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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Nov 05. 2019

거짓말쟁이와 엄마

지금도 나보다 예쁜 엄마에게




  엄마는 늘 내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라고?" 그럼 나는 반사적으로 "거짓말쟁이요."라고 말했다.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였다.


  어릴 적 주말이면 의무적으로 교회에 다녔다. 헌금으로 내라고 준 천 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가기 싫은 몸을 일으켜야 했다. 교회에서 유일하게 즐거운 것은 (아마도?)대학생이었을 선생님과 성경 수업을 한 후, 함께 교회 옆 작은 슈퍼로 가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염치가 없었다고 생각되지만 그때는 대학생 선생님들에게 백 원, 이백 원하는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얻어먹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우리가 조르진 않았지만 뭔가 교회 시스템(?) 상 성경 수업이 끝나면 그 슈퍼로 향했다.


  사건이 발생된 그날은 어쩐지 대학생 선생님이 슈퍼로 가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과 습관적으로 슈퍼에 들렀고 그 후부터는 글쎄.. 자세한 기억이 나진 않는다. 집으로 돌아와 방에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성난 얼굴로 나를 불렀다. 그리곤 격양된 톤으로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라고???"라고 물었고, 나는 꼬리가 밟힌 햄스터처럼 "거.. 짓말.. 쟁이요.."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큰 눈을 더 크게 뜨고는 "너 교회 끝나고 슈퍼에서 돈 안 내고 과자 가져왔니?"하고 물었고 나는 "아니요."라고 말하며 훌쩍였다. 그러자 엄마는 "여기 있네. 그 거! 짓! 말! 쟁! 이! 가!"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나는 뭐가 뭔지 몰라 놀란 얼굴로 울며 엄마를 쳐다봤다. 당시 내가 7살이었으니까, 빠른 이해가 어려웠을 때다.


앨범을 펴먼 마음이 뭉큰해 얼른 닫는다. 젊은 엄마가 너무 예뻐서. 왜이렇게 눈물이 나는 지 원참.


  그렇게 나는 가족들이 저녁식사를 할 때까지 마당의 차디찬 시멘트 바닥 위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든 채 벌을 받아야 했다. 콧물과 눈물이 섞여 범벅이 됐다. 무지 억울했다. 슈퍼 아주머니가 보았다는 대로, 내가 과자를 슬쩍하여 그걸 내 입속으로 넣은 기억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나빠!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야!"라고 호소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참 후에 저녁식사에 참여하게 해 주었지만 난 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그날은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이 탄생한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3년 정도가 지났을까. 우리 교회에는 나보다 키는 작지만 말을 야무지게 잘하고 친구들을 빈번히 험담하는 요망(?)한 아이, 배주나가 있었다. 그 친구네 집과 우리 집은 걸어서 불과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별로 친하고 싶지 않은데도 그냥 같이 놀이터에서 많이 놀았다. 노는 동안에도 툭하면 화를 내서 곤란하고 상처를 받기도 했다. 어느 날, 교회가 끝나고 배주나가 내게 "지혜야. 오늘 우리 집에 가서 놀자."라고 제안했다. 호의라는 것은 알지만 그동안 괴롭힘을 많이 당해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 오늘 할머니 집에 가서 안돼."하고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왠지 배주나의 눈빛이 심상치 않아 집으로 향하는 길이 불안했다. '혹시... 배 주나가 우리 집에 전화해서 엄마에게 오늘 지혜가 할머니 집 가냐고 물어보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고 온몸에 땀이 쭉 났다. 정신없이 집으로 달렸다.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인데, 나는 배주나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토마토같이 벌게진 내 얼굴을 보고 엄마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지혜야, 무슨 일이야!"하고 물었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전화기와 엄마를 번갈아 보며 끙끙대자 엄마는 차분한 목소리로 한번 더 물었다. "괜찮아. 말해봐." 내 말이 다 끝나갈 때쯤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배주나였다.


  방모서리에서 무릎을 껴안고 벌벌 떨고 있었고, 엄마는 전화를 받으러 갔다. 전화를 마친 엄마가 잠시 뒤 내게 왔다. 나는 크게 혼날 거라는 생각에 울음이 멈춰지지 않았다. 그때 엄마가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배주나 그 녀석 못됐네. 우리 딸을 이렇게 힘들게 하고. 엄마가 배주나한테 지혜 할머니 집 간다고 말했어. 지혜 얼른 밥 먹게 씻고 와." 그제야 긴장이 확 풀렸다. 그날은 코가 빨게진 채로 밥 한 공기를 다 먹을 수 있었다.


26살의 엄마와 4살의 지혜, 6살의 야무진 언니. 언니는 초를 다 불어버릴 태세다.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였다. 그러나 사랑이 담겨있는 거짓말이라면 몇 번 정도는 용서해줄 수 있으신 듯했다. 그 후로 나는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여러 번의 거짓말을 하고 살았다. 괜히 나를 과시하고 싶을 때나 위기를 슬쩍 모면하고 싶을 때. 서른이 넘은 지금은 그런 과시적인 거짓말을 해도 별로 멋지지 않음을 알았고, 위기 모면의 거짓말은 신뢰를 깨트린다는 것을 알아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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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보다 예쁜 엄마에게.

kangj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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