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부터 무려 4개월 넘게 백수로 지내다 보니 (벌써 시간이 그리 흘렀다) 생각이 많아지기는 개뿔, 머릿속이 점점 하얗게 변해간다.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생기면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고, 돈을 벌 때는 시간이 없다는 사실은 어떤 순간도 완벽한 충만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정적인 증거일 것이다) 사고력이 충만해지기보단 점점 더 단순해진다. 매일을 쉬면서 느끼는 게 없어서가 아닌, 오히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부딪히기 때문에 시각적인 것에 더욱 몰입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느끼는 외부적인 자극은 너무도 많다. 그러나 이것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무언가 전혀 새롭고 현실적이며 시공간에 직설적으로 스며드는 요소인 탓에 산뜻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바로 이것이다. 예전에는 일상 속에 문득 떠오르는 상념들이 많았고 그런 생각을 끄적거리는 일들이 잦았다면 요즘은 본능과 직감, 피부로 와닿는 온갖 자극을 느끼며 사느라 글보다는 현상이나 눈앞에 놓인 실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바쁘다. 그런 만큼 글을 쓰는 시간은 줄고 그 시간들만큼 사진으로 담기에 열중한다.
'글'은 핵심을 짚고 단순 명료하게 써야 하는 도구이지만 '시선'은 사물을 향해 애정을 느끼며 섬세하고 오래도록 머물러야 한다. 비록 사고는 줄지만 현상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세상의 단면을 목격하게 된다. 이것도 결코 나쁘지 않다. 나만의 생각으로 치환하던 삶에서 눈앞의 실체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 이면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나 자신과 공존하는 대상에게 내면을 오롯이 투영하여 물아일체를 경험하는 것은 어쩌면 내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글이 예정했던 것보다 길어진다. 아마도 요즘 너무 글을 안 쓰는 나를 탓하며 목적의식을 갖고 덤벼들어서 생긴 결과일 것이다. 현실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나는 마냥 백수일 순 없는 운명이니 할 수 있을 때 돈을 벌고 여건이 주어졌을 때 순간을 즐기며 사는 것은 당면한 나의 삶에 대한 당연한 의무이다.
현실 속에서 '자유로운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미쳤거나 세상을 떠났을 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