문성과 조직력을
갖춘 거대 정당들이었고, 그들이 표방하는 정책들은
고객맞춤형이었다. 대기업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였다.
포괄정당은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정책의 다양화를
추구하였고, 그렇다보니 표방한 것과 달리 당선된 후
실제로 추진하는 정책의 우선순위에서는 소수의
이익일수록 하순위가 되거나, 빈 공약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정당간 쉽게 합쳐지는 일들이나, 후보자의
갑작스런 사퇴들도 유권자의 사표방지 심리를 이용한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정당이나 후보자들의
정치적 수사는 어쩌면 재원은 한정되어 있고, 모두가 한표씩 투표할 수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지극히 당연하고도,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일것이다.
한표를 얻기 위해 수많은 추측과 허언들을 쏟아내는
그들을 시민들 스스로가 잘 걸러내어야만 하는 부담을
갖고는 있지만, 깨어있는 시민들이 많아질수록
그 비용은 줄어들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내 손에 주어진 보물같은 투표용지가 부디 더 나은
내일에 닿을 수 있는 할인 티켓들이길 소망하였다.
오후 1시. 아직 점심을 먹지 못하였다. 유권자가 많은
투표소임을 알고 있었고, 받아들이고는 있었지만,
투표를 위해 기다리는 행렬은 줄어들지 않았다.
배가 고팠고, 머리는 어지러웠으나 노모의 손을 잡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투표를 위해 걸음하신 할아버지,
아이에게 투표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고사리
손을 감싸잡고, 들어서는 엄마들을 보며, 민주주의의
성숙함을 다시한번 볼 수 있었다. 투표소에 들어오는
아이의 하얀 운동화에서 불빛이 반짝거렸고, 그 빛을
냉큼 잡아 나의 허기짐을 달래었다. 배가 불러왔다.
저녁 6시. 낮달이 찾아와 흐릿하게 걸려있었고, 저녁과
밤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오늘 하루 중 가장 긴장되고
심장에서 땀이 나는 시간이었으며, 시간은 멈추었다.
지금부터 7시 30분까지는 확진자와 격리자의 투표를
받아내어야 하였기에 '레벨 D 방호복'을 입어야만
하였다. 사전투표시 발생하였던 논란으로 인해 투표소
관계자는 무거운 얼굴로 세심하게 해야할 일들을
짚어나가고 있었고, 그에게 묵직한 책임감이 들러붙어
이죽거리고 있었다. 이내 유권자들이 두드려 왔다.
투표를 하기 위하여 방문한 그들의 모습에서 전염병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 전염병 따위가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를 꺾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7시 30분. 참관인들과 함께 모두가 보는 앞에서
투표함을 소중하게 봉인하였다. 이 안에 오늘 투표한
이들의 바람들이 담겨있을 것이었고, 무엇이 되었든
조금은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도하였다.
투표함 호송차량을 배웅하였고, 남겨진 자들과 함께
선거의 흔적들을 정리한 후, 집으로 향하였다.
밤 9시. 집에 도착하였다. 창 밖 베어물린 달은
미약하게 넘어오고 있었지만, 밤이 짙어질수록
선명해져 갈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달에게 마음
하나 전해보았고, 그는 반짝이며 손길을 내밀었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가 아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다. 우리 민주주의는 지금도 조금씩 꽃을
피우려는 중인 것이다. 비록 뒷걸음질 치는 듯, 느껴질
때가 있지만, 우상향 상승 곡선을 보이며, 우리의 삶을
그려 나가고 있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있는 한, 그의
궤적은 희망의 자취를 남기리라 나는 그렇게 믿는다.
소란스럽던 선거는 비록 끝났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과 비판, 열망을 가득담아
꽃이 시들지 않게 잘 가꾸고, 피워내길 바라였다.
개표결과가 나왔다. 그 결과가 각자에게 만족스럽든
그렇지 않든, 다가올 시대가 조금은 더 나아지려면,
당신과 나, 우리들이 깨어있어야 한다. 비록 보잘 것
없고, 빈약한 나이지만, 내가 행한 별 것 아닌 행동들과
말들이, 내가 애달파하는 별 것 아닌 글들과 마음들이,
찰나의 순간만큼은 내가 발붙이고 있는 공동체에게
위로와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래보았다. 비록 현실은
가난하더라도 누군가의 마음에 마음을 더하며, 깨어있길 희망하였다. 그래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달빛이 다정하게 내려앉았다.
달에 기대어 고단한 몸을 누여보았다. 괜찮다.
그나저나 자고 일어나니 목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고
가벼운 목 감기이길 바라며, 자가진단키트로 체크해
보았다. 다행히 음성이었지만, 오늘 하루는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였다. 몸살감기인가보다.
몸도, 마음도 조금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