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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귤 Mar 26. 2020

파리에서 크레페를 더 맛있게 먹으려면

33일의 청춘 유럽여행 #3


‘이럴 수가! 우와! 대박 맛있다!!’

태어나서 먹어본 크레페 중에 제일 맛있었다. 어깨춤이 절로 나올 것 같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표정으로 입을 오물거렸다.


사실 이 크레페 맛집은 숙소를 찾아 장장 세 시간을 헤매다가 우연히 들어간 곳이었다. 에어비엔비를 통해 일반 파리 가정집을 숙소로 잡아 아무래도 주변이 대부분 주택가였고, 그 사이에 위치한 크레페 집을 발견한 것이다. 자리도 좁은데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주문을 하고 있었고 로컬들이 붐비고 있어 여기가 지역 맛집이다 싶어 살짝 옆에 줄을 서봤다.


©강귤

주문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다. 사장님께 여기서는 어떤 메뉴가 잘 팔리냐고 물어보니 친절하진 않았지만 아주 긴 대답이 돌아왔다. 안타깝게도 모두 프랑스어라서 단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왜 당연히 영어 하나로 마치 미국에 있는 것처럼 의사소통이 잘될 거라고 믿고 왔을까. 혹시나 먼저 메뉴를 시킨 사람들 중에 영어를 쓰는 사람이 있으면 뭐가 맛있냐고 물어보려고 가게 안을 둘러봤다. 내 귀에 들려오는 건 오직 프랑스어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아 이게 외국이구나 싶었다. 일단 뭐라도 시켜야 하니까 눈치를 보다가 사장님을 불렀다. 전 세계 공용어, 바디랭귀지를 쓸 시간이 왔다. 왼쪽 속의 검지 손가락을 최대한 길게 쭉 펴서 옆 사람이 먹고 있는 프레페를 가리켰다.


"Seven Euro"


드디어! 사장님이 한 말을 알아들었다. 세븐 유로. 제 아무리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해도 가격만큼은 귀에 콕콕 박히게 잘 말씀해주시는 게 전 세계 사장님들의 능력인 듯하다. 이제 재빨리 세븐 유로만 내면 저 크레페를 맛볼 수 있다! 내 뒤로는 세 명정도가 주문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돈 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파리 공항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뽑았던 현금은 거대한 배낭가방 깊이 쿡 찔러져 있었다. 아주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이 가게 앞에서 나는 더 바쁘고 요란하게 가방을 뒤졌다. 덕분에 뒷사람들은 한동안 주문을 하지 못했다. 민폐라고 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지만 나는 끊임없이 크레페를 만들던 사장님께 내가 작은 휴식을 드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마침내 가방 속의 750유로(한화 약 100만 원) 뭉태기를 찾아 꺼냈고 그중에 7 유로를 빼서 사장님께 드렸다. 고생했다는 눈빛을 기대하면서 사장님을 바라봤는데 수많은 손님 중의 하나라는 하찮은 눈길만 받았다.


©강귤

거울을 바라보고 앉는 높은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후, 이름은 모르지만 아까 손가락으로 가리켰던 크레페가 나왔다. 내 얼굴의 두배는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아직까지 배낭도 못 내려놓고 숙소도 못 찾고 파리에 도착해서 먹는 첫끼. 싱싱한 햄, 토마토, 야채, 치즈 등이 아낌없이 들어간 왕 크레페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거 주문하느라 고생했다. 이제 한번 먹어보자.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려 앙 하고 한입 물었다.


"오!"


짧은 감탄사가 입에서 절로 나왔다. 간이 짜지도 달지도 않고 재료들의 신선함이 입에서 톡톡 터졌다. 호들갑을 떨면서 '이럴 수가 우와 대박 맛있다 너무 맛있다 그치?'라고 옆 사람과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거울을 보며 혼자 먹던 각도에서 의자를 오른쪽으로 살짝 틀었다. 그쪽에는 친구들끼리 왔는지 세 명이 옹기종이 모여 정신없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여기에는 끼기 힘들겠다. 이번에는 의자를 왼쪽으로 살짝 틀었다. 한 커플이 손을 꼭 잡고 서로를 바라보며 크레페를 달콤하게 먹고 있었다. 나는 다시 정면으로 의자를 고쳐 앉고 거울을 바라봤다. 그리고 크레페를 먹는 내 모습을 셀카로 담아 엄마아빠와 동생에게 보냈다. 그다음 다시 무표정으로 크레페를 오물오물 씹었다.


어서 내일이 되어 동생이 파리에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크레페가 맛있을 때 혼자 맘속으로만 속삭이지 않고 동생이랑 큰소리로 대박 맛집이라고 떠들고 싶었다. 크레페가  맛있으려면 같이 나눌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깨달았다. 이 맛있는 크레를 반은 나눠주고 나머지 반쪽만 먹어야 한다고 해도.









*혹시 이 크레페 집을 가보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주소 남깁니다.

 AUP'TIT GREC: 68 Rue Mouffetard, 75005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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