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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게 좋은 거

by 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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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되기 전부터 걷기 시작했던 나는 돌 때쯤 이미 뛰어다닐 정도로 성격이 급했다. 그런 나를 안아 키운 건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다리를 절뚝이셨다. 걸음마를 배우기도 전에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쳤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할머니가 절뚝이며 걷는 게 보통 사람들과는 달라 보일 만도 했지만 어릴 적부터 그걸 봐왔던 나는 할머니 걸음이 이상하다고 여긴 적이 없었다. 성격 급한 내가 할머니랑 나란히 걸을 때마다 답답하다며 할머니 걸음을 재촉하면 할머니는 전봇대든, 담벼락이든, 기댈 만한 곳에 손을 짚고 가쁜 숨을 몰아쉬셨다.

내가 보기엔 다리보다는 숨쉬기가 더 큰 문제였다. 두세 걸음 걷다 한참 쉬며 심호흡을 하기를 몇 번. 성격 급한 나는 할머니는 내버려 두고 혼자 저만치 뛰어가 버릴 때가 더 많았다. 찬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가래 끓는 기침을 하고 쌕쌕거리던 할머니는 그때마다 고약한 감기에 걸렸다며 비책을 쓰셨다. 꿀 한 모금을 입에 머금기도 했고 가을에 신문지에 싸 항아리에 넣어뒀던 무를 강판에 갈아 그 즙을 떠먹을 때도 있었다. 어떨 땐 장에서 사 온 생엿을 한 덩이 톡 깨뜨려 밤새 혼자 녹여 먹곤 하셨다. 그래도 할머니의 기침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감기가 아니라 오래 묵은 기관지염이 폐에 붙어 호흡기가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힘들고 고된 이벤트가 덤으로 주어지지 않았어도, 할머니 삶은 숨만 쉬려 해도 힘들 지경이었다. 철없는 내가 대충 보아도 그녀의 삶은 가엽기 그지없었다. 나도 할머니 삶에 짐 같은 존재였다. 불행이 겹치는 인생. 그 인생 조금이라도 가볍게 이겨내고 싶어서였을까. 할머니는 늘 입버릇처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씀하셨다.

이십 대 새파랗게 젊던 할머니가 대통령 선거에 참여했던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다. 할머니가 투표하러 가는데, 마을 이장이 번호를 알려주며 그 번호를 찍으라고 했단다.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남이 아닌 할머니에게 듣고 있자니 기가 막혔다. 그렇게 할 거면 당신들이 알아서 하지, 왜 바쁜 사람을 오라 가라 하냐며 할머니가 불만을 한 마디 툭 뱉고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며 참기만 했던 할머니에게도 그렇게 패기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그런데 그다음 이어진 이야기가 더 놀라웠다. 선거 다음 날, 정치하는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왔더란다. 어제 되바라진 소리 한 여자가 누구냐고 물으며 할머니를 찾더니 몇 안 되는 세간살이를 집어던지고 부수며 위협을 했단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부정과 폭력이 공공연한 시절이었다. 그 후로 할머니는 힘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은 좋은 게 좋은 줄 알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셨단다. 나쁜 걸 봐도 그냥 참고, 괜히 문제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살아야 더 큰 손해를 피할 수 있다고 말이다.

불편한 다리에 가진 것도 없었던 할머니 삶에, 얼마나 서럽고 억울한 일이 많았을까. 그 이야기를 들으며, 비로소 알았다. 할머니의 침묵은 순종이 아니라, 끝없이 견뎌온 생존 방식이었다는 것을.

나도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이 진리인 줄 알고 살아왔다. 할머니처럼 사는 것이 지혜롭고 현명하다고 믿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 음식에서 이물질이 나와도 슬며시 빼놓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 친구가 무리한 부탁을 해도 거절하지 못했다. 업무에서 부당한 요구를 받아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참고 넘겼다. 그렇게 착하게 살면 손해 보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매일 억울하고 화가 났다. 얼굴은 웃는데 마음은 무거웠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완서 소설어 사전>에서 ‘좋은 게 좋은 거다’의 정확한 뜻을 알게 되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은 다소 부족하거나 찝찝한 점이 있더라도 큰 문제가 아니면 적당히 타협하는 게 서로에게 좋다는 뜻이다.

‘서로에게 좋은 일’

할머니는 아마도 이 부분에 무게를 두셨던 것 같다. 그런데 참을성 부족한 나는 할머니가 놓치고 있던 부분에 눈이 먼저 갔다.

‘다소 미흡하거나 석연치 않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것’

마음에 쏙 들진 않아도 그냥 받아들인다는 뜻의 이 문구. ‘만족스럽진 않아도’ 큰 문제는 없으니 그냥 받아들인다는 말. 결국, 이 말엔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수용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술술 풀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런 삶이 계속 이어진다면 진정한 사는 재미를 맛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세상 사람 누구나 흡족해서 기꺼이 무언가를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열 살 이전, 철없던 나는 열심히만 하면 원하는 걸 다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디 세상이 그렇게 쉽나? 한 살 두 살 나이 들어가면서 현실과 부딪히고, 주어진 것과 타협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배우며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부딪히고 타협해야 할 때 필요한 건 체념이 아니라,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행복이어야 한다는 걸 말이다. 마음 한가득 담아두었던 행복을 좌절의 순간에 꺼내 쓴다면, 성에 차지 않는 상황도 가볍게 웃으며 넘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늘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 뒤에 숨어 살았다. 그러나 정작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결국 나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참는 쪽은 언제나 나였고, 그 침묵이 쌓일수록 내 안의 행복은 점점 작아졌다. 그제야 알았다. 좋은 게 진짜 좋은 게 되려면, 거기에 ‘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내가 지워진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다짐한다. 나도 좋고, 너도 좋은 일을 ‘진짜 좋은 것’이라 부르겠다고.

이제 조금 다른 선택이 가능해졌다. 식당에서 문제가 생기면 사장님께 조용하고도 정중하게 말한다. 더 잘되길 바라는 마음까지 함께 전한다. 친구의 무리한 부탁엔 웃으며 “너랑 오래 잘 지내고 싶어서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하는 거야.”하고 답한다. 여태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이 생긴다면 나에게도, 조직에도 좋을 만한 제안을 하며 거절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나는 제대로 안다. 나도 괜찮고, 너도 괜찮은 세상, 그게 정말 좋은 세상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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