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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Jan 07. 2023

그리스 신화 vs 기독교 신화

지난 연말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jtbc TV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설왕설래 속에 막을 내렸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방영된 마지막 회의 결말 처리에 멘탈이 붕괴된 시청자들이 많아서 그랬습니다. 그만큼 인기가 좋았다는 것을 반증한 반응이었을 것입니다. 시청률이 정점을 찍는 인기 드라마의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회엔 시청자들의 기대감도 정점을 찍으며 그간 꼬인 실타래를 시원하게 풀어주는 결과를 기대하기에 제작진은 고심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며 본래의 결말과 다른 길을 가기도 하는데 이 드라마도 역시 원작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원작대로 가지 않은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그 모든 것을 감안한 최적의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16부작인 이 드라마의 15회에 한 서양 화가의 명화가 등장했습니다. 스페인 출신인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크로노스>였습니다. 그 그림은 <옷을 입은 마하>, <옷을 벗은 마하> 등의 여체 시리즈로 종교 재판에 회부될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그의 작품답지 않게 충격적인 장면으로 보는 순간 섬뜩함까지 안겨줍니다. 대개 무서운 신화나 종교의 장면도 회화나 조소에선 장르의 특성상 예술성 있게 처리하는 것이 통례인데 이 그림은 오히려 사실성 그 이상으로 그로테스크하게 처리해 마치 호러물을 보는 듯합니다. 아들을 잡아먹는다는 충격적인 제목에 걸맞게 말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들을 잡아먹는 크로노스>는 이런 충격성 때문인지 고야를 비롯한 루벤스 등 여러 화가들에게 맛난 먹잇감처럼 좋은 그림감이 되어 왔습니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 등장한 '아들을 잡아먹는 크로노스', 고야, 1823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의 2대 주신입니다. 여기서 주신은 디오니소스와 같은 술의 신을 말함이 아니라 신들의 신, 신들의 왕을 이릅니다. 그가 이 그림에서 아들을 잡아먹고 있는 이유는 그 아들이 아버지인 그를 죽이고 왕좌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언에 기초하여 애당초 화근을 없애기 위해 이렇게 무서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즉 권력에 눈이 멀어 자식들을 없애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아내인 레아가 자식을 낳는 족족 잡아먹어 6명의 형제를 잡아먹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잡아먹고 안심한 그 6번째 아들은 그 꼴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레아의 기지로 먹게 된 강보에 싼 따뜻한 돌덩이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난 아들은 장성해 아버지인 크로노스를 제압하고 그 뱃속에 있는 형제들을 토해내게 해 모두 구해줍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우군인 티탄족과 전쟁을 벌여 왕좌를 차지하고 아버지를 그리스 땅에서 라틴족의 땅으로 추방시켰습니다. 이렇게 그 집안의 막내아들은 왕좌를 쟁탈해 주신이 된 것인데 그가 바로 그리스 신화 통틀어 최고의 신으로 우뚝 선 제우스입니다. 그는 올림푸스 산 정상에 살며 그 산에 가신 그룹인 11명의 신들을 곁에 두고 하늘과 땅의 신계와 인간계를 모두 다스렸습니다. 제우스를 포함한 그들을 올림푸스 12신이라 부릅니다. 그리스 신화의 이너 서클 멤버들입니다. 그리고 그가 구해낸 5명의 형제들에겐 지상과 지하 세계의 권력을 골고루 나누어주었습니다.


아내 레아로부터 제우스인 줄 알고 강보에 싼 돌덩이를 건네받는 크로노스, 기원전 4세기 부조 


제우스가 아버지를 물리치고 왕좌를 차지했지만 그것은 그 집안의 반복된 역사였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크로노스도 또 그의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물리치고 권력을 잡은 것이었으니까요. 제우스의 할아버지 우라노스는 하늘이고 씨를 뿌리는 남성을 상징해 기업으로 치면 이 세상의 창업자였습니다. 할머니인 가이아는 대지이고 출산을 상징하는 여신이었는데 하늘인 우라노스가 내려와 대지를 덮으면 그들 사이에 많은 자식들이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우라노스가 그들 자식들 중 흉측한 아들들을 어둠 속에 가두자 그와의 동침이 싫어진 가이아는 아들인 크로노스와 작당하여 그를 제거하기로 합니다. 결국 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가 어머니 가이아와 동침하기 위해 땅에 내려왔을 때 그의 남근을 싹둑 잘라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그의 권력의 상징과도 같은 남성성, 씨를 잃은 우라노스는 그 순간 무용지물이 되며 아들인 크로노스에게 권력을 이양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권력을 잡은 크로노스였지만 그 역시 그런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는 아버지의 저주를 듣고 그것을 피하려 자식들을 낳는 족족 잡아먹은 것인데 우라노스의 손자인 막내아들인 제우스에겐 된통 당한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이 3대 이야기는 흡사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3대를 그대로 연상하게 합니다. 드라마 속 진양철(이성민) 회장의 총수 자리를 노리는 자식들과 그 손자들,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사수하려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힘겨루기가 우라노스와 크로노스, 그리고 제우스에게로 이어지는 권력의 대물림과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웹소설 원작에선 그리스 신화와 마찬가지로 막내손자이자 막내아들인 진도준(송준기)이 회장으로 취임합니다. 그리고 신화에서도 막내아들 진도준의 독백처럼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났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크로노스에게 일어난 이런 불길한 예언적 서사의 실현은 이후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와 결혼한 오이디푸스 왕, 발 뒤꿈치에 급소를 가진 트로이 전쟁의 최고 영웅 아킬레우스, 그리고 저승의 신 하데스의 허락을 받고 아내인 에우리디체를 구하려 명부의 세계로 내려간 오르페우스의 비극 등에서 여지없이 나타났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도입부인 이 3명의 지배자 이야기는 세상의 탄생 신화입니다. 3대 지배자인 제우스는 헤라와 결혼하고 이후 탄탄한 권력을 구축해가며 세상을 안정적으로 다스리게 됩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주신인 제우스 그 자신부터 바람 잘 날 없는 바람기로  많은 이야기들이 신화엔 계속해서 등장하지만 그의 권력을 넘볼 자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신화의 초장임에도 벌써 많은 신들이 등장했습니다. 우라노스 부부와 그의 자식들, 크로노스 부부와 그의 형제들인 티탄족, 제우스 부부와 그와 권력을 나눈 남매들, 그리고 제우스의 통치 기반인 올림푸스 산상의 12신과 또 그들의 가족 등 벌써 일일이 세기에도 벅찬 많은 신들이 등장했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 신들이 또 많은 신들과 엮여 더 많은 신들이 출현하고 태어나니까요. 아, 앞에 크로노스가 잘라서 힘껏 바다로 던진 우라노스의 남근에서도 거품이 일어 한 신이 태어났는데 그는, 아니 그녀는 미의 여신으로 불리는 아프로디테입니다. 우라노스의 남근은 오늘날 키프로스 섬 앞바다에 떨어졌습니다.


'신들의 회의', 라파엘로, 1518. 주신인 제우스는 오른편 끝에서 네 번째

     

참으로 골치 아픈 그리스 신화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정작 아직 인간은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 인간은 신화의 여러 곳에서 등장하는데 그중 대표적으로 알려진 창조 신화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진흙으로 최초의 인간을 창조했는데 그가 그렇게 직접 만든 인간이기에 애정을 느껴 제우스가 인간에게 빼앗아 간 불을 다시 몰래 전해준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제우스의 분노로 코카서스 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또한 아프로디테의 남편인 대장장이 신인 헤파이스토스도 제우스의 지시에 의해 남자들만 잔뜩 있던 인간 세상에 최초의 여자를 만들었는데 그녀가 바로 판도라입니다. 그녀는 금단의 상자를 열어 인간의 희로애락과 생로병사 등을 다 날려 보내고 희망만을 그 상자에 가두었습니다. 한편 조각가인 피그말리온도 인간을 창조했는데 그는 그가 조각한 여인상을 사랑한 나머지 그 차가운 조각상이 실제 아름다운 여인 갈라테이아로 변신하는 행운을 누려 그녀와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같은 키프로스 출신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의 기도를 들어주었습니다.


한마디로 복잡합니다. 세상 탄생도 복잡하고, 신들 탄생도 복잡하며, 그 숫자는 많고 가계는 이쪽저쪽으로 얽혀 있습니다. 인간의 출현 또한 복잡합니다. 한 곳도 아니고 여러 곳에서 말입니다. 이렇게 복잡함에도 이후 지중해의 새로운 패자가 된 로마는 과거 그리스를 동경하여 이 복잡한 신화를 그대로 승계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라노스(Uranos)는 카일루스(Caelus)로, 크로노스(Kronos)는 사투르누스(Saturnus)로, 제우스(Zeus)는 유피테르(Jupiter) 등의 로마식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영어로는 우라누스(Uranus), 새턴(Saturn), 주피터(Jupiter)가 그들입니다. 물론 이들 지배자들뿐만 아니라 올림푸스 산을 비롯하여 세상의 숲과 강과 바다, 그리고 지하에 살던 그 많은 신들까지 모두 문패를 로마자로 새로 달고 그리스의 신에서 로마의 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즉 로마 신화는 그리스 신화와 똑같다고 할 정도로 거의 일치합니다. 이 신화는 서로마 멸망 후 잠들어 있다가 기나 긴 중세 천년을 건너뛰고 르네상스 시기에 다시 한번 찬란하게 부활합니다. 수많은 대가들의 작품 속에서 그리스 신화가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위의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크로노스>는 르네상스 이후인 근대 19세기의 작품입니다.   


그리스 신화 속 인류 최초의 여자 '판도라',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1896


기독교는 단순합니다. 이 단순함은 그리스 신화에 비하면 더욱 단순해 보입니다. 일단 기독교엔 신이 딱 한 명밖에 없습니다. 야훼, 또는 여호와라 불리는 하느님, 또는 하나님이 유일한 신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는 세상도 단 6일 만에 창조하였습니다. 그것도 그가 짠 계획표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순차적으로 하루하루 정확하게 만들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쉬었을 것입니다. 온갖 신들이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 속에서 세상을 창조하는데 걸린 시간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혼돈 그 자체인 카오스에서 튀어나온 가이아가, 처녀성으로 잉태하여 낳은 아들인 우라노스와 부부 관계를 맺고 세상을 창조하기 시작했는데, 그 창조는 계속해서 미완의 세계를 보완하며 완성해 갔습니다. 그러니 카오스의 세계에서 코스모스의 세계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물론 신들의 자식은 잉태 기간이 10개월이 걸리는 인간과는 달리 위의 아프로디테처럼 순식간에 태어나기도 합니다. 그녀가 우라노스의 남근이 떨어진 거품 바다에서 태어날 때 그것을 절단시킨 크로노스의 낫에 흐른 피에서도 3명의 자식들이 태어났으니까요. 역시나 그들 또한 모두 이런저런 일을 담당하는 신이 되었습니다. 아니 복잡할 수밖에 없는 그리스 신화의 세계입니다.


기독교의 유일신인 여호와는 우리 인간 또한 매우 심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작업 6일 차에 한 일이 인간을 창조한 일이었으니까요. 흙에 그의 생기를 불어넣어 최초의 인간인 남자 아담을 창조하였는데 그가 외로워 보여 그의 갈빗대를 하나 떼어내어 최초의 여자인 이브도 만들었습니다. 최초의 인간인 그들은 그리스 신화 속 인간들과는 달리 처음엔 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전달한 문명인 불 같은 것이 필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주신인 제우스는 처음엔 인간을 싫어해서 인간에게서 불을 빼앗았는데 그것에 저항한 프로메테우스가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 있던 그 불씨를 몰래 빼와 다시 인간에게 전해준 것이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형벌에 처해진 프로메테우스는 훗날 헤라클레스의 도움으로 풀려났는데, 그는 그때도 여전히 인간 편에 서서 제우스와 단판 협상을 벌였습니다. 결국 제우스는 대세에 밀려 그때부터 인간과 정상적이고 평화적인 관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신 여호와는 처음부터 인간을 끔찍이 생각해 에덴동산을 조성해 그 안에 인간의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다 놓았습니다. 아, 의복은 필요 없었겠네요. 뱀이 꼬드긴 선악과를 따서 먹기 전엔 말입니다.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먹으려 하는 '아담과 이브', 루카스 크라나흐, 1526


이렇듯 그리스 신화 대비 참으로 심플하고 쉬운 기독교의 천지창조이고 인간창조입니다. 보시듯 이 기독교의 신은 인간을 대하는 태도도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 신은 자식 문제도 심플했습니다. 천지창조 이후 먼 훗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는데, 그는 그리스의 주신들과는 달리 복잡한 형제들이 없었습니다. 유일신 여호와의 유일한 자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독생자는 아버지를 해친 그리스 주신의 아들들과는 달리 영의 아버지인 여호와에겐 극진한 효자였습니다. 따스하고 보드라운 침대가 아닌 말 먹이통에서 태어나게 하고, 30년 간 가난과 노동 속에 살게 했으며, 결국은 33세인 젊은 나이에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했는데도 그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죽음까지 담담하게 맞이하였습니다. 고통 속에 죽기 바로 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게 해 달라는 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부탁한 전부였으니까요. 위의 그리스 신화의 막장 드라마와도 같은 비정상적인 부자 관계와는 전혀 다른 예수 그리스도와 여호와 아버지 간의 지극히 정상적인 부자 관계였습니다.


드디어 이런 기독교의 유일신과 그리스 신화를 그대로 계승한 로마의 다신이 만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30세가 되는 시점인 서기 30년부터입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33세에 죽은 그의 공생애가 시작된 연도입니다. 그전까지 그는 30년 간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에게도 극진해 그의 목수 일도우며 살았으나, 이후 3년은 영의 아버지인 여호와를 위해 살았습니다. 처음에 기독교의 신은 로마의 많은 신들과 전혀 상대가 안 되었습니다.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기독교는 로마의 한 속주인 유대 왕국의 지역 종교에 불과했으니까요. 게다가 식민지 지역의 지배층도 아니고 피지배층에게서 발생한 종교이니 그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기적은 장시간 로마인의 많은 탄압을 신앙으로 버텨낸 기독교인의 더 많은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만, 결국은 우리가 역사에서 목도하듯이 기독교는 최종 승자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사후 300여 년 후인 313년, 결국 지배자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공인했고, 392년 그 기독교는 그 제국의 국교까지 되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 신화의 그 많은 신들이 들어앉았던 자리에 기독교의 유일신 단 한 명만이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과거 로마가 지배했던 그 많고 넓은 지역엔 도시마다 그 도시가 숭상하는 신화 속 신들의 거소인 신전이 있었는데, 이제 그곳은 유사시 신탁을 받는 종교 제단이 아닌 역사의 유적지가 되고, 후대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로마의 무장 막시무스로 분한 러셀 크로가 대사를 앞두고 출정 전 그의 가족의 조그만 신상들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도 떠오릅니다. 아마도 그가 200년 정도만 늦게 태어났어도 그 앞엔 기독교의 십자가가 놓여있었을 것입니다.   


구름 군중 앞에서 열린 예수 그리스도 설교의 백미인 '산상수훈', 코시모 로셀리, 1481


<마케팅 불변의 법칙>이란 책이 있습니다. 미국의 마케팅 전문가인 잭 트라우트와 알 리스가 1993년도에 펴낸 책으로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에겐 아직도 교과서와도 같은 책입니다. 그 책엔 22가지의 마케팅 불변의 법칙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단일의 법칙'입니다. 즉 하나로 힘을 집약해서 싸워야 마케팅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케팅의 대표적인 수단인 광고를 할 경우 소비자에게 많은 것을 전달해주고 싶다고 해서 많은 메시지를 던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메시지들이 분산되어 오히려 도달력과 침투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게 되니까요. 이는 앞에 있는 사람에게 많은 공을 던지면 혼란스러워 단 한 개의 공도 받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지만 하나만 던지면 그 공은 누구든 쉽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싱글 콘셉트 하에 단일화된 메시지(SMP, Single Minded Proposition)의 힘은 정확하고 강합니다.


그리스와 로마 신화보다 훨씬 불리한 여건에서 뒤늦게 출발한 기독교가 당시 세계 제국 로마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겠으나 이런 유일신에서 오는 단일의 법칙도 큰 요인일 것입니다. 로마 제국의 영토가 확장됨에 따라 로마인들은 새로 지배하게 된 식민지에 그들의 제도는 물론 사상과 종교도 전이시켜야 하는데 복잡하고 어려운 그리스와 로마의 수많은 신들로는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유일신에 복잡하지 않은 교리로 그런 허들을 쉽게 넘을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종교를 통한 사상 통합에 굉장히 유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와 로마 신화 속엔 주로 전쟁, 부정, 배신, 비극, 기담 등이 가득 차있는데 반하여 기독교의 교리는 믿음, 소망, 사랑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낮고 가난한 피지배층에게 침투시키기가 매우 용이했을 것입니다.


세계 제국으로 가는 로마는 이렇게 신화에 근거한 그들의 토착 종교를 포기하고 그들이 탄압했던 기독교를 선택했습니다. 결국 그 선택은 이후 로마를 천년 넘게 더 가게 했으며, 이후 로마는 망해도 기독교는 망하긴커녕 로마를 벗어나 진정한 전 세계의 종교까지 되었습니다. 유일신인 데다가 쉬우면서도, 낮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그 누구든 차별하지 않는 차별성을 갖춘 보편성으로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기독교의 성공은 마케팅 불변의 법칙 중에서 단일의 법칙 한가지뿐만이 아니라 그 책에 나오는 전체 22개의 법칙을 모두 다 적용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종교든 마케팅이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것은 동일하니까요. 그리스 신화에 근거한 문화와 정신인 헬레니즘과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히브리즘은 오늘날 서구 문명을 이룬 양대 축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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