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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르도 샤이ㅣ말러 교향곡 9번

by Karajan

#오늘의선곡


G. Mahler

Symphony No.9


Riccardo Chailly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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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르도 샤이, 로열콘세르트헤바우의 <말러 교향곡 9번>은 1악장 도입부 시작부터 대단히 느리고 진중한 흐름으로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중압감을 안긴다. [30:29]의 러닝 타임은 과거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게오르그 솔티, 주세페 시노폴리의 연주 음원들과 비교될만한 묵직한 진행을 보여준다. 특히 1악장은 각 지휘자마다 최대 10분 남짓한 길이 차이를 보이는 대표적 악장이지만 샤이처럼 무게감과 폭발적 파괴력의 균형을 매우 절묘하게 유지하는 연주를 선호한다면 몰입감이 제법 강하다. 이는 말러의 교향곡 전체를 투명하게 꿰뚫고 있는 지휘자들의 음악적 성향과 말러리안의 정신세계 사이에서 강력한 접점을 이루며 진한 엑스터시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순간이 우리가 말러를 듣는 필요충분조건이자 이유가 되는 것이리라. 고요하게 마지막에 이르는, 시간이 정지된 듯한 순간은 말러의 그 어떤 교향곡도 구현하지 못한 사색과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후 흐름은 그야말로 리카르도 샤이의 말러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음향과 진동을 오롯이 느끼게 한다. 그가 주는 울림은 여러 다른 지휘자들의 시선과 확연히 구분되는 정갈함과 순도 높은 섬세함이 담겨 있다. 말러가 요구하는 모든 지시사항들을 그만큼 적재적소에 흔들림 없이 퍼붓는, 그러나 낭만적 정서와 음악이 지닌 아름다움을 절대 잃지 않는 완전한 형태를 낱낱이 보여주는 지휘자도 드물다. 말러가 <교향곡 10번>에서 묘사한 죽음 이후의 세계, 그 시점에 닿기 전, 이승의 삶을 마지막으로 조명한 작품이 <교향곡 9번>이기에 우리에게 좀 더 가슴속에 와닿는 곡이며, 인간의 모든 희로애락을 이토록 극적인 필체와 사실적인 음악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것에 새삼스레 놀라움을 느낀다. 그래서 3악장으로 이르는 과정에서 '삶의 기승전결'을 모조리 투영하고 마지막 4악장 피날레에서 격정적인 인생사의 단면을 회상하며 조용히 죽음에 이르는 희대의 걸작이 지금도 현세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샤이의 연주는 여느 음원들처럼 뜨겁고 폭발적으로 파괴되는 3악장은 아니지만 그 자체로 완전무결하다. 4악장이 시작되는 그 순간에 이르면 3악장의 종결이 온전히 이해가 된다. 현악의 정갈하면서도 격정적인 사운드가 지극히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충만한 경험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RCO의 중후하고 묵직하게 펼쳐지는 앙상블은 샤이가 말러를 해석함에 있어 최고의 도구,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런 표현은 적절치 않으나 달리 적합한 단어를 찾기 힘들 만큼 그들의 역할은 실로 완벽하다. 샤이는 충격적인 드라마를 이루려는 시도보다 담담한 속삭임, 작품 자체의 낭만과 미적 세계를 고스란히 담아내려는 듯하다. 이것은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모든 말러에서 변함없이 지켜온 철칙이다. 명확하게 규정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런 흐름 속에 삶과 죽음을 형상화하는 그의 독보적인 말러 해석이 바로 이 연주에 온전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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