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스스로 말하지 않지만:

3월 8일, 팍촘에서의 하루

by 강제욱


북쪽에서 지나온 며칠의 장면들은 아직 몸의 미세한 틈새에서 다 빠져나가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었다. 국경이 교차하는 도시들의 서늘한 긴장, 짙은 향냄새가 배어 있는 오래된 사원들, 에메랄드빛 불상과 그 아래 똬리를 튼 나가²(Naga)에 얽힌 전설, 강과 습지, 그리고 접경지대 특유의 모호한 공기가 차례로 내 안에 겹쳐 남아 있었다. 치앙라이(Chiang Rai)와 치앙샌(Chiang Saen), 메콩과 루악강이 합류하는 솝루악(Sop Ruak)을 거치는 동안, 우리는 강을 그저 낭만적인 물리적 풍경으로 소비하기보다 콕강(Kok River)의 중금속 오염과 람사르 습지의 훼손, '물 관리'라는 매끈한 행정의 명분 아래 자행되는 인위적 개입의 단면들을 먼저 더듬고 있었다. 그러나 이 무거운 진실들은 훗날 지독한 호흡으로 따로 기록해야 할 기나긴 서사들이다. 지금은 그저 그 생태적 훼손의 지층들이 3월 8일이라는 특정한 하루의 풍경 바깥에, 마치 지질학적 배경처럼 낮고 무겁게 드리워져 있었다고만 말해두고 싶다. 어떤 여정에는 단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 한 문명의 흥망과 생명의 지속성을 압축해 보여주는 섬광 같은 순간이 있다. 내게 팍촘(Pak Chom)에서의 하루가 정확히 그러했다.


우리가 지친 몸을 누인 곳은 팍촘의 어느 작고 소박한 숙소였다. 간판은 홈스테이를 달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현지 노부부의 고단하고도 성실한 삶의 궤적이 정갈하게 배어 있는 단정한 공간에 가까웠다. 전날 밤, 10시간에 걸친 지루한 이동 끝에 어둠의 심연이 가장 깊어진 시간에야 그곳에 닿았다. 칠흑 같은 밤은 강의 거대한 육신을 완전히 덮어버렸고, 나의 지리적 위치 감각마저 철저히 삭제시켰다. 그래서 이튿날 새벽, 미명 속에서 눈을 떴을 때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마치 밤사이 무의 바다에서 새로이 융기한 하루 밤이 창조한 낯선 세계 같았다.


새벽을 찢고 들어온 것은 시각적 풍경보다 소리의 파동이었다. 마치 기원전의 전설 속에나 등장할 법한, 이승의 것이 아닌 듯한 기이하고 영적인 새소리와 먼 곳에서 대기를 가르는 닭의 울음, 그리고 곤충의 건조한 마찰음이 짙은 청색의 차가운 대기층에 겹겹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 원초적인 소리들이 강 건너 라오스의 산맥에 부딪혀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것인지, 아니면 미지의 숲이 스스로 화답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몽환적인 틈새로, 라오스 쪽 사원의 묵직한 종소리가 건너왔다. 이곳 팍촘의 지리적 위상은 기묘하다. 우리 앞의 라오스 땅이 강의 북쪽에 솟아 있고, 우리가 딛고 선 태국 땅이 남쪽에 엎드려 있다. 강이 동쪽을 향해 굽이치는 지형 탓에 태양은 우리의 오른편에서 떠올라 왼편으로 진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근대적 방위의 감각이 우주적 척도 안에서 미세하게 틀어지는 그 찰나, 나는 비로소 이 강을 지도가 아닌 실존의 눈으로 마주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자신이 그은 관념적인 선으로 공간을 규정하려 하지만, 강은 언제나 지도보다 먼저 그 자리에 묵묵히 존재했고, 아침의 빛은 인위적인 국경선과 무관하게 강의 양안(兩岸)을 공평하고도 눈부시게 적신다.


날이 밝아오자 숙소 앞의 메콩은 한 마리의 거대한 파충류처럼 길게 누운 자태를 드러냈다. 흐른다는 동적인 묘사보다는, 태고의 시간부터 그 자리에 가라앉아 엎드려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압도적인 질량의 물이었다. 강의 한가운데에는 파피루스 다발을 성글게 엮어 만든 듯한 연약한 사주(砂洲)가 위태롭게 떠 있었고, 그 위에는 색색의 파라솔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아래에서 허리를 굽힌 채 묵묵히 모래를 일며 사금을 캐고 있었다. 금(金)이라는 가장 노골적이고 탐욕적인 자원과 관련된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이곳의 대기와 동화되어 평화롭고 초연해 보였다. 다른 대륙의 접경지대에서 흔히 연상되는 자원 카르텔의 총격이나 피비린내를 이곳에서는 도무지 상상하기 힘들다. 거대한 물결은 무심히 아침의 빛을 반사했고, 인간들은 그 일렁이는 반짝임 속에서 구도자처럼 몸을 굽혔다. 거대한 대자연은 늘 그런 식으로 인간의 덧없는 욕망과 생활조차 자신의 광활한 프레임 안에 아무렇지 않게 품어버린다.


메콩 유역의 습하고 뜨거운 흙을 밟으며 조금만 오래 걸어보면, 이 지역 민중의 내면에 자리한 믿음의 체계가 단순히 '불교'라는 단일한 종교적 언어로는 결코 온전히 해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북쪽에서 채집한 이야기들 가운데에는 신성한 불상과 배 안에 귀신이 깃들어 있다는 전설도 있었고, 기층에 깔린 토착적인 정령 신앙이 너무도 짙게 뿌리내려 외래 종교조차 그 생태적 토양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는 인류학적 통찰도 있었다. 깊은 물결 아래 도사린 나가(Naga)나 창공을 굽어보는 홍(Hong) 같은 상상 속 존재들은 단순한 도상학적 장식물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우주적 관계로 이해하던 고대인들의 세계관이 원자 단위로 분해되었다가 다시 뭉쳐 살아남은 영적 잔존물이다. 메콩 경제권에서 나가는 생명을 잉태하는 물과 경계, 보호를 상징하며, 홍은 하늘을 잇는 메신저로서 불교의 우주관 안으로 교묘하고도 능수능란하게 스며들었다. 그것들은 역사 속으로 소멸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언어에 맞게 끊임없이 '번역'되었다. 문명의 지층에서 가장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은 무균실의 순수한 형태가 아니라, 이질적인 것들과 기형적으로 섞이고 타협하면서도 끝내 자신의 본질적 생명력을 잃지 않는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사실을 이 강변의 신화들은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강을 바라보며 이 장구한 생명력의 연쇄를 생각할 때, 근대의 인간이 자기 세대의 얄팍한 효용에 맞추어 거대한 자연을 재설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끔찍한 인지적 오만이다.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관광 자본을 끌어들인다는 행정의 언어는 매끄럽지만, 그 투명한 수사 이면에서는 생태계가 수만 년간 구축해온 유기적인 집이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 이미 현지 시골 장터에서는 50바트(약 1,900원)짜리 흔한 생선조차 바로 앞 메콩강의 조과(釣果)를 불신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상인들은 이 저렴한 물고기들이 수백 킬로미터 밖, 중금속 오염수로부터 그나마 거리를 둔 상류나 비교적 오염이 덜 미친 타 지역의 메콩 수계에서 실어 온 것이라며 원산지를 방어한다. 이윤의 논리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이 물류의 경제적 난센스야말로 생태적 위기의 가장 섬뜩한 증거다. 방사능의 공포 앞에서 산지를 세탁하며 안도하던 현대 사회의 집단적 신경증이 이곳 오지의 시장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치명적인 독성은 흉측한 괴물의 형상이 아니라, 너무도 투명한 물결의 얼굴을 하고 서서히 생태계의 유전자를 조용히 장악해 들어온다.


KakaoTalk_20260309_120615892_07.jpg 메콩 위로 피어오르는 거대한 연기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대자연의 징후조차 의심의 대상이 된 우리 시대의 생태적 파국을 증명한다.

오후가 깊어질 무렵, 우리는 밴을 달려 치앙칸(Chiang Khan) 쪽의 스카이워크로 향했다. 거대한 메콩의 굽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도록 아찔한 절벽 밖으로 뻗어 나간 유리 전망대. 썽태우(Songthaew)를 개조한 듯한 투박한 트럭을 타고 입구로 올라가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생태계를 직선으로 재편하며 신음하던 한국의 사대강들이 불길한 기시감처럼 겹쳐 떠올랐다. 생태 복원과 치수(治水)라는 본래의 목적은 증발하고 랜드마크 과시에 혈안이 되었던 행정의 기억들. 애초의 기획안 속 조감도는 이곳을 낙후된 경제를 부흥시킬 찬란한 구원처럼 묘사했겠지만, 초기의 붐이 휩쓸고 지나간 현장에 남은 것은 문을 닫은 상점들과 덩그러니 낡아가는 콘크리트 구조물뿐이었다. 강변에 무더기로 쌓인 그 시멘트 더미마저도, 어쩌면 한국의 '쓰레기 시멘트' 논란처럼 산업 폐기물을 태워 남은 재를 섞어 단가를 후려친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구심에 나는 씁쓸한 현기증을 느꼈다. 오랜 시간 사람과 짐승의 발걸음이 쌓여 자연스레 형성된 흙길의 아름다운 곡선을 무자비하게 밀어버리고, 몇 년이면 조악하게 부서질 시멘트 블록과 철근으로 급조해 낸 획일적인 산책로. 우리는 기어이 발밑에 투명한 유리 바닥을 깔고 인공의 매표소를 겹겹이 덧대어야만 비로소 대자연을 안전하게 '경험'한다고 착각하는 지독한 감각적 빈곤에 빠져 있다.


그 전망대로 향하는 덜컹거리는 트럭 위에서 작은, 그러나 우리에게는 실존적인 위기감을 안겨준 우발적 사고가 발생했다. 곁에 앉아 있던 시각예술가 조(Joe)의 눈에 날벌레인지 모를 날카로운 이물질이 강하게 부딪힌 것이다. 곧 그의 한쪽 눈 점막이 심하게 붉어지며 부어올랐다. 일요일 오후, 낯선 오지에서 제대로 된 병원을 찾을 길 없던 우리는 서둘러 약국을 수소문해 응급조치만 취한 채, 초조한 마음으로 치앙칸 거리의 카페로 피신했다. 세상을 시각 언어로 포착하고 번역해야 하는 예술가에게 시력이란 물리적 감각 기관 그 이상의 의미, 곧 세계와 접속하는 인터페이스 자체다. 예측 불가능한 먼지 한 톨의 우발성 속에서 우리의 여정이 중단될지도 모른다는 팽팽한 긴장이 대기를 갈랐다.


그러나 그 날카로운 통증의 한가운데서도 나의 뇌리에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것은, 부어오른 눈을 부여잡은 조의 태도였다. 그는 고통으로 얼굴을 찌푸리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밴을 타는 주차장 펜스 근처에 엉겨 붙은 곤충의 알들, 길가 시멘트 갈라진 틈새를 비집고 올라온 이름 모를 양치식물의 형태를 집요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밴 기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낯선 생태적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그의 남은 한쪽 눈은 고통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 투명한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그것은 단순한 흥미를 넘어선, 그가 생물학자의 길을 걸었다면 어땠을까 싶을 만큼 일반인의 궤도를 아득히 뛰어넘는 지적 열정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내면에 축적되어 온 생명 종에 대한 이 지독하고도 영원히 멈추지 않을 관찰의 연속선. 무너져가는 세계를 끝까지 응시하고 기록하는 예술가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동력은 이런 순결한 탐구심일 것이다.


약효가 서서히 돌며 통증이 가라앉고 안도가 찾아오자, 비로소 치앙칸의 워킹 스트리트(Walking Street)가 온전히 시야에 들어왔다. 방콕에서 9시간 이상, 대중교통이 닿는 농카이(Nong Khai)에서도 100킬로미터나 떨어진 이 고립된 오지의 거리는 놀랍게도 서울의 성수동을 방불케 하는 세련된 감각과 젊은 활기로 넘쳐났다. 강줄기를 따라 도열한 낡고 검은 티크목(Teak) 주택들은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비현실적인 매력을 풍겼다. 자본이 유입된 이 공간 역시 언제든 소비 기한이 정해진 납작한 레트로 상품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지만, 적어도 그날 저녁 빛을 받은 그 나무 기둥들에는 자본의 속도가 단숨에 모방할 수 없는 축적된 실재의 시간과 저항적인 표면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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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 해가 서쪽으로 기울며 대기가 짙은 보랏빛으로 타오를 즈음 조가 예언했던 숭고한 장면이 하늘에 펼쳐졌다. 수십 마리의 하얀 새들이 뒤집힌 V자 형태의 완벽한 대형을 유지하며 붉은 강 위를 미끄러지듯 건너갔다. 그것은 하늘을 관장하는 성스러운 새와 심연의 정령이 우주를 나누어 맡았던 고대의 신화가 망막 위에서 시연되는 듯한 장엄한 순간이었다. 생물학적 이동이라는 건조한 인과율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경이. 진정한 생태적 사유의 바탕에는 차가운 비판 이전에, 저 비행의 궤적을 경이로운 눈으로 좇던 조의 표정이 먼저 자리해야 한다. 자연에 대한 이 원초적인 경외가 빠져 있다면, 우리의 분노 섞인 비판은 이내 관료들의 공허한 행정 문서로 바스라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있는 세계는 결코 아름다운 신화의 시간표대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쾌적한 에어컨 바람이 불어오는 카페에 앉아 스마트폰 액정을 스크롤하던 우리는, 팍촘의 정적인 시간에서 세계체계(World-system)의 잔혹한 중심으로 강제 소환되었다. 멀리 중동에서 불붙은 이란의 지정학적 위기와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뉴스의 타임라인을 덮치며 글로벌 유가를 요동치게 만들고 있었다. 이 거시적인 포연의 나비효과는 당장 내일 메콩 강변의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할 우리 밴(Van)의 가솔린 수급에 실존적인 위협으로 들이닥쳤다. 심각한 표정으로 차트를 들여다보던 조는, 일정의 생존을 담보할 비상용 가솔린 말통을 사기 위해 미련 없이 어둠 속으로 나섰다.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한 메콩의 고요한 숨결이 중동의 전쟁 뉴스와 실시간으로 혈관을 공유하며 요동치고 있다는 서늘한 감각. 저 아름다운 석양의 이면에서, 자본과 권력의 톱니바퀴는 단 1초의 멈춤도 없이 냉혹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 지정학적 모순과 감각의 혼재는 우리가 늦은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들어간 거리의 식당에서 기묘한 정점을 찍었다. 베트남 음식점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었지만, 식탁 위에 놓인 음식들은 묘하게 그 정체성이 비틀려 있었다. 내가 주문한 쌀국수 국물에는 낯선 토마토가 둥둥 떠 있었고, 그 산미는 베트남과 태국, 혹은 그 사이 어딘가의 국경을 떠도는 기묘한 변종이었다. 유년 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안(An Tran) 역시 베트남식 샤브샤브를 주문했지만, 고향의 정통성과는 궤를 달리하는 낯선 맛이라며 고개를 허탈하게 갸웃거렸다.


기원과 국적을 상실한 이 혼종의 국물을 삼키며 고개를 들었을 때, 빛바랜 벽면에는 1930년대 민국 시절 올드 상하이(Old Shanghai) 풍의 화려한 치파오를 입은 여인의 포스터가 조용히 웃고 있었다. 우측 하단에 '매생(梅生)'이라는 상하이 상업화가의 관지가 적힌, 당대 자본주의가 대량 복제해 낸 전형적인 '월분패(月份牌)' 미인도였다. 그런데 나는 기호로만 남은 그 상업적 미인의 매혹적이고도 작위적인 미소에서, 불현듯 만주국 시절 동아시아를 매혹했던 전설적인 가객 이향란¹(李香蘭)의 환영을 겹쳐 보았다. 일본인 부모 아래 만주에서 태어나 철저히 중국인으로 위장된 채, 제국주의 시대의 복잡한 이데올로기적 경계를 위태롭게 건너야 했던 그녀. 비록 저 그림 속 여인이 실제 이향란이 아닐지라도, 태국과 라오스 접경의 소도시, 토마토가 들어간 짝퉁 베트남 쌀국수집 벽면에 상하이의 복제된 미인도가 걸려 있고, 그 위에 디아스포라의 비극을 투사해 버린 나의 시선이 교차하는 이 풍경은 그 자체로 완벽한 부조리극이었다. 그것은 국가와 민족, 진짜와 가짜, 오리지널과 복제품이라는 경계가 자본의 논리 안에서 얼마나 허구적이고 가변적인 것인지를 폭로하는 서늘한 메타포였다.


그 어색한 혼종의 식탁 위에서, 세대 차이를 느끼게 하는 안(An)은 마치 언어를 조폐기처럼 찍어내는 기계처럼 분당 수십 단어 혹은 이상을 쏟아내며 베트남의 거대 자본 빈그룹(Vingroup)을 날카롭게 해체하고 비판했다. 그녀의 속사포 같은 화법 속에서도 표정만은 줄곧 진지했다. 한편 눈의 통증을 견뎌낸 조는, 식당 벽면 TV에서 반복 재생되는 화려한 테마파크 홍보 영상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그 영상 배경 뒤편으로 무참히 파헤쳐진 숲의 붉은 상흔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3월 8일, 팍촘과 치앙칸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다층적인 세계의 모순을 응시하며 깊어갔다. 아침에는 이승의 것이 아닌 듯한 새소리와 거대한 강의 관조적인 침묵이 있었고, 낮에는 자연의 곡선을 잘라내려는 인위적 구조물과 쓰레기 시멘트의 이면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오후에는 우발적인 사고 속에서도 결코 식지 않던 예술가의 경이로운 생태적 호기심이 있었고, 저녁에는 신화처럼 날아가는 새들의 장엄함과 그와 동시에 중동의 전쟁을 걱정하며 가솔린을 찾는 21세기의 서늘한 현실이 교차했다.


이 강은 인간의 달력으로는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시간 흘러왔기에, 당장 내일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계획과 욕망을 한없이 초라한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대자연이 지닌 위대한 순환과 회복력이 현생 인류의 무지몽매한 파괴에 발급해 주는 면죄부는 결코 아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강의 고요한 수면 아래에는, 이 거대한 수계에 새겨진 문명의 탐욕과 무한한 생물학적 기억이 아직 끓어오르지 않은 마그마처럼 비릿하게 잠복해 있다. 나는 하루라는 짧은 캡슐 안에 응축된 그 수많은 지층의 육중한 무게를 감각하며, 어둠이 내린 메콩의 물소리 곁에서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미주]


¹ 이향란(李香蘭, Ri Xianglan / 야마구치 요시코):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만주국과 일본, 중국을 무대로 활동했던 전설적인 배우이자 가수. 일본인 부모 아래서 태어났으나 철저히 중국인으로 위장되어 만주국 프로파간다 영화의 스타로 소비되었다. 동아시아 근대사의 이데올로기적 모순과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을 가장 극적으로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녀가 살아 숨 쉬었던 제2차 세계대전 시대는, 태국과 베트남, 한국을 아우르는 지정학적 역사의 깊은 흐름 속에서 우리를 은밀히 그러나 단단하게 이어 주었다. 그녀의 대표곡 〈야래향(夜來香)〉을 비롯한 노래들은 대만의 전설적 가수 등려군(테레사 텡)의 목소리로 되살아나, 영화 《청밀밀》을 통해 나의 1990년대와 조용히 스치듯 만나게 되었고, 등려군이 생애의 마지막 순간을 보낸 치앙마이 임페리얼 매핑 호텔 1205호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이번 리서치에 함께한 이들—의 삶을 인연의 가느다란 은실로 새롭게, 그리고 메콩강변에서 묘하게 재배열시켜 주었다.


² 홍(Hong)과 나가(Naga): 동남아시아의 다층적 우주관을 대변하는 영적 기호들. '홍'은 하늘의 메신저이자 성스러운 새를 뜻하며, '나가'는 물결 아래를 다스리고 비를 관장하는 거대한 정령을 의미한다. 불교가 유입된 이후에도 이 기층 신앙들은 소멸하지 않고 사원 건축과 일상생활 속에 굳건히 살아남아 생태적 상상력의 원형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