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웨일>
사회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신체적 장애나 질병, 정신 질환, 상대적 가난, 부족한 학력, 직업의 유무 등. 자신이 속한 사회의 사람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진입하기 어렵다는 것이 뭔지 아는 사람이 있고, 그런 고민을 해본 적 없는 운 좋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전자의 사람이고 전자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영화 <더 웨일>의 주인공 찰리가 사회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숨어서 산 이유는 비만이라는 질병 때문이었다. 찰리는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 초고도비만이다. 보조기구가 없으면 걸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에 갈때도 보조기구에 몸을 지탱해야 하고 바닥에 물건이 떨어지면 주울 수가 없어서 집게를 사용해야 한다. 찰리를 유일하게 돌봐주는 간호사 친구는 혈압을 재보더니 찰리에게 넌 곧 죽을거라고 말한다.
찰리는 온라인 글쓰기 강의를 하는 강사였다. 그는 카메라가 고장났다는 핑계로 화면을 끄고 수업을 해왔다. 그는 학생들에게 "솔직하게 쓰라"고 강조한다. 그는 종교가 아닌 솔직한 에세이가 삶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찰리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팔 년 전에 이혼한 전처와 살고 있는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다. 딸은 이제 열일곱 살이 되었다. 찰리는 전처에게 줄곧 딸의 안부를 물어왔다. 사 년 전쯤 전처는 딸이 <모비딕>에 관해 쓴 에세이를 찰리에게 보내줬는데 찰리는 그 에세이를 수십 번 읽었고 모든 문장을 외워버렸다. 딸의 에세이는 진솔했다. 유명한 고전이라고 해서 대단한 작품이라고 추켜세우는 일은 없었다. 딸은 <모비딕>에서 작가가 고래 얘기만 하는 챕터가 슬펐다고 하며 그것이 자기 넋두리에 지친 독자를 위한 배려라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그런데 팔 년 만에 만난 전처는 딸이 악마라고 했다. 학교에서 반 친구들 울리고 선생님들 차 타이어 펑크내는 등의 이유로 퇴학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찰리에게 알려 줬다. 하지만 찰리는 딸이 좋은 사람임을 믿는다. 딸이 쓴 에세이 때문이다.
딸이 찰리에게 그동안 왜 전화 한 통 없었냐고, 진작 내 인생에 있어줄 수 있었지 않냐고 원망하는 마음을 내비치자 찰리가 말했다.
"누가 날 자기 인생에 끼워주고 싶겠니?"
찰리는 자신이 딸의 인생에 누가 될까봐 염려했다. 찰리의 비만도는 정신력과 의지력의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찰리의 비만은 질병이었다. 질병 때문에 사랑하는 딸에게 다가설 수 없었던 것이다.
찰리는 피자를 두 판씩 시켜먹는데 배달원에게 돈은 우편함에 놔뒀으니 문 밖에 피자를 놔두고 가라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배달부가 밖에서 찰리를 기다렸다가 찰리의 모습을 보고는 "oh, my god"이라고 하며 혐오스럽다는 반응을 내보인다. 이것이 숨어 지내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사회적 시선이다.
내게도 찰리 정도는 아니지만 비만인 남동생이 있다. 남동생은 직장에 다닌다. 하지만 비만 때문에 전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한 적이 있다. 남동생에게는 비만으로 인한 기면증이 있었다. 남동생이 이직 준비를 할 때 레퍼런스첵을 하는데 남동생의 상사가 남동생이 비만이고 기면증있다고 뽑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회사 입장에서 직원이 기면증이 있을 때 문제 삼는 건 당연하다. 이해는 한다. 하지만 누나 입장에서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남동생은 여전히 비만이지만 다행히 지금은 기면증은 없어졌다.
딸은 찰리에게 까칠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찰리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아빠를 사랑하는 딸이었다. 아빠는 딸이 문제아로 찍혔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위할 줄 아는 따듯한 아이라는 걸 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라는 단 한 사람의 믿음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찰리와 딸 같은 사람들이 숨지 않았으면 좋겠다. 몸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밖으로 나와서 햇빛을 받아야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회를, 그런 기회 조차, 피자 배달부 같은 사회적 시선이 차단하지 않기를 바란다. 숨어 있는 좋은 사람들이 밖으로, 햇볕으로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