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지루할 땐 아들을 키워라

2025년 12월 24일 아들에게

by laurel

아들! 올 한 해는 정말 힘들었지? 나보다 니가 훨씬 더 힘들었겠지만, 나에게도 이렇게 괴로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버거운 하루하루였다.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너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려고 생각하다가 니가 원하는 너에 대한 이야기를 브런치에 올리기로 했어. 왜 그렇게 자기 이야길 쓰길 바라는지 잘 모르겠는데. 하하 (난 주로 여기다 너네 누나 흉을 보는 편이라서)


어제 글을 쓰려고 생각한 순간 니가 어릴 때 밤마다 등을 긁어달라고 하던 게 갑자기 생각나더라구. 그때 니 등을 더 많이 만져줬어야 했는데... 아가가 잠들 때까지 긁어주지 않은 게 후회가 됐어. 그땐 몸도 마음도 피곤해서 짜증을 많이 냈던 게 이제 와서야 후회가 되네. 미안하고.

변명을 하자면 니가 4살 때부터 누나가 학교에서 반장을 하기 시작하고 내내 반장 아니면 전교부회장 아니면 전교회장을 하는 바람에 엄마가 너한테 늘 소홀했었어. 항상 요구하는 게 많은 누나와 달리 날 닮은 너는 엄마가 힘든 걸 보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밤에 등만 긁어달라고 했는데 그것도 안 해줬네.. 니가 얼마나 많이 참고 있었을지..

그래서 니가 학교를 더 이상 안 가겠다고 했을 때, 얼마나 많이 참았는지 아냐고 했을 때 니 마음을 부정할 수가 없었어. 그러고 나서 이렇게 된 게 모두 다 니 탓인지 내 탓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봤지만 니탓도 내 탓도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고 (알지? 울면서 사주도 보고 타로도 보고 등등등) 학교에 가지 않는 너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너를 그렇게 만든 나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9개월이 흘렀다. 그리고 니가 안 나가면 내가 나가야겠단 생각에 일을 시작하기 위해 돌아다녔어.

다행히 이제는 너도 내년부터 대안학교를 다니게 되고 나도 일을 시작하게 되었네.

엄마가 너한테 고맙다는 얘길 얼마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엄마는 너네 누나가 사춘기일 때 니 덕분에 몇 년을 잘 지냈던 거 같애. 아빠는 늘 그냥 데면데면하고 누나는 자기 일은 열심히 했으나 초등학생이 갑자기 50만 원짜리 붙임머리를 해달라고 하지 않나 중학생이 아침마다 학교 가기 전에 1시간씩 화장을 하질 않나... 이해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거부할 수도 없는 일들을 벌이고 있을 때 그나마 너는 주는 대로 먹고 잘 자고 아프지도 않고 해 달라는 것도 없었어 그래서 널 보면서 웃을 수 있었어.

네가 기억하는 엄마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작년 2학기부터 네가 학교를 안 가고 집에서 밤마다 울고 아무것도 안 하고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을 땐 게임이라도 해라 싶더니 이젠 게임만 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고. 엄마나 아빠가 되면 그렇게 되나 봐. 사실 다른 집 아이가 학교를 안 다닌다고 했을 땐 요즘 공부가 다냐했는데 막상 아들이 학교를 안 가겠다고 하니 세상이 무너진 것 같고 이제 무얼 해야 하나 싶고. 정말 사람이 살면서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늘 깨닫게 해 주는구나 아이들은.

엄마가 갑자기 너에게 편지를 쓰는 건 올 한 해 정말 수고했다는 얘길 꼭 하고 싶었어. 그리고 내년엔 아주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엄마가 항상 널 응원한다는 거. 이제 산타할아버지는 없지만(넌 있다고 우기면서 선물을 달라고 하겠지) 가족들이 널 정말 정말 사랑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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