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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베스트 프렌드

by 강혜진

스무 살에 만나 마흔이 넘는 지금까지 한결같이 나를 위하는 마음으로 곁을 지켜주는 친구가 하나 있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라서 말을 놓고 지낸다. 이 친구는 스물한 살 풋풋할 때부터 귀밑에 희끗희끗 흰머리가 돋아날 때까지 계속 만나왔다. 누구보다 격 없이 지냈으니 서로가 서로의 역사를 다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의 가족과 왕래하며 안부를 챙기고 마치 내 일인 것처럼 대소사를 챙겨 온 사이. 결혼식 때, 첫째 아이,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 크고 작은 기쁜 일이 생겼을 때도, 누구보다 기뻐하며 나를 챙겨준 고마운 사람이다. 나를 길러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결혼식도 올리기 전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장례식 내내 내 곁을 지켜준 믿음직하고 고마운 친구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만 찾는 친구가 아니라 어렵고 힘들 때 더 가까이에서 챙기는 사람이다. 혹시나 직장에서 너무 과한 업무를 요구하는 건 아닌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이용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늘 신경 쓰며 나를 보살핀다. 매일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전화 통화를 하고, 주중에도 주말에도 별일이 없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늘 안부를 묻는 사람이다. 혹여나 아프면 약도 사 주고, 먹고 싶은 것도 챙겨준다. 가끔 내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아프면 나 대신 우리 아이들 먹을거리까지 사다 챙겨주는 기댈 만한 언덕이다. 중학생인 아들 주원이의 영어, 수학 공부도 봐준다. 내가 바쁘면 청소와 빨래까지 대신해 준다. 그러니 이 친구는 미운 짓을 해도 미워할 수 없다. 다툴 때도 있지만 하루가 안 돼 화해하곤 한다. 나에게는 없으면 안 되는 친구, 오래 삐져 있으면 나만 손해다.

둘도 없는 베스트 프렌드, 바로 남편이다. 남편이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니 그 소중함은 까마득히 잊고, 당연한 것도 성에 안 차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나에게는 남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연애할 땐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맞춰주던 사람이었다.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내 손을 꼭 잡고 나를 배려해 주던 사람이었다. 그 모든 것이 ‘~었다.’로 끝난다는 것은, 과거 종결형이라는 말이다. 결혼하고 나서는 잡아 놓은 물고기에게 더 이상 미끼를 주지 않는 것처럼, 남편이 더는 나를 배려하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함이 쌓였다.

결혼 전에는 그저 ‘친구’로서의 모습만을 봐 왔었다. 결혼 후 남편에게는 아들, 사위, 아빠, 직장인이라는 이름이 더 얹어졌다. 1인 다역을 하며 사는 그도, 나처럼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던 것만은 확실했다. 남편이 이 모든 역할을 내려두고 나의 ‘남편’으로만 살아줬다면, 나는 또 그것대로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결혼 후 며느리, 엄마의 역할이 더해지자 나도 까칠해졌다. 피곤하고 바쁘면 원망하는 마음이 불쑥 커지곤 했는데, 나는 남편이 다른 역할을 해 내느라 나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서운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집은 엉망이고 업무는 해도 해도 끝이 없어 정신없이 지내는 날이 이어졌다. 만삭의 몸으로 늦은 밤까지 일을 하다 퇴근하는 나에게 남편은 학교 걱정은 좀 내려놓고 쉬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얄미웠다. 그런 말 할 시간 있으면 집안일이나 좀 하라며 짜증을 냈다. 밤늦은 시각까지 학부모의 민원 전화에 대응해 지칠 때면, 퇴근 시간도 지났는데 그냥 끊어도 된다며 나를 생각하던 남편을 쏘아붙였다. 자기도 선생님이면서 교사로서의 책임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 같다며 비난하기까지 했다. 주말이면 늘어져 자며 아이들 끼니를 제때 챙기지 못해도 남편은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말했다. 몸이 아플 정도로 지쳤을 때, 건강 잃으면 다 잃는 것이라며 인생을 좀 즐기며 살아도 된다고. 그럴 때마다 나는 놀 궁리만 하는 남편이 못마땅했다.

나를 위하는 걱정 섞인 말도, 열 번이면 열 번,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이 곱게 들리지 않았다. 내가 힘든 것이 남편 때문인 것만 같았다. 입만 열면 남편에게 짜증을 쏟았고, 그의 말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했으며, 자주 얼굴을 찡그렸다. 지친 남편은 나의 부정적인 반응을 피해 운동하고 오겠다며 퇴근 후 몇 시간을 테니스장에서 보내곤 했다. 그러면서도 육아시간을 쓰고 집안은 늘 깨끗이 청소해 두고 나서야 운동하러 나가곤 했다.

신혼 초 섭섭한 마음이 쌓여 남편의 좋은 면을 애써 보지 않으려고 했다.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능력, 타인과 적정한 거리를 잘 유지하는 태도,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는 단호함,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성숙함. 내가 갖지 못한 장점을 남편은 참 많이도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의 방식을 나에게 강요한 적이 없다. 내가 힘들어할 때 이렇게 해 보면 어떠냐고 권했다가 쏘아붙이는 나의 반응에 놀라 이제 더는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않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참 다행인 건, 그와 오래 함께한 내가 그의 모습을 보며 어느새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와는 다른 게 많은 사람. 식성도, 생활 습관도, 사람 대하는 태도도, 서로 수직선의 반대편에 위치한 것처럼 비슷한 점이라곤 요만큼도 없다고 생각했던 우리였다. 그런데 함께한 세월이 길다 보니 서로 스며들었는지 우리 둘, 조금씩 수직선의 0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 닮아감이 다행스럽다.


딸이 가끔 묻는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냐고. 너를 가장 좋아한다는 답을 듣고 싶어서 묻는 질문이었을 테다. 나는 아들도, 딸도 아니라고 답해준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아빠야. 아빠는 엄마랑 제일 가까운 베스트 프렌드거든. 아빠가 없었으면 너도, 오빠도 태어나지 않았겠지. 그래서 엄마는 아빠가 좋아.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멋진 사람이야.”

가볍게 웃으면서 한 말이지만, 진심이 담긴 말이다.

남편은 나를 가장 깊이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 앞에서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 준다. 화를 내는 모습도,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도, 씻지 않고 헝클어진 채 누워 있는 나의 모습도,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부끄러운 모습까지도 남편 앞에서는 그럴 수 있다. 남편은 그런 내 모습까지 품어 주는 사람이다. 그는 안심하고 내 속마음까지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남편이 가깝고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글을 쓰고 나서야 새삼 깨닫다니, 나도 참 답답하기 짝이 없었구나. 그런 답답한 아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살아준 남편이 대단하다. 이제라도 이 알았으니, 앞으로는 남편과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자주 고마움을 표현하며 살아야겠다. 그의 좋은 모습을 닮아가며, 점점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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