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가 만사, 일도 결국엔 사람이 한다
OOO자료를 명일까지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정 조율이 필요하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느 부서에서 일을 하든, 우리가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그곳이 공직이든 사기업이든 장소와 업종을 막론하고 타 팀의 업무 협조요청을 받아야 하거나,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나, 당신이 속한 팀이 지원부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면 더더욱이나.
Commercial Finance라는 미국계 특유의 재무회계팀에서 일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우리 팀은 어딘가 요청을 하기보다는 각 부서에서 들어오는 요청사항을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한세월이다. 단순하게 매출세금계산서 재발행을 요청받는다든지, 멀리는 제품별로 수익률을 정리한 자료를 받을 수 있냐든지 등.
재무회계팀, 주 업무는 말할 것 없이 회사의 장부를 올바른 기준에 맞게 관리해야 하는 업무겠지만 극한의 지원부서에서 일하는 이상 자료 협조 요청을 매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래 고객 중 가장 진상 짓 많이 하고 대응하기 힘든 고객은 내부고객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하루 출근 후 메일함을 열면, 어느 자료를 먼저 처리해야 할지 우선순위를 정해 오늘도 고객만족을 위해 일하는 건 아마 모든 재무회계팀의 일상일 것이다.
타 팀 또는 부서에 업무 협조요청을 하다 보면, 왠지 내 업무요청만 무시하고 잘 안 들어주는 것 같은 억하심정에 빠지기 쉽다. 분명 수요일까지 요청한 자료는 금요일이 되어도 오지 않으며, 그 자료를 받아 다시 2차 가공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억울함을 갖기 전에 협조 요청을 많이 받는 입장에서, 당신의 협조 요청이 왜 밀리는지를 알려주고자 한다.
1. 요청 범위와 사유가 불분명할 때
: 요청을 굉장히 정확하게 해 주시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 업무 협조 요청은 이메일이라도 들어오면 양반이다. 메신저나, 지나가면서 툭 하고 '아, 그 전년도 실적 좀 받을 수 있나요?'하고 지나가기 일쑤다. 맥락도, 이유도, 범위도 없는 요청을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게 왜 필요하시죠?'라는 대답을 하게 되고, 까칠한 직장 동료로 이미지가 변신하게 된다.
업무 요청을 받는 상대방은 당신이 왜 요청하는지를 읽어낼 수 없다. 업무 요청의 개요(이유), 자료의 작성 범위를 명확히만 해줘도, 우선순위는 급상승할 수 있다.
2. 굳이 긴급하게 보이지 않는 무질서한 긴급 요청
: 요청메일의 제목의 서두에 언제나 '긴급/초긴급' 또는 '회신요망!'등을 붙여서 보내시는 분이 있다. 이런 분의 요청은 대부분 5분 전에 보내놓고 2시간 뒤까지 거나, 심지어 지금 바로를 요청하시는 경우도 있다. 남 사정은 모르겠고 내 사정이 중요한 유형으로, 긴급하게 보내놓은 것 치고는 사실 메일 한통 보내고 가만히 있다가 '보셨죠? 다 하셨어요?'하고 치고 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표이사급의 VIP수명업무를 하시는 분들은 이런 요청을 보내시는 게 이해는 된다. 진짜 급하신 게 눈에 보일 정도로 메일을 보내놓고 전화로, 메신저로, 심지어 자리에 찾아오셔서 내가 그 일을 하는지를 옆에서 같이 보시는 분도 있다.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워도, 응급실 환자 처방전 낸다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 싶어 도와드린다.
3. 자기 업무를 대신 요청할 때
: 아마 가장 안 좋은 유형일 것이다. 업무 요청을 하면서 직접적으로 내 일 좀 대신해줘,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머릿속엔 이런 사람이 떠오를 것이다.
내가 준 자료를 받은 사람이 적절히 가공하면 충분히 대응 가능한 자료인데, 나에게 그 자료를 그냥 채워달라고 할 때.
실무자들끼리 충분히 라포가 형성된 상태라면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면서 그냥 내가 해줄게~ 커피 한잔 사! 하면서 처리해 줄 수 있고, 나 또한 실무자였을 때는 시간이 종종 남을 때 그렇게 해준 기억도 많다.
팀장이 되고 나니, 업무의 총량 관리 차원에서 좋지 못했다. 도와주고 감사함이나 들으면 다행인데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라고 담당자가 한두 번 바뀌면 '원래 그 팀에서 해주던 건데 왜 안 해주세요?'소리나 듣게 되니, 팀 간의 업무요청엔 팀장을 꼭 참조에 넣으라는 꼰대 같은 소리를 안 할 수 없게 되었다.
긴 글을 요약하자면, 진부한 표현으로 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일은 결국 사람이 한다는 말이다. AI가 발달하여 업무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한들 아직까지 실행과 결정은 사람이 하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납득시킬 수 있도록 '합리적이고, 명확한'논조로 업무 요청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당신의 업무 요청이 지속적으로 밀리고 있다면, 한 번쯤 내가 어떻게 요청해 왔는지를 돌아보고 요청을 좀 더 '구체화'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