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터지는 이야기 #2

by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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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애는 오늘도 속이 터진다.


오랜만에 반찬을 갖다 주려고 들렀더니 남편이라는 작자는 또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컴퓨터로 영화를 보면서 소주에 통닭을 먹고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청소를 안 했는지 방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한다. 아, 정말 싫다 싫어. 이런 남자를 뭐가 좋다고 만났을까……. 스물아홉 살에 처음 만났을 땐 이 남자가 멋져 보였었다. 큰 학원에서 강사를 하니 수입도 괜찮았고, 대한민국 최고의 학원 강사로 이름을 날리겠다는 야망도 근사해 보였고, 게다가 자신이 쓴 시를 종종 들려주기에 실속과 낭만을 두루 갖춘 보기 드문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을 행운이라고까지 생각했었다.


남자가 열 살 연상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때만 해도 충분히 동안이었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서둘러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에 지배당한 게 잘못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물아홉이건 서른이건 서른하나건 큰 차이가 없는 건데……. 마흔 되기 전까지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보며 간을 보았어도 충분했는데…….


“도대체 방 꼴이 이게 뭐야!”


아무 말 하지 말고 반찬만 건네주고 얼른 와야지, 마음먹었지만 막상 사는 꼴을 맞닥뜨리고 보니 아무 말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와서 볼 사람도 없는데 뭐…….”


우성이 우물거리며 대답한다.


“나! 나는 사람도 아니야? 나는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야?”


미애는 냅다 소리를 지르고 만다. 어이구, 속 터져, 소리가 머릿속을 빙빙 맴돈다. 우성은 잔소리가 귀찮다는 듯 멀거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 품에 안긴 똘똘이가 끙끙 소리를 낸다. 통닭 냄새가 식욕을 자극해 괴롭다는 소리다. 미애는 쉿! 하고 주의를 준다. 똘똘이는 금세 조용해진다. 주의 한 번이면 된다. 그런데 이 남자는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 강아지만도 못한 인간, 소리를 내뱉으려다가 속으로 삼키고 만다.


“1, 2년도 아니고……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건데? 응?”


“알았어. 치우고 살게.”


우성이 머쓱해하며 우물거린다. 미애는 후, 하고 숨을 내쉰다.


“그것만 가지고 말하는 게 아닌 거 알잖아. 이제 그만 이 생활 정리하고 반찬가게에 와서 배달 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우성은 대답 없이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고 있다. 빨리 미애가 사라지고, ‘일시정지’해 놓았던 화면을 재생시켜 영화를 보고 싶은 모양이다. 미애는, 아이구, 한심한 인간아, 소리를 속으로 삭인다.


“아니, 이 생활하면서 반찬가게 일 병행할 수 있잖아. 수업이 맨날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씩 있잖아. 도대체…….”


똑같은 소리 반복하는 것에 지겨움을 느끼며 미애는 말을 멈춘다.


결혼한 지 3년도 지나지 않아 우성은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만둔 게 아니라 잘린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자신만의 학원을 차렸다. 강의실 네 개에 원장실과 상담실이 딸린 제법 큰 규모였다. 처음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학원으로 키우겠다는 둥 큰소리를 떵떵 치더니, 점차 시무룩한 얼굴로 한숨만 푹푹 내쉬는 날들이 많아졌고, 5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때부터 매일 술 마시는 습관이 붙었고, 심심하면 한 번씩 자동차를 몰고 나가 며칠이 지나서야 돌아오곤 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여행 작가로 거듭나겠다나 뭐라나. 그런 채로 2년이 지났지만 아무런 결과물도 없었다. 책임감이나 의무감에서 벗어나 한량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밖엔 와 닿지 않았다. 당장 이혼하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딸 하늘이를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어서 당분간 떨어져 지내자고 말했다. 꼴 보기가 싫었다.


우성은 투룸을 얻어, 거실에서는 과외를 하고 방에서는 먹고 자는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6년째다. 혼자서 근근이 먹고사는 걸로 보아 대여섯 명 데리고 과외를 하고 있는 듯하다. 가끔씩 하늘이를 만나 공부를 봐주고 밥을 사주는 게 유일한 아빠 노릇이다. 남편 노릇은…… 완전 꽝이다. 생활비를 보태주기는커녕 생활비를 보태주어야 할 판이다. 딸에게 들어가는 돈은 모두 친정엄마와 함께 반찬가게를 하면서 충당하고 있다. 지금이야 예민한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꾹 참고 있지만, 하늘이가 스무 살이 되는 순간 바로 끝장을 낼 생각이다. 4년. 아직도 4년을 더 견뎌야 한다.


똘똘이가 다시 끄응끄응 신음 소리를 낸다. 여기 있기가 고통스러우니 빨리 집으로 가자는 소리다. 미애는 알았다는 표시로 똘똘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매일 사 먹는 술, 안주, 거기에 담배까지……, 그것만 아껴도 얼마야……? 50만원은 족히 넘겠네. 돈벌이를 제대로 못하면 절약정신이라도 있어야지. 도대체 무슨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소비를 해줘야 그걸 만든 사람들도 먹고살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미애는 꽥 소리를 내지르고 만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당신 걱정이나 해, 당신!”


더 쏘아붙이고 싶지만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말을 말자, 말을. 문을 쾅 닫고 계단을 내려오며 미애는 생각한다.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남편은 갈수록 남의 편이 되어가고 있다. 남? 남이 누굴까. 혹시……. 미애는 세차게 고개를 젓는다. 어떤 미친 여자가 저런 찌질한 남자를 좋아하리오. 아니지, 세상에 제정신 아닌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남편의 권력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해 먹은 여자까지 있지 않았던가. (#3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