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ㅣ트리오 반더러 내한공연

by Karajan

#공연리뷰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ㅣ트리오 반더러 내한공연

2023 SAC Summer Music FestivalㅣTrio Wanderer


8.25(금) / 19:3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트리오 반더러 (Trio Wanderer)

Violin/ 장 마크 필립 바자베디앙

Cello/ 라파엘 피두

Piano/ 뱅상 코크


 [프로그램]

L. v.  베토벤ㅣ피아노 3중주 5번 Op.70-1 "유령"

L. v. BeethovenㅣPiano Trio No.5 Op.70-1 "Geister"


F. 멘델스존ㅣ피아노 3중주 1번 Op.49

F. MendelssohnㅣPiano Trio No.1 Op.49


F. 슈베르트ㅣ피아노 3중주 2번 D.929

F. SchubertㅣPiano Trio No.2 D.929


<Encore>


A. 드볼작ㅣ피아노 3중주 4번 "둠키" 6악장

A. DvořakㅣPiano Trio No.4 "Dumky" 6th mov.


F. J. 하이든ㅣ피아노 3중주 39번 "집시" 3악장

F. J. HaydnㅣPiano Trio No.39 "Gypsy" 3rd mov.


L. 불랑제ㅣ어느 봄날 아침에

Lili BoulangerㅣD'un matin de printemps



#TrioWanderer #트리오반더러

#Beethoven #Mendelssohn #Schubert


2017년 09월 12일, 마포아트센터에서 트리오 반더러와 나는 처음 마주했다. 당시의 공연은 내게 그리 큰 인상을 주지 못했던 탓인지 공연리뷰가 아닌, 기록만 남아 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오늘, 그들과의 재회를 위해 오랜만에 예술의전당을 찾았다. 무대로 걸어 나오는 그들의 머리 위엔 오랜 세월의 무게가 내려앉은 듯했다. 어느덧 36년, 그 긴 시간을 함께 했던 그들이기에 트리오 반더러의 세 거장이 내딛는 발걸음은 마치 정지된 공간처럼 모든 걸 멈춰 서게 했다. 이들은 모 언론 인터뷰에서 "우린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 수는 없다는 사실도 매우 중요하게 배웠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긴 세월 호흡을 맞춘 사이라도 모든 것을 다 알 순 없다는 건 무척 중요한 깨달음이다. 그러나 그들이 보낸 36년의 시간은 켜켜이 쌓아온 내공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거대한 세월의 힘이다.


트리오 반더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강물처럼 도도하게 흘러가는 자연스러운 앙상블이다. 그야말로 본능적인 팀 호흡의 극치로, 누구 하나 더하거나 덜하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온전히 배려하고 홀로 드러나지 않으며 스스로가 오롯이 돋보이는 완벽한 혼연일체의 경지, 바로 그 믿기 힘든 현상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마법인 것이다. 긴 세월 동안 다져진 본능적인 호흡과 서로에 대한 무한한 신뢰, 그리고 음악에 대한 남다른 깊이감이 어우러진 아름답고 행복한 연주의 전형이었다. 활에 인위적인 힘을 가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고 완연하게 형상화되는 명징함과 그 오묘한 앙상블은 형언할 수 없는 무아지경의 경지였다.


한 인터뷰에서 "틀에 박힌 일상을 탈피하고, 음악에 대한 이해를 넓혀야 한다"라고 말했던 트리오 반더러는 “내가 기꺼이 사랑의 노래를 할 때 그것은 고통으로 변하였고, 내가 고통을 노래하면 그것은 사랑으로 변할 것이다"는 슈베르트의 말을 인용하며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 2번 D.929>의 작품이 지닌 의미와 분위기를 설명했다. 4악장 피날레에 2악장의 유명한 첼로 독주부 주요 선율이 두 번 반복된다. 그 순간 느끼는 전율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아마도 슈베르트는 천재이자 사이코패스일 것이다. 어찌 이토록 절묘한 반복구의 재등장으로 완벽히 매혹시키는 것인가. 라파엘 피두의 첼로는 애절한 감성과 울림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피아니스트 뱅상 코크의 투명하게 부서지는 트릴은 눈부셨다. 동시에 소름 돋는 충격파를 안긴다. 장 마크 필립 바자베디앙의 바이올린은 대단히 강력하게 주도적이며 자기중심적이었지만 또한 서로를 배려하고 각자의 개성을 하나로 융합하는 절충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1부에서 연주된 <베토벤 피아노 3중주 5번 "유령">과 <멘델스존 피아노 3중주 1번>에서 보여주었듯 분명한 그들만의 색채와 분위기, 앙상블의 노하우, 그리고 오랜 세월 형성된 트리오 반더러만의 음악적 법칙은 분명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2부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 2번 D.929>에서는 보다 진화된 반더러 식 음악화법을 완벽히 보여주었고 앙코르로 연주된 드볼작과 하이든, 그리고 특히 릴리 불랑제의 작품에선 또 다른 트리오 반더러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는 소중한 체험을 선사했다.


세상엔 여러 형태의 앙상블이 존재하지만 정답은 없듯이 트리오 반더러의 모습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형성되면서 다듬어진 독보적인 음악적 합주 방식도 존재한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당당하게 제시했다. 성격이 완전히 다른 세 종류의 화학 물질이 하나의 중재적 요소로 인해 신비한 융합을 이루었다가 위태롭고 불안정한 자기만의 고유한 반응에 놓였다가 다시 안정된 하모닉스를 이루는 과정을 낱낱이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것은 오랜 세월 깎아내고 다져진 그들만의 독보적인 음악 전개방식이리라. 덕분에 관객들은 뜻밖의 호사를 누렸다. 새롭진 않았지만 모든 것이 낯설고 동시에 익숙했던 그들만의 흐름에 속수무책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음악의 방랑자"인 트리오 반더러만의 방식일 테다. 그들의 음악에 행복했던 객석은 오늘따라 관람 매너도 대단히 훌륭했다. 어쩌면 그들의 음악에 압도되어 아주 작은 흠조차 보이지 않았던 탓도 있으리라. 단 하나의 대상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은 소중하다. 오늘은 트리오 반더러의 음악에 깊이 몰입했고 매료됐던 순간이었다. 우리는 스스로의 몰입을 향한 항해를 계속한다. 그리고 우연히 새 안식처를 찾아 행복한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우리가 참 음악에 몰입하는 이유일테다.


8.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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