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 없는 상처
24년 2월의 마지막 날, 난 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뤘다.
작가가 되는 것. 한 단어와 쉼표까지도 세심히 직접 쌓아 책을 한 권 완성하는 일의 문이 열렸다.
너무 오래 고대하던 일이 이뤄지면 실감이 나지 않아 믿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하루, 이틀 그렇게 기쁨에 흠뻑 잠겨 빈 페이지를 채워가고 있었다.
작가 계약이 성사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낯선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강설님. 영상피해 처리업체인데요,
아래 영상이 본인인지 확인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퍼지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낯선 이름의 누군가가 보낸 카톡 메시지는 알림 창을 통해 언뜻 봐도 이해되지 못할 내용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게 뭐야? 하는 대수롭지 않은 맘으로 클릭한 카톡창을 누른 내 손가락을 부러트리고 싶었다. 차라리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곧바로 메시지를 삭제해 버렸다면 좋았을 것을. 그 메시지를 마주함으로 인해 내 안엔 쉬이 낫지 못할 커다란 상처가 생겼다. 방금 전까지 출간 계약으로 행복하기만 하던 마음은 한순간에 잿빛으로 변해버렸다.
어딘지 모를 공간에서 한 여성이 나체로 움직이고 있는 영상이 재생됐다. 얼핏 보면 진짜 촬영된 영상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문제는 그 여성의 얼굴이 내 면상이라는 거다. 한낮 장난, 잠시 골탕 먹이려는 수준으로 보이지 않았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던데,
작정하고 날 겨냥하고 던진 그 묵직한 돌은 너무 아팠다. 자그마한 돌멩이가 날아오나, 싶어 들여다봤더니 내 몸보다 훨씬 큰 바위였다. 표면은 험하고 거칠었고 날 맞추어 맞닿은 부분의 살점을 서걱서걱 찢었다. 길 가다 넘어져 무릎이 까지고 검붉은 피가 흐르는 그런 외상이라면 소독하고 꼬메버리면 될 텐데, 이 상처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곳에 생겼고 어떻게 치료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물긴 하는 건지, 예전처럼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건지 누구에게든 물어보고 싶었다. 도움을 청하려면 내 상태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우선인데, 입 밖으로 꺼낼 수 조차 없었다.
저기요, 제가 도움이 필요해요.
저, 딥페이크 피해자가 됐는데,
어떻게 해야 돼요?
입술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는 이 문장을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가끔은 소리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만 읊조린 적도 있었다. 누군가 혹시 알아봐 주지 않을까, 날 살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맘에 중얼거리기도 했지만 죽어가는 내 소리를 발견하기엔 그대도 힘겹게 살아내고 있었다. 어깨를 톡 건드려 ‘나 여기 있는데 나 좀 살려줘’라고 말하고 싶어 손을 뻗었다가도 곧바로 내 품으로 다시 가져왔다.
이 이야기를 믿어줄까, 날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위로받는다고 괜찮아질 수 있을까.
그렇게 활짝 열려 따스한 햇살이 스며들던 삶은 마치 내 세계에는 해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어둑해졌고 거대한 돌문이 발끝에 떨어진 듯했다.
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펫로스로 눈물짓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힘을 전하는 책을 쓰고 싶다면 아름답고 순결한 목표는
한 순간에 바위에 깔려 짓이겨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