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투리안 Feb 02. 2020

<성혜의 나라> 결국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돈이다

#성혜의나라에서살아남는법  #기본소득


누군가 내게 말했다.


- 너는 소설 속을 살고 있구나.


그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깊게 꽂혔다. 상처를 입 밖으로 내지 않고는 너무 힘들 것 같아, 한 친구에게 가벼운 에피소드였던 것처럼 털어놓았다. 눈물이 나올까 고개를 숙여 말했던 내게, 친구는 한 글자씩 힘줘 누르며 이렇게 답해주었다.


- 너는 정확히 현실을 살고 있어.


그 말이 큰 힘이 되었다. 나는 잘못 살고 있지 않다. 그런 믿음이 느껴졌다.



왜 나는 작가를 꿈꾸는가. 영화든 연극이든 소설이든,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엔 3가지가 있다. 통념에 갇히지 않고, 삶에서 중요한 것을 되돌아보게 하고, 인간사의 여러 빛깔을 담고 있다.


나는 그렇게 산다.


인간사의 여러 빛깔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통념에 갇히지 않고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것을 지키며 사려고 노력한다.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는 걸 안다. 그래서 이 악물고 산다. 


 이상한 일이다. 내가 나로 살겠다는데 이게 이렇게 힘들 일인가. 성혜의 나라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가. 살아감이 원래 이렇게 고단한 것인가. 여하튼 나는 아직까지  버티고 있다. 이럴  있는  2가지 덕분이다.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사람과, .



성혜는 어떤 아이였을까


삼각김밥 먹는 성혜. 예전에 유행했던 쟌스포츠 백팩


성혜는 취향이 없어 보인다. 옷도 밥도 집도 직업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취향엔 돈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취향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개성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성급하다. 오히려 성혜는 자아가 강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높은 평가를 받으며 대기업 인턴 생활을 하던 중 성희롱을 당하고 바로 신고한 이력을 고려하면 그렇다. 모욕적 발언에 사과를 요구하고 부당함에 항거하는 것은 자연스러워야 하는 일이지만, 현실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나는 어떤 사람이다 혹은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에 대한 강박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첫 장면에서 의사에게 중학생 과외를 한다며 거짓말을 하는 장면이나 7년이나 된 남자 친구 승환에게 공황장애가 의심된다는 사실을 밝히지 못하는 장면도, 어쩌면 성혜의 그런 성향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강하면 부러진다


청년들은 대개 자아가 강하다. 나이를 먹고 세상 풍파 좀 겪어내면 자신을 지키면서도 유연하게 사는 법을 알게 되지만, 유연해지려다 자기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자기를 지키려다 부러지는 경우도 있다. 나는 성혜가 부러질까 걱정됐다. 예전 직장 동료가 찾아왔을 때, 비참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차라리 자리 하나 만들어 줄 수 없냐고 너스레를 떨 줄 아는 친구였다면 걱정이 덜 됐을 것이다. 성혜는 너무 애쓰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5억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성혜는 자살을 선택했을 것 같다. 쉽게 하는 말이 아니라 - 내가 성혜의 성격을 조금은 알 것 같아서 - 내가 성혜였다면 그랬을 것 같다는 얘기다.




나는 자아가 강하단 소리를 종종 들어왔고 남들과 다른 것 같단 말도 들어본 적 있다.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는데, 내가 남들과 섞이지 못하고 있나, 섞일 수 없는 사람인 건가, 하는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한동안 움츠러들었고 스스로를 의심하곤 했다.


내가 성혜와 성혜의 친구들의 이야기에 깊게 공감하는 건 상황이 비슷해서가 아니다. 자아와 자유와 꿈과 이상을 잃어버린 심리적 억눌림과 좌절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적당히 유연하면서도 나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내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한 사람과 매달 통장에 찍히는 적지 않은 월급 덕분이다.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결국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돈이다. 내 곁을 지키는 그 한 사람과의 관계를 건강하게 지킬 수 있는 것도, 돈과 돈에서 오는 여유 덕분이기 때문이다. 물질만능주의, 천민자본주의와는 전혀 결이 다른 이야기인데도 결국 중요한 것이 돈이라는 사실이 서글프다.


어쩌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돈도 영유하기 힘든 나라에 살게 되었는가. 계속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가.


영화의 끝에서 성혜의 선택을 보고 등골이 서늘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을 했다. 돈이 성혜가 다치지 않게 지켜줄 것이다. 성혜가 한숨 고르고 마음에 여유가 생겼을 땐 다른 삶을 시작해볼지도 모른다. 관찰자로서 우리는 성혜가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기본소득


진담반 농담반으로 사람들 입에서 건물주가 꿈이란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지 좀 된 것 같다. 한 5년 전만 해도 나는 그 말이 다소 천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부모님 품을 벗어나 내 삶을 내가 오롯이 꾸려나가야 하는 때가 오니, 이제는 내 입에서도 그런 소리가 종종 튀어나온다. 어렸을 적 내가 부모님 품에서 보호받고 있었던 것도 모르고 참 오만했었다. 큰돈을 바라는 게 아니다. 건물을 살만큼의 큰돈을 원하는 게 아니다. 매달 통장에 꽂히는 적당한 수준의 불로소득을 원할 뿐이다. 그게 나를 자유롭게 할 것만 같아서. 현 시대에서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는 (그나마) 쉬운 방법은, 건물주가 되거나 로또에 당첨되는 것이다.


지인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기본소득’이란 단어가 나왔다. 개인을 향한 위로나 독려가 아니라 청년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저성장과 4 산업혁명으로 인한 저질의 일자리가 어쩔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면 이에 대비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나는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이것에 대한 고민이 전 세계 곳곳에서 시작된 건 맞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좀 더 생산적인 논의가 있길 바란다.


성혜와 승환이를 위하여



* 훌륭한 리뷰를 보아서 공유 (스포주의)

http://www.ccoart.com/news/articleView.html?idxno=814

매거진의 이전글 청년에게 바치는 힐링 영화 <성혜의 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