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혼자 있는 시간을 삶의 자산으로

혼자있어도 괜찮아.

by 아르칸테

13장. 혼자 있는 시간을 삶의 자산으로 만드는 법


고독을 소비하지 않고 축적하는 사람들

고독은 사용한다고 해서 곧바로 자산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독을 공허함으로 소비한다.

힘들 때 잠깐 혼자 있고,버거울 때 관계를 끊고,
지치면 세상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다시 회복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 고독은 사라진다.남는 것이 없다.

고독을 자산으로 만드는 사람들은 이 방식으로 고독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고독을 회복의 도구가 아니라 축적의 시간으로 다룬다.

여기서 말하는 축적은 지식도 아니고,통찰의 문장도 아니다.
쌓이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준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반복될수록 이 사람들은 점점 덜 흔들린다.
더 많이 알게 돼서가 아니라
더 빨리 자기 기준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고독을 소비하는 사람은 매번 같은 자리에서 시작한다.
혼자 있을 때마다
처음 겪는 것처럼 힘들어하고,처음 느끼는 것처럼 불안해한다.


불안함은 우리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그 안에 머무는 것은 누구에게나 버거운 일이고,

누구나 그 자리에서 뛰쳐나오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 불안은 고독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상황을 해석한 결과이며, 그 해석으로 내가 나 자신을 더 힘들게 만든 것이다.

시련과 고난은 피해갈 수 없다. 그때마다 우리는 언제까지 도망칠 궁리만 하며 살아갈 것인가.

고독을 통해 다시 한 번 현실을 인정하고, 삶을 개척하며, 자신을 다른 경지로 이끌 수 있다면,

고독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자산이 된다.

물론 말처럼, 글처럼 쉽지 않다. 쉬웠다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인류는 오래전부터 심리학과 철학, 종교를 만들어왔다.

모두 사람을 돕기 위해 고뇌했고,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왜 이렇게 흔들리는지 끊임없이 탐구해왔다.

이것이 뇌의 문제인지, 마음의 문제인지, 혹은 어린 시절의 환경 때문인지등 수많은 질문이 이어진다.

그렇게 생각하며 타인을 돕고자 자신의 삶을 바친 사람들도 있다. 남들이 쉬고 놀 때,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하고 수련하며 시간을 보낸 이들이다. 그 노력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그들 역시 고독한 시간 속에서 공부하고 사유하며,

타자를 위한 마음을 열어왔다는 점이다. 고독은 고립이 아니라, 깊이를 만들어내는 조건이었다.

고독을 잘 다루기만 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준다.

고독이라는 연료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이다.

나는 이 글이, 고독 속에서 지치고 무너져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 되기를 바란다.

다시 한 번 고독과 마주할 용기, 그리고 그 시간을 견디고 넘어설 수 있는 힘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고독을 축적하는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이 서로 연결된다.

지난번에 어디서 흔들렸는지,어떤 생각에 끌려갔는지, 어디까지는 견딜 수 있었는지가
희미하게라도 남아 있다.

이 남아 있음이 자산이다 자산이 모이면 나의 능력은 확장되고 즐거움은 외부의 영향력에 의해서 발생하는것이 아니라,나로인해 발생한다.

고독을 자산으로 만들줄 아는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특별하게 만들지 않는다.
의미를 과하게 부여하지도 않는다.
다만 같은 태도를 반복한다. 고독을 상태로 두고,

개입을 줄이고,생각을 구조로 다루고,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다.

이 네 가지가 쌓인다.

그래서 고독을 축적하는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 필요가 없다.
짧아도, 불완전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매번 조금씩 남는가다.

이 남는 것은 자신에 대한 환상이 아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정체성도 아니다.
오히려 자기에 대한 과장과 착각이 조금씩 빠진다.

대신 이런 감각이 생긴다.

“이 생각은 지금 상태에서만 강해지는구나.”
“이 불안은 항상 이 시간대에 올라오는구나.”
“이 판단은 내가 지쳐 있을 때만 단정적이구나.”

이 감각은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아도 된다.
설명할 수 없어도 된다.
다만 다음 선택의 속도를 조절한다.

그래서 고독을 축적한 사람의 선택은 조금 다르다.
확신이 없는데도 멈출 수 있고,
불안한데도 바로 행동하지 않는다.
사람을 붙잡지 않고,결정을 미루는 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 태도가 삶을 안정시킨다.

많은 사람들이 안정을 감정으로 생각한다.
편안해야 안정적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 안정은 되돌아올 수 있는 능력이다.

고독을 축적한 사람은 크게 휘청여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혼자 돌아갈 수 있는 자리가 이미 있기 때문이다.

이 자리는 공간이 아니다. 시간도 아니다.태도다.


누구나 타인에게 존중받기를 바란다. 이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스스로에게는 그만큼의 존중을 주지 못하는가.

고독은 자신을 존중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다. 누구의 기준도, 누구의 평가도 개입되지 않는 상태에서 오롯이 자신을 대할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아끼고 돌볼 줄 알게 되면 변화가 생긴다.

자신을 존중하는 태도는 자연스럽게 외부로 드러난다. 말과 행동, 분위기에서 기준이 생기고, 그 기준은 경계가 된다. 그래서 남들 역시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존중은 요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결국 타인이 나를 대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고독은 그 출발점이 되는 시간이다.


“지금은 정리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보기만 해도 충분하다.”

이 태도를 혼자 있는 시간마다 조금씩 연습한 사람만이
관계 속에서도 자기 속도를 잃지 않는다.

그래서 고독을 자산으로 만든 사람은 관계를 이용하지 않는다.
외로움을 덮기 위해 사람을 쓰지 않고,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약속을 만들지 않는다.
그 결과 관계는 가벼워지고, 오히려 오래 간다.

이 장에서 꼭 남기고 싶은 문장은 이것이다.
고독은 쌓이지 않으면 사라지고,쌓이면 기준이 된다.

고독을 자산으로 만드는 삶은 고독을 좋아하는 삶이 아니다.
고독에 익숙해지는 삶이다.
그리고 익숙해진다는 것은 고독이 와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제 우리는 고독을 이해하는 단계를 지나 고독을 사용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혼자 있어도 괜찮아지는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자기를 잃지 않는 사람이다.

이 책이 말하는 고독은 그 정도의 자리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

고독을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은 혼자 살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세상과 거리를 두겠다는 결심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고독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은 관계로 들어갈 준비가 된 사람이다.

관계는 자기 자신을 잃은 사람이 들어가면 거래가 되고,
자기 자신을 가진 사람이 들어가면 교류가 된다.
이 차이는
고독을 통과했는가에서 갈린다.고독을 건너뛴 사람은

확인, 위로, 증명, 소속. 그래서 관계는 무거워지고, 서로를 소진시킨다.

반대로 고독을 축적한 사람은
관계에서 자기 자리를 지킨다. 기대가 적고,요구가 느리고,물러설 줄 안다.
그래서 관계는 오래 간다.


우리는 흔히 외로워해야 할 상황,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순간에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보면 묘한 감정을 느낀다.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위대해 보이기도 하며, 때로는 인간 같지 않다고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선의 이면에는 대개 부러움이 자리하고 있다. 사실 우리도 그렇게 되고 싶은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잃지 않은 채 그 시간을 통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고독을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고독을 피하면 우리는 우리를 알 수 있는 시간을 잃는다. 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이 강점이고 약점인지, 이 관계를 계속 가져가야 할지 그만두어야 할지에 대한 기준이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혼란 속에서 떠다니게 되고, 자기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자기 효능감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느낄 때 삶의 질이 분명히 달라진다. 선택의 주체가 자신이라는 감각이 있을 때, 비로소 삶은 버티는 시간이 아니라 살아가는 시간이 된다.

그러니 고독을 피하지 말자. 고독을 이상한 것으로 여기지도 말자. 그 불편한 느낌은 고독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아가는 길 앞에 서 있는 하나의 벽일 뿐이다. 그리고 그 벽을 넘어가면, 진정으로 내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선택의 기준이 그 안에 들어 있다.

고독은 우리를 고립시키는 시간이 아니다.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 데려다주는 시간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혼자 있어도 괜찮아진다’는 말은 강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독립적 인간이 된다는 선언도 아니다.그 말의 정확한 의미는 이것이다.

관계가 없어도 자기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유지 가능성이 생기는 순간, 사람은 관계에 매달리지 않게 된다.
매달리지 않으니 상대도 숨을 쉴 수 있고, 그 숨 쉴 수 있음이 관계를 살린다.

그래서 고독은 관계를 대체하지 않는다. 관계를 준비시킨다.

여기까지가 이 책 4부의 역할이다.

고독을 감정에서 상태로 옮기고,상태를 훈련으로 만들고,
훈련을 자산으로 축적하는 흐름. 이 흐름을 따라왔다면

이제 독자는 고독 앞에서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와 있다.

다음 장들에서는
이 고독이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선택의 순간에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그리고 삶 전체의 균형을 어떻게 지켜주는지를
하나씩 살펴보게 될 것이다.

고독은 이 책의 주제가 아니다.
이 책이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그리고 그 조건을 조금씩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때,
사람은 비로소 혼자 있어도 괜찮아진다.

아무도 없어서 괜찮은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있기 때문에 괜찮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