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여행기] 03-낯섦의 향연

낯선 건물, 낯선 풍경, 낯선 돈, 그리고 낯선 아이스아메리카노 가격

by 강라헬

얼마나 걸었을까. 중간에 환승을 하고 지하철을 갈아탄 후, 버이더후녀드 성 앞에서 내렸다.

거기서 옥타곤 근처 숙소까지 캐리어를 끌고 도보로 이동하면 되는데,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던지라 건물 구경하며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전에 회쇠크 광장을 지나쳐 사진을 찍었다. 얼마 전 텔레비전 여행 프로그램에서 봤던 미카엘 천사장의 기둥이 이 도시를 수호하듯 높이 서 있었다.

텔레비전으로 보던 곳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이 비로소 조금씩 실감 나기 시작했다.

내가 이곳 부다페스트에 있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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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길바닥은 아스팔트와 시멘트, 보도블록으로 잘 포장되어 있어 캐리어 끄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여담이지만 프라하의 돌바닥은 정말... 체스키는 상상 이상이었다.)

로드뷰로 예행연습을 했던 것처럼 큰길을 따라 쭉 걸으니, 구글 평점이 꽤 높았던 작은 동네 카페가 보인다. 아쉽게도 현금만 받는다고 쓰여 있어 미련 없이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조금 더 가니 파란색의 반가운 SAMSUNG 간판이 눈에 띈다.

옥토곤 사거리에 위치한 커다란 삼성 건물을 등지고 조금 더 걸었더니 스타벅스가 보였고, 그 길 맞은편에 숙소가 있었다.

딱 봐도 호텔이나 모던한 숙소 형태는 아니라 살짝 당황했다. 벽에 붙은 초인종을 눌렀다.


"고장 난 건가? 이거 되는 거 맞아?"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대답이 없다. 잠시 서성이다 혹시나 하고 메일을 확인하려는 찰나, 다행히 안에서 사람이 나오길래 얼른 따라 들어갔다. 그들도 투숙객인가 보다.

건물은 내가 알고 있던 한국의 아파트나 호텔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와 구조였다. 커다란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텅 빈 공간 중앙에 회장님 댁에나 있을 법한 거대한 계단이 휘감아 올라가고 있다. 한쪽 구석에 엘리베이터로 보이는 것이 존재했는데, 이것 역시 신기했다. 나무판자로 된 문을 직접 열고 닫으며 층수 버튼을 누르는 식이다. 살면서 수동식 엘리베이터를 처음 보았다. 사람 두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도르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나무판자 감성! 이게 뭔가 싶어 한참을 웃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내리니, 메일에 설명된 호수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제일 끝에서 주인처럼 보이는 남자가 손짓한다. 다가구 주택 형태의 에어비앤비 느낌이었는데,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나쁜 인상은 아니었다. 남자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니 내가 예약한 사진과 완전 동일한 모습이었다. 남자는 이것저것 설명을 하면서 에어컨 리모컨을 손에 쥐고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리모컨을 받아 들고 능숙하게 조작을 해대자, 그가 조금 놀라는 눈치다.


'.........?? ...내가 에어컨 조작을 잘해서 놀란 건가?'


지금 생각해 보니 그가 어디서 왔냐고 물었고, 나는 사우스 코리아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설마 내가 사우스 코리아라고 생각하고 노스 코리아라고 대답한 걸까? 그래서 내가 에어컨을 너무 잘 다루자 놀랐던 걸까?

혼자만의 남북한 오해 미스터리에 빠져 있는데, 남자가 멀뚱히 서있다.

아! 계산.

얼마냐고 물었더니, 뒷주머니에서 꺼낸 계산기로 15,000이라는 숫자를 찍는다. 가격을 확인했으니 돈을 지불해야지. 숙소에 오기 전, 근처 은행에 들러 숙소비 포함 하루 쓸 돈만 최소한으로 인출했다.

낯선 동양인, 그것도 연약한(?) 여인 등 처먹지 못하도록 최대한 없는 행색을 했다. 네모난 동전 지갑에 지폐를 두 번 접어 넣고, 남자 앞에서 당당하게 청바지 앞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꼬깃해진 지폐를 잘 펴서 건넸다.

'이 사람들아, 암만 털어봐라. 그래봤자 이만 포린트가 전부다.'


짐을 풀고 숙소 앞에 있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한참 더울 여름이라 시원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길 요량이었다. 유럽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다고 하지만, 이곳은 프랜차이즈니까.

외국인 앞에서 주문하는 것에 대한 쫄림 1도 없이 위풍당당하게 들어섰으나... 일보 후퇴!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숨 막히게 더운 공기에 나도 모르게 "와 씨, 겁나 더워!"라는 탄성이 튀어나왔다.


'안 덥나? 에어컨이 없나?'


나의 두 눈은 자연스럽게 천장을 향해 에어컨의 유무를 확인했다. '천장에 잘 붙어 있는데 왜 안 돌리는 걸까.' 본능적으로 손선풍기를 최고 단계인 3단계로 틀어 얼굴 주변으로 돌리고 또 돌렸다. 그런 나의 모습이 웃겼던지 알바생이 '풋' 하고 웃는 게 보인다.


'그래, 누구 하나 웃으면 됐지. 근데 고장 안 났으면 에어컨 좀 틀어주지 그래?'


더우니까 아이스 아메리카노 제일 큰걸 시켜야지. 메뉴판을 계속 보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제일 큰 사이즈가 원화로 3,500원? 4,300원?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한국에서 판매되는 가격과 현저히 다르게 착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프라하는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그래서 얼음을 많이 넣어 제일 큰 사이즈와 샌드위치를 하나 시켰다.

앉아서 요기라고 하니 더운 것도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테이블에 앉아 한국과는 다른 풍경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내가 진짜 부다페스트에 있구나.'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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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고 먹을 것도 다 먹었으니, 그냥 숙소에 가서 에어컨 켜놓고 친구를 기다리기로 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올라니까, 그제야 에어컨을 켜는 저 행동은 무엇?

그렇게 땀을 흘렸는데, 어이없네.

그래도 나는 다음 날 또 이 찜통 같은 스타벅스에 발을 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가격이 너무 착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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