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꼭 입어보고 사는 시대가 있었다. 인터넷으로 수많은 정보를 구하면서도, 몸에 걸치는 옷만큼은 “직접 입어보고” 사는 것이 상식인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강 한가운데 떨어진 디지털이라는 돌멩이는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원을 그리며 영향력을 펼쳐 나갔다. 소비자들은 하나둘, 입어보지 않고 옷을 사는 것에 익숙해졌다.
전통의 오프라인 패션 강자들은 이 변화에 빠르게 올라타지 못했다. 고가 브랜드는 많은 수수료를 내면서도 여전히 백화점에 목을 맸고, 온라인 광고보다는 패션 매거진과 협찬에 열을 올렸다. 중저가 브랜드는 가두점을 관리하고, 세일과 행사로 고객을 붙잡으려 애썼다. 반면 그사이 기민한 브랜드는 디지털로 전장을 옮겼다.
[사진=무신사]
무신사는 2001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으로 시작했다. “오프라인을 디지털로 옮긴 브랜드”가 아니라 “디지털에서 태어난 브랜드”였던 셈이다. 스타일난다 역시 온라인 기반으로 성장했고, 3CE까지 확장하며 ‘디지털 네이티브’의 감각을 매출로 폭발시켰다.
마뗑킴은 더 상징적이다. 블로그 마켓에서 출발해 팬덤을 만들고, 그 팬덤을 브랜드 자산으로 축적하면서 대중적 브랜드로 올라섰다. 마뗑킴을 만든 김다인 대표는 본인에게 익숙한 디지털 문법으로 새로운 브랜드, 다이닛을 다시금 성공궤도에 올리려고 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빠르게 온라인몰을 열었느냐”가 아니다. 디지털 전환, 즉 DX(Digital Transformation) 시대의 승패는 고객 접점의 운영 능력에서 갈렸다. 고객 리뷰, 커뮤니티, SNS, 유튜브, 검색 등 디지털 시대에 고객이 머무는 곳에서 브랜드가 얼마나 자주, 어떤 톤으로, 어떤 맥락으로 이야기 되었는지가 곧 매출이 됐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무신사]
전통의 대기업은 뒤늦게 디지털 전환에 착수했고, 그 기회를 크게 활용하지는 못했지만 다행히도 완전히 뒤처지지는 않았다. 온라인몰을 만들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채널에서 고객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DX에 이은 또 다른 대전환이 오고 있다. 바로 AI 대전환, AX(AI Transformation)다.
현재 기업이 말하는 AX는 대체로 생산자의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다시 말해 생산자 측면의 반쪽짜리 AX다.
• 수요예측/재고/생산 계획에 AI 적용
• 상품 기획·MD 의사결정 보조(데이터+AI)
• 콘텐츠(상세페이지, 룩북, 광고 소재) 생성·테스트 자동화
물론 이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DX 선두 기업들이 고객 리 뷰와 SNS, 유튜브 같은 새로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접점에 사활을 걸어 성장했듯 AX에서도 기업은 새로운 AI 접점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그 접점은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등의 생성형 AI다.
[사진=구글 AI 스튜디오 생성 이미지]
이제 고객은 점점 더 “브랜드를 검색하지 않는다.” AI에게 묻는다. 예전에는 검색창에 “검정 롱코트 추천”을 치고, 여러 페이지를 클릭하며 비교했다. 앞으로는 “검정 롱코트 추천 해줘”라고만 물어도, AI는 사용자와의 이전 대화를 통해 얻은 정보(예: 키/체형/예산/취향) 와 대화 맥락을 바탕으로 더 정교한 맞춤형 추천을 할 것이다.
구매 전 탐색은 더 이상 길고 복잡한 검색의 과정이 아닌, 단순하고 즐거운 대화의 과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클릭은 줄고, 요약이 소비된다. 즉 AI가 거대한 유입 채널이자 ‘첫 상담원’이 된다. AI시대의 가장 큰 고객 접점이 된다. 그래서 이제는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 우리가 속한 카테고리(남성복, 여성복, 스트리트 등)를 AI에게 물어봤을 때 우리 브랜드가 언급되는가?
• 언급된다면 몇 번째 후보로 등장하는가?
• “가성비/프리미엄/미니멀/내구성/사이즈감” 같은 어떤 맥락과 언어로 소개되는가?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게 하나 있다. 할루시네이션(그럴듯한 오류)이다. AI가 브랜드가 의도한 바와 다른 잘못된 정보를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를 들어 환불 규정, AS, 가격 정책, 원산지/소재, 매장 위치, 심지어 안전 관련 정보까지 AI가 “그럴듯하게” 틀리면, 고객은 틀린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최근 구글의 ‘AI 오버뷰(AI Overviews)’가 부정확한 정보를 상단에 제시해 위험하다는 비판이 잇따랐고(특히 건강/안전 정보), “요약의 권위” 가 커진 만큼 오류의 파괴력도 커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AI가 잘못된 정보를 말하면 그 여파는 브랜드가 상당 부분을 감당하게 된다. 그렇기에 AX의 소비자 측면에 대한 고민이 더더욱 중요하다. 즉 AX 시대의 고객 접점 관리는 AI가 우리를 어떻게 말하는지 관리하는 일이 된다.
여기서 역할이 바뀐다. 이 일은 IT 부서만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고객 접점을 관리하는 부서(마케팅/브랜드/CS/PR)의 핵심 업무가 된다. 예전에 “검색 결과 관리”가 있었다면, 이제는 “AI 답변 관리”가 생긴 것이다.
AX는 “AI를 도입했다”로 끝나지 않는다. DX에서 승리한 브랜드는 온라인몰을 만든 브랜드가 아니라, 디지털 고객 접점을 잘 관리하고 운영한 브랜드였다. AX에서 승리할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AI 툴을 잘 활용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AI라는 접점을 제대로 운영하는 브랜드가 될 것이다. 이제 온전한 AX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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