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는 작곡가 고유의 완벽한 오케스트레이션과 후기 낭만주의 예술의 극치를 극명히 드러내는 세련된 선율미를 직설적이고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는 대표작이다. 바로 그런 음악이 카라얀의 손길로 해석되는 순간, 폭발적 에너지로 더할 나위 없는 완전한 결과를 만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유려하면서 극적인 카라얀의 지휘는 베를린필의 초일급 사운드와 기능성을 만나며 누구도 이를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아성을 이룬다. 절묘하게 감성을 터치하는 아름다운 화성법과 다채롭고 안정된 오케스트레이션은 R. 슈트라우스 특유의 독보적 자산이자 가치이다. 게다가 두 요소를 완벽하게 융합할 수 있었던 천재적 재능은 오늘날 수많은 음악애호가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가곡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그에게 세기의 걸작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악적인 존재가치를 영원히 빛나게 하는 결정적 증거이다. 이는 그의 탁월한 관현악적 아우라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테다. 이미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카라얀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해석의 절대 경지, 그 실체"를 증거한다. 이들 연주보다 완전무결한 결론은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가 '군둘라 야노비츠'와 남긴 <네 개의 마지막 노래>에서 다시 한번 완벽하게 증명된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과 <돈 후안>에서 발랄한 쾌감을 아우르는 중후한 사운드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의 솜씨이다. 절대적 유려함을 겸비한 칼날 같은 강렬한 앙상블은 장쾌한 카타르시스를 이루며 우리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로부터 느끼는 격정과 환희, 그리고 진정한 정화감을 오롯이 경험하게 한다. <영웅의 생애>, <죽음과 변용> 또한 카라얀 해석의 극치를 보여준 최상의 연주이다. 게다가 베를린필 악장 '미셸 슈발베'의 바이올린 솔로는 빼놓을 수 없는 이 음원만의 장점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의 빈틈없는 음향폭풍은 귓가를 가득 울리는 풍성하고 고색창연한 시공간 예술의 향연이다. 진한 선율이 안겨주는 '잔혹한' 충격과 쾌감은 그의 음악으로 인해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많은 작곡가들에게 고통과 절망감을 동시에 선사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토록 완전무결한 로맨티시즘은 감상자의 영혼을 지배하고 잠식한다. 때론 격렬한 강압과 학대를 가하며 마조히즘(Masochism)적 음악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이것은 작곡가의 의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청중이 본능적으로 열망하는 "가학적 음악구조"이다. 이 모든 걸 부정한다 해도 결국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불가항력적 예술현상'이다. 카라얀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운명적 만남은 피학적 카타르시스의 극한점임을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바로 이 연주가 그 사실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