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태어나는 것만큼 돌발적이다.
태어나는 것은 생명이 씨앗이 뿌려져
십 개월이라는 기간을 준비시키기는 하지만
죽음은 준비 없이 다가온다.
새벽이 내게는 소중한 시간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새벽에 바람처럼 떠나간 할머니 때문이다. 온전하게 함께 눈을 뜨는 나와,
눈을 떠주는 가족과 동료와 이웃이 있음을 어찌 가볍게 맞이하겠는가? 고맙고,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인간은 생명을 받았다가 다시 반납하는 동물이다. 그럼에도 죽음에 대한 서글픔과 안타까움과 고통을 느끼는 동물이다. 다른 동물도 죽음에 대한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인간만큼 강하지는 않다. 태어난 기쁨은 제대로 느끼지 못하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생명을 시작할 때보다
죽음을 맞이함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죽음은 다르게 다가온다. 죽음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려 함이다.
수많은 죽음을 보고 난 후에 자신도 죽음에 이르게 함은, 그 죽음이 아닌 그 삶의 모습을 기억하게 하려 함이다.
아파하지 말라.
지내온 삶을 칭송하라.
비웃고 고소해하지 말라.
내 삶도 부끄럽지 않았는지 돌아보라.
영원한 생명에게는 결코 오지 않는
한 번의 깨달음의 기회가 곧, 죽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