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나는 무엇을 몰랐을까
신경과학자 삼춘–미완성의 뇌
아이의 방에는
7주 동안 사람이 지내지 않은 것 같은
조용한 공기가 있었다.
학교에서의 그날 이후
아이는 더 이상
등교하는 시간에 눈을 뜨지 않았다.
“조금만 더 쉬면 괜찮아질 거야.”
엄마는 처음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이주일이 지나도,
아이는 가방을 다시 들지 않았다.
7주가 넘도록
시간은 흘렀지만
아이의 마음은
그날의 상담실 문 앞에서 멈춘 채였다.
그렇게 흐릿한 시간 속에
어느 날 삼춘이 집에 찾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삼춘은
평소처럼 밝게 인사했다.
“우리 조카 어디 있나~ 삼춘 왔다!”
하지만 거실에서 고개만 까딱 든 아이를 본 순간,
삼춘의 표정이 아주 천천히 굳어갔다.
평소라면 달려와 매달리던 조카가
소파 끝에 조용히 앉아
손가락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삼춘은 문틈으로 스며드는 찬 공기처럼
아이의 이상한 정적을 즉시 감지했다.
“…얘, 무슨 일 있었어?”
엄마는 잠시 망설였지만
더는 숨길 수 없었다.
주방으로 삼춘을 데려가
조용히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라면 사건,
가게 사장님의 반응,
학교에서의 훈계,
그리고 상담실에서 벌어진 일까지.
설명을 들으며
삼춘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다.
“애한테…
그런 말을 했다고?”
엄마는 울먹였다.
“그 뒤로… 얘가…
자꾸 자기한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말을 하려고 해도…
숨이 막힌다고 하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엄마는 낮게 말했다.
“이제는…
학교를 다시 가려 하지도 않아.”
삼춘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거실에 혼자 앉아 있는 아이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 속에는
분노도, 안타까움도,
그리고 과학자의 냉정한 분석도
한 번에 섞여 있었다.
잠시 뒤,
삼춘은 아이의 맞은편에 앉았다.
“우리 조카,
삼춘이랑 잠깐 얘기해볼래?”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는 탁한 물처럼 흐릿했고,
입술은 꼭 다물린 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삼춘…”
아이는 천천히 말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어.”
그 말 한 줄이
조용하게 떨어졌다.
삼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수 있어.
너는 지금 네 잘못 때문에 무너진 게 아니야.”
아이는 놀란 듯한 눈을 했다.
삼춘은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사람은 충동을 조절하는 데
전두엽이라는 부분을 써.
근데 이 전두엽은
네 나이쯤엔 아직 완전히 자라지 않았어.”
아이는 숨을 죽였다.
“…아직… 자라지 않았다고요?”
“그래.”
삼춘이 말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뭘 하고 싶으면
‘하면 안 된다’는 생각보다
먼저 움직일 때가 많아.
그건 네 죄가 아니라
네 뇌가 아직 만드는 중인 ‘너’ 때문이야.”
아이는 그 말을 한참 동안 되새겼다.
“그럼…
그때 라면을 집어든 건…
제가… 아니라…
뇌가 그런 거예요…?”
삼춘은 잠시 말이 막혔다.
아이의 질문은 너무 순수해서
오히려 더 예리했다.
“…음, 완전히 그런 건 아니지만
네가 어른처럼 조절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지.”
아이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은
위로이면서도
또 다른 혼란이었다.
“그럼…
나는… 나도 아니고…
뇌가 하는 건가…?”
아이의 속마음은
더 깊이 흔들렸다.
‘나는 내 행동의 주인이 아닌 건가?’
‘내가 아니라 뇌가 문제라면…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삼춘은 아이의 생각을 읽지 못한 채
부드럽게 말했다.
“그냥 너무 자책하지 말라는 말이야.
너는 아직 자라는 중이야.”
하지만 아이에게는
그 말조차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또 하나의 낙인처럼 느껴졌다.
삼춘은 조카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과학의 언어는
아이에게 새로운 질문을 더했다.
“나는…
진짜 나인가…
아니면 아직 미완성인 누군가일까…?”
아이는 한참 동안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누가 보기엔 고요해 보였지만,
아이의 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물결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마치 작은 희망 같은 생각이
아이의 머릿속을 스쳤다.
“…뇌에 대해 더 알면…
내가 왜 이러는지…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아이는 조심스럽게 얼굴을 들었다.
“…삼춘, 그러면…
뇌가 왜…
그렇게…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드는지…
저한테도 알려줄 수 있어요…?”
삼춘은 잠시 아이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눈을 깜빡였다.
아이의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혼란 속에서 건져 올린 작은 줄 같은 것이었다.
“그래.
삼춘이 최대한 쉽게 말해볼게.”
삼춘은 손바닥을 펼쳐
빈 공간 위에 보이지 않는 지도를 그리듯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 뇌에는
‘하고 싶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어.
그걸 ‘편도체’라고 해.”
아이는 눈을 크게 떴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근데 하면 안 되잖아’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어.
그게 바로 전두엽이야.”
양손을 번갈아 들어 보이며 삼춘은 말했다.
“네 나이 땐
편도체가 먼저 말을 하고,
전두엽이 아직 말을 배워가는 중이거든.”
아이는 잠시 생각했다.
“편도체… 전두엽…”
말처럼 흘러나왔지만
아이의 방금 전 표정에는
종이 위의 글자를 소리 내어 읽는 아이 같은
막막함이 있었다.
삼춘은 조금 더 쉽게 풀어보려 했다.
“만약 네 안에
두 명이 있다고 상상해봐.
한 명은
‘해보자! 지금 당장!’이라고 말하는 친구이고,
다른 한 명은
‘잠깐… 지금 이거 하면 안 될 것 같은데?’라고
말하는 친구야.
지금 너는
앞에 있는 친구 목소리가 좀 더 큰 상태야.
나이가 들면 둘이 서로 말이 맞춰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표정은 이해의 고개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 고개였다.
그러나 그 순간,
아이의 마음속에서
더 이상한 의문이 스르륵 고개를 들었다.
“그럼…
나는 누구예요…?”
아이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그 두 명 중에
누구예요?”
삼춘은 잠시 말을 멈췄다.
아이의 질문은 너무 정직했고,
너무 정확했기 때문이다.
“…음, 너는…
그 둘을 잘 조절해가는 존재라고 볼 수 있어.”
삼춘의 대답은
아이를 위로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아이의 마음엔
다르게 박혔다.
“그러면…
난 아직 ‘나’가 아니고…
나중에야 ‘나’가 되는 거예요?”
삼춘은 급히 말하려 했다.
“아니, 그건 아니고—”
하지만 아이의 시선은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뇌.
발달.
조절.
미완성.
어제까지
자신이라고 믿었던 마음이
오늘은 마치
낯선 기계의 부품처럼 느껴졌다.
아이의 속마음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주저앉았다.
“…나는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고 싶었는데…
뇌 때문이라고 하면…
그럼 내 마음은 어디 있었던 걸까…”
삼춘은 조카의 침묵 속에서
자신의 설명이 뜻밖의 무게가 되어
아이를 또 휘어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아이의 눈빛 속에는
미묘한 어둠이 자리 잡았다.
뇌를 알면 답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나라는 존재가 더 흐려져 버린 것 같은 느낌.
그 감정은
아이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조용히,
마음 안에서 길게 번져나가고 있었다.
아이와 삼춘 사이에
몇 분간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아이의 눈은 창밖을 향해 있었지만,
시선은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었다.
삼춘은
그 조용함 속에서
아이의 마음이 어디쯤에 있는지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
“조카야.”
삼춘이 먼저 부드럽게 말했다.
“지금 네 표정 보니까…
내 말이 좀 어렵고…
마음에 잘 안 닿았던 것 같네.”
아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듯한 설명조차
마음에서 불편하게 뒤틀렸다는 사실을
삼춘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삼춘은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다.
삼춘은 아이 옆으로 살짝 다가와
가볍게 등을 두드렸다.
“뇌가 어떻고…
발달이 어떻고…
그런 설명은 그냥
네가 너무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게 하려고 한 말이야.
그게 전부는 아니야.”
아이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삼춘은 미소를 지었다.
과학자의 무표정한 얼굴이 아니라
가족만이 할 수 있는 따뜻한 미소였다.
“너는 그냥…
그날 배가 고팠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어른들은 그걸 너무 크게 받아들였고…
그 정도일 수도 있어.”
아이는 처음으로
어깨를 조금 내려놓았다.
“…삼춘,
나…
나쁜 애 아니지?”
삼춘은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
“아니.
너는 나쁜 애 아니야.
그건 절대로 아니야.”
아이의 눈가가 조금 붉어지더니
입술이 살짝 떨렸다.
“그럼…
나는 그냥…
조금 어려운 시기에 있는 거예요?”
삼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른도 그런 시기가 올 때가 있어.
근데 너는 지금 그걸
조금 일찍 겪고 있는 것뿐이야.”
아이의 표정이
서서히 풀어졌다.
혼란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적어도
혼자 버티는 느낌은 아니었다.
삼춘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리고 네가 궁금해하는 건
언젠간 다 알게 될 거야.
뇌 때문만도 아니고,
상처 때문만도 아니고…
그냥 네 마음이 자라는 과정 중 하나야.”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삼춘과 아이 사이의 공기는
조금은 가벼워지고,
조금은 따뜻해졌으며,
조금은 아프지만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온도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감정의 틈 사이로
새로운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사람은 왜 다르게 행동하는 걸까?’
그 질문은 아직 말로 나오지 않았지만
곧 다음 장면을 향해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