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다 되어가는 신축살이, 주객전도를 깊이 느끼며
30년 넘게 안산에 살면서 결혼을 하고, 나는 2021년인가에서부터 아파트 청약에 도전해 보는 또 하나의 어른이 된 경험을 하고 있었다. 물론, 대학생이 된 순간부터 나의 행동에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어엿한 한 사람의 성인은 분명 그때부터 된 거겠지만, 제 용돈 벌이는 하고 있다고 해도 아직 정서적으로 독립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때였다.
실질적으로 진짜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칭할 수 있는 계기는 어떤 걸로 생각해 봐도 ‘혼인신고’를 한 시점 이후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더 이상 등본에서 부모님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내 스스로가 세대주가 되어 내 가정을 대표하는 사람이 되는 그 순간부터 나는 ‘어른’으로 할 법한 경험들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장 1년에 한 번 주민세를 납부해야 하는 거라든지 하는 작은 경험도 있었지만, 모든 계약서류나 관공서에 제출하는 서류에 세대주 자격으로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경험은 굉장히 낯설었고, 그래서 무주택 세대주 및 신혼부부 특별공급 자격으로 청약 신청을 할 때도 뭔가 사뭇 느낌이 달랐던 것 같다.
우리 집에서는 삼 남매 중 내가 처음으로 ’신축‘을 들어가는 경험을 하기 때문에 더 그랬을 수도 있다. 큰누나는 신축 청약을 받았음에도 당시 피를 받고 분양권을 전매했고, 작은누나는 분양권을 사서 당시의 신축으로 입주한 것이라 정식으로 신축 청약을 받고 온전히 입주까지 진행한 경험은 셋 중에 내가 유일하다.
사실, 당시 안산에 신축 단지가 워낙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내 직장이 그때는 야탑역 근처였고, 곧 역삼역으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생애최초 또는 신혼부부 특별공급 자격으로 안산이 아닌 외지에만 청약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청약 열풍은 분양가 상한제와 더불어 정말로 엄청난 열기를 띤 광풍으로 미달을 기대할 게 아니라 나 같은 타지 사람들은 예비번호를 받고 앞번호가 빠지길 기대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 될 정도였다. 실제로 오포 신축에는 예비 3번으로 당첨 대기가 떠서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내 차례까지 대기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입주한 아파트 청약을 넣을 때에도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세대수가 천 단위를 넘어가는 대단지라고는 하지만 1단지, 2단지를 나눠 청약하는 구조였고, 그러면 단지마다 청약을 넣어야 하는 꼴이라 경쟁을 2번 하는 구조였으니 실제로 가능성이 높을 것 같지 않았다.
1단지 청약 결과가 예비 1백 번대였을 때 역시나 하고 실망했고, 이어서 2단지 청약 결과에서 예비도 아닌 ‘당첨’이라는 문자를 봤을 때는 그래서 운전 중이었음에도 잠시 비상등을 켜고 졸음쉼터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특별공급이라고는 해도 타지 사람에게 단번에 당첨이 뜨다니, 이건 하늘이 내려 준 선물임에 틀림없다는 기쁨에 일사천리로 계약을 진행했다.
물론, 신축에 입주하는 과정은 정말 이걸로 글을 하나 따로 써도 될 정도로 기나긴 여정, 그리고 굉장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특히 다문화 가정인 나는 배우자가 주민등록상 주민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세대가 아닌 분리세대로 분류된다는 걸 아파트 청약 진행과정을 통해 처음 알았다.
또한 무주택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가구 내‘에 주택 보유에 대한 조건이 굉장히 까다롭다는 사실도 알게 되어 4대 독자임에도 나의 청약을 위해 부모님을 모시다가도 분가해야 하는 불효 아닌 불효를 실천하기도 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우리 가족은 작년 9월부터 모든 절차를 마치고 흔히 뉴스에 나오는 ’얼죽신‘의 점유율을 KB은행과 사이좋게 반씩 나누어 살아가게 되었고, 어느덧 1년 가까이 신축 생활을 만끽하며 주변 환경이 하나씩 변하는 걸 지켜보게 되었다.
신축 아파트에 왜 사람들은 그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얼죽아’와 더불어 ‘얼죽신’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시키며 신축 열풍을 불러온 이 시대에, 구축만 30년 넘게 생활하다가 신축으로 와 보니 확실히 신축의 장점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게 있다면 ‘화려함’과 ‘편의성’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화려함은 아파트의 미관과 연결되어 있다. 구축과 다르게 모든 통로를 지하주차장으로 연결하고 지상에는 차와 배달 오토바이의 출입을 막고, 멋진 나무로 꾸며진 조경과 놀이터 하에 아이들이 언제나 뛰어놀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 어딜 가나 보기 좋게 꾸며 놓았다.
편의성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신축의 꽃인 '커뮤니티'는 이제 신축의 가치 척도가 될 정도로 중요한 시설이 되었다. 고급화된 아파트는 수영장과 사우나 시설을 갖추고 있기도 하고, 일정 요금을 내면 호텔처럼 조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까지 갖춰 놓은 아파트도 있다. 그야말로 아파트 밖을 벗어날 필요가 없이, 안에서 모든 걸 할 수 있는 편의성은 구축과 그 결을 확실히 달리해 보여준다.
특히, 집 안에서 엘리베이터를 호출하고 앱 하나로 집의 모든 기능을 제어하고, 무엇보다도 분리수거일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자유로운 쓰레기 배출은 정말 굉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구축에서만 살아온 나에겐 적응이 안 되는 현실이 하나 있다.
그건 아파트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으로, 아파트를 아파트로 보지 않고 동네 최고의 '명품 아파트'로 만들자느니, '대장 아파트'역할을 해야 한다느니 등을 말하며 입대의에 이것도 저것도 요구하고 아파트 운영을 주도해 달라는 걸 보면 입주자 대표를 뽑은건지, 국회의원을 뽑은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왕왕 든다.
나에게 있어 아파트란 거주공간으로, 내 돈 반 은행 돈 반으로 구매한 집이라서, 이 집에서 뭔가 호텔처럼 모든 걸 다 할 걸 기대한 적도 없고, 굳이 아파트에 부가기능이 그렇게 많아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기 때문에 '아파트의 명품화'라는 표현도 뭔지 잘 와닿지 않았다.
단지를 깨끗하게 관리하고 이런 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공용공간에 대해 일반인이 잘 모르는 주택관리법을 들고 와 빡빡하게 재단할 때라든지, 원리와 원칙이 없으면 아파트 운영에 실패한다든지 하는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 건 꽤 새로웠다. 아마, 내가 동대표나 입주자 대표를 하는 날이 온다면 내가 모르는 권한도 많아서 지금 이런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마도 나는, 지금의 신축이 구축이 되는 시점에서는, 또는 그보다는 조금 더 일찍 신축을 떠나 다시 구축으로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신축이 갖는 편의성은 누구보다 편리하게 잘 이용하고 있지만, 때로 뭔가 보이지도 않는 허상에 빠진 공간에 사는 것보다야, 맘 편한 거주공간으로 인식되는 구축이 아직은 조금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뭐, 5년 뒤에 이 아파트도 구축이 되면 '명품 아파트'의 허상은 조금 빠질지도 모르니 일단은 지켜봐야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