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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무렵의 소감
by 서댐 Mar 06. 2018

애인의 ‘전 남친’

- 나는 애인의 '전 남친'과 경쟁한다

대화는 생각과 경험의 교환 행위이다. 어떤 현상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나누는 일은 흥미롭다. 상대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라든가, 페미니즘에 대한 평가, 특정 사건에 대한 시각은 보통 나와 일치하지 않고, 그 때문에 예측할 수 없는 신선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내 머릿속에서 나온듯한 일치점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그것대로의 신기함과 쾌감으로 즐겁다.          


여자친구와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된다. 나는 이러한 대화의 방식에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을 느끼는 한편, 울컥 목까지 차오르는 불편함을 감지할 때도 있다.   

       

로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그렇다. 예컨대 여행의 기억, 멋진 음식점, 생소한 지역, 특별한 체험에 대한 추억들을 서로 이야기하다보면 본능적으로 그것이 전 남자친구와의 추억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나는 그때부터 그 이야기에 대한 몰입의 방향을 바꾸고, 그 배후에 숨어있는 그녀의 ‘전 남친’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떤 생김새와 어떤 말투로 대화를 나눴을까. 얼마나 행복했을까. 나를 보고 짓는 그 사랑스러운 표정을 그 남자도 느꼈겠구나. 하면서 우스꽝스러운 질투심을 느낀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녀의 여러 추억들 속에는 어설프게 감춰진 ‘전 남친’의 실루엣이 언뜻언뜻 보이게 된다.       

   

그리고 여전히 나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그녀가 혹시 전 남자친구를 문득 그리워하지는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이 들면 그때부터 나는 이 세상에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경쟁을 혼자서 시작한다.    

       

그래서 그녀와 내가 데이트를 할 때. 나는 한편으로는 그녀와 즐거운 데이트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나머지 한편으로는 그녀의 ‘전 남친’과의 대결을 진행하고 있다. ‘전 남친’보다 내가 더 말을 잘하고, 멋지고, 자상하고, 든든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이름도 성도 생김도 모르는 그 남자는 매번 내 머릿속에 내 결투 상대로 강제 출전한다.          


내 애인에게 이전의 연애가 있다는 것, 만났던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인데도 나를 무의미한 언짢음의 감정으로 몰고 간다. 그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으나 나는 자꾸만 느끼게 되는 알 수 없는 씁쓸함. 나는 그런 마음을 느끼면서 모순 덩어리인 나를 한심하게 쳐다본다.          

내가 처음으로 연애를 시작했을 때. 그때는 불가항력으로 경험이 부족했고. 상대도 보통 그랬다. 그래서 서로를 통해서 연애라는 행위를 배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맨날 구워주는 고기만 먹다가 집게와 가위를 들고 어설프게 고기 굽는 법을 익히게 된 것도 모두 지난 연애가 남긴 흔적이었다. 그러니까 사실은 나도 지난 몇 번의 연애를 통해서 지금의 나로 만들어진 것이다.           


연애가 처음이었을 때에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지난 연애사를 신경 쓸 필요가 적었지만, 그만큼 서툴렀고. 나는 그 서투름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으로 휘청였다.          

 

나는 내 연애의 시간과 함께 나이가 들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만나는 동안 상대방은 그 나름대로 누군가를 만나며 서투름과 싸웠을 것이다. 그 시기는 이제 지났다. 이제는 서투름과 싸울 필요가 줄어들었다. 대신 상대의 ‘전 애인’과 싸우게 되는 절차를 더 복잡하게 겪어야 하는 시기임을 납득해야할 것 같다.       

   

아마 내 애인도 나의 과거를 감지하고 상상하면서 라면에 잘못 들어간 계란 껍질을 불시에 씹듯이 언짢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좋은 사람과 좋은 연애를 지금 이순간 즐겁게 하면 되는 것인데, 지우고 고칠 수도 없는 과거를 자꾸만 상상한다는 것이 어찌 생각하면 참 유치하면서도 그 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어떤 대화의 순간마다 그녀의 전 남자친구와, 그와 함께한 추억의 순간들을 감지하고 언짢아 할 것이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그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볼 테고 결국 더 기분 나빠질 것도 안다. 하지만 이렇게 미리 알면서도 그녀의 ‘전 남친’과의 경쟁은 아마도 영원히 계속되지 않을까. 그런 자괴감에 머리를 팡팡 치고 한심해하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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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누군가의 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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