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다른 태국> 드러낸 용기

방콕(feat. 논타부리) | 6

by 강라마

방콕의 구도심 한복판, 로마니낫 공원.

아이들의 웃음과 비눗방울이 떠다니는 잔디밭 한가운데 서 있으면, 여기가 한때 ‘차가운 시간의 문턱’이었던 공간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지금은 시민의 쉼터이자 주말 산책로로 사랑받지만,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문명’을 명분으로 지어진 감옥, 그리고 인간의 존엄이 가장 차갑게 식었던 장소였다.

스크린샷 2025-10-10 오전 12.09.41.png 방콕 올드 타운에 위치한 로마니낫 공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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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 | Thailand_Bangkok | Copyright © llama.foto

1889년, 라마 5세 시대의 시암은 위기의 중심에 서 있었다.
프랑스와 영국이 국경을 조여 오던 시절, 시암이 택한 생존의 언어는 ‘근대화’였다.
법과 행정, 군사와 교육, 그리고 건축까지 모두 서구식 모델로 바꾸어야만 독립을 지킬 수 있었다.

그 상징 중 하나로 세워진 건물이 바로 이곳, ‘시암 최초의 현대식 교도소’였다.
당시 유럽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고안한 판옵티콘(Panopticon) 구조를 본떠 지은 감시 시스템 중앙 감시탑에서 모든 수감실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구조였다.

감시자가 보이지 않아도 감시받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공간. 이곳은 그 자체로 ‘심리적 통제’의 실험장이었다.
시암은 그것을 문명의 상징이라 부르며 서구 열강에 보여주었지만, 그 안에서 무너진 건 사람의 존엄이었다.

쇠사슬의 소리, 인간의 그림자, 좁은 감방 안에 수십 명이 갇혀, 하루 종일 쇠사슬을 찬 채로 생활했다.

뜨겁고 통풍조차 되지 않는 공간에서 질병은 빠르게 번졌고, 고통은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잠을 잘 때도, 식사를 할 때도,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조차 쇠사슬은 풀리지 않았다.
철제의 차가운 울림은 밤낮없이 벽을 울렸다.

그 시절 이곳은 ‘근대화된 시설’이라 불렸지만, 실상은 인간이 인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구조물이었다.
문명은 그렇게, 가장 비문명적인 얼굴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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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참수형이 폐지되었을 때 사람들은 잠시 안도했다. 하지만 새로운 형벌은 더 체계적이고, 더 냉정했다.
총살 기계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철제 틀에 결박된 사형수, 가림막 뒤에서 방아쇠를 당기던 사수.

그 기계는 불과 수십 년 전까지 실제로 사용되었다. 국가는 법의 이름으로 생명을 제거했고, 그것을 문명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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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 | Thailand_Nonthaburi | Copyright © llama.foto

1987년, 정부는 교도소를 폐쇄하고 그 자리에 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1992년, 시리킷 여왕의 60세 생일을 기념해 완공된 이 공원은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로마니낫, ‘은은한 달빛’이라는 뜻.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어두운 과거 위에 가장 평화로운 공간이 세워진 셈이다.

벽의 일부는 철거되었지만, 그중 몇 동은 그대로 보존되어 교정 박물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교정 박물관은 아유타야 시기부터 어떻게 수형자들을 어떻게 관리했는지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더불어 수형자들이 그린 그림과 만든 공예품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누가봐도 너무 잘 그린 그림이고 잘 만든 공예품이지만 그것들은 예술품이라기보다, 박탈된 인간이 어떻게든 ‘존재의 흔적’을 남기려 한 기록으로 느껴졌다.

이 곳을 걸으면서 평소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을 나에게도 던지게 된다.
죄를 지었다는 이유만으로 존엄까지 거두어도 되는가?

결코 쉽게 단언하며 답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로마니낫 공원에 위치했던 옛 교도소가 사라진 뒤에도, 이 도시의 또 다른 변두리에서는 여전히 쇠문이 닫히고 있다.
방콕 외곽 논타부리에 있는 방쾅 교도소(Bang Kwang Prison). 사람들은 그곳을 ‘방콕 힐튼’이라 부른다.

이 아이러니한 이름은 20세기 후반, 외신 기자들이 처음 붙인 별칭이다.
냉방조차 없는 비좁은 감방, 300명이 넘는 수감자가 한 방에서 생활하는 현실을 서구의 ‘럭셔리 호텔’ 이름에 빗대 조롱한 것이었다. ‘방콕 힐튼’ 그 말 속엔 국가 권력의 냉혹함과 동시에 역설적인 동정이 섞여 있다.

영국·호주 등 외국인 마약사범들이 수감되면서 국제 언론은 그곳을 ‘태국의 가장 잔혹한 호텔’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 별칭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근대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통제의 유산을 드러내는 또 다른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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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 | Thailand_Nonthaburi | Copyright © llama.foto

지금의 로마니낫 공원은 아이들이 뛰놀고, 연인들이 산책하며, 노인들이 벤치에 앉는 평화로운 장소다.
그러나 그 평온한 잔디 아래, 여전히 이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존재들이 잠들어 있다.

태국은 이제 ‘처벌’에서 ‘교정’과 ‘재활’로, 조심스러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이 공원의 존재 이유와 닮아 있다고 느낀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교정 박물관이 어쩌면 숨기고 싶을지도 모를 과거를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사실이었다.
그 용기야말로 이 공간이 지닌 진짜 의미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억압을 덮지 않고 드러내며, 그 위에 평화를 쌓는 일.

그것이 이 도시가, 그리고 우리가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작은 증거처럼 느껴졌다.


*타임라인*

1889년: 라마 5세가 “방콕 특수 구치소” 건립 → 근대 교정의 시작

1987년: 교도소 폐쇄 → 1992년 로마니낫 공원 조성

1999년: 방콕 교정 박물관 개관 (교도소 일부 건물 보존)

2017년: 박물관이 논타부리 교정 박물관으로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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