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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교황 시대의 종료

영화 <두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체스코 교황

by 마하

266대 교황인 프란체스코 교황이 부활절 다음날인 지난 21일 선종했습니다. 부활절 전날에 <오픈 콘클라베! 영화 콘클라베>란 글을 이곳에 기고한 저로서는 감회가 묘했습니다. 교황의 선종은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로 이어지기에 그랬습니다. 투병 중이었지만 회복세가 보여 부활절 미사를 집전할 수도 있다고 한 뉴스도 떴었는데 끝내 그는 사망의 문턱을 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이었을 것입니다. 프란체스코 교황의 평온한 영면을 기원합니다.


신자들의 조문 인사를 받는 선종한 프란체스코 교황 (출처, 바티칸 뉴스)


그날 밤 <두 교황> 영화를 넷플릭스를 통해 보았습니다. 2019년 개봉했음에도 그간 보는 것을 미뤄왔던 영화였는데 교황의 선종으로 자연스레 눈이 간 것입니다. 저는 그간 프란체스코 교황과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등장하는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 성격이 강한 성스러운 영화로 이해했었나 봅니다. 그래서 약간의 머뭇거림이 작용하여 극장 직관은 물론 TV 시청을 미뤄왔습니다. 보고 나니 제 생각이 꼭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틀린 것은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다 것이었습니다. 실화를 다루다 보니 기록에 의존한 다큐멘터리 성격이 강하고 실제 자료 영상도 많이 들어갔지만 영화적 요소가 그 이상으로가미되었기 때문입니다. 러닝타임인 126분 내내 단조로움과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프란체스코 교황의 유쾌하나 감동적인 스토리를 담은 영화 '두 교황'의 포스터


특히 두 교황 역을 맡은 노년 명배우 듀오의 명연기가 흥행에 방해되는 그런 요소들을 대거 삭제시켰습니다. 영화 <두 교황>은 다른 출연자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 교황의 출연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영화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회상 신을 제외하면 두 배우는 마치 연극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마치 국내 연극 무대의 신구, 박근형 두 노년 배우처럼 말입니다. 연극과 다른 점은 업무든 휴식이든 교황의 동선을 따라 계속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기에 볼거리가 많다는 점입니다. 교황의 별장을 비롯하여 바티칸시국의 이곳저곳이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저와 같은 세인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런 두 교황 역엔 틈이라곤 요만큼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벽해 보이지만 틈만 나면 참을 수 없는지 독일식 유머를 발사하는 베네딕토 16세 교황 역의 앤서니 홉킨스와 동네 할아버지와도 같은 털털한 서민 연기로 내내 친밀함을 살포하는 프란체스코 교황 역의 조나선 프라이스가 등장합니다. 동작도 크지 않고 목소리도 높지 않지만 상반된 라이프 스토리와 성격을 가진 이 두 배우의 훌륭한 케미가 영화 <두 교황>을 더 흥미롭게 만들었습니다.


'두 교황'에서 베네딕토 16세 역을 맡은 앤서니 홉킨스와 프란체스코 교황 역을 맡은 조너선 프라이스의 투 샷 (좌로부터)


영화 속 그들이 주고받은 대화가 픽션은 아닐 것입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두 교황의 퍼스널 히스토리이고, 2005년 이후인 최근에 일어난 일이니 픽션이 치고 들어갈 영역이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가 왠지 실제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프란체스코 교황은 영화에서처럼 꼭 그랬을 것만 같습니다. 사진과 영상을 통해 본 두 교황의 실제 투 샷도 영화 속 두 교황의 모습과 꽤나 닮아 보입니다. 영화에선 귀여워 보일 정도로 정겨운 두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두 교황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엄숙한 미사나 강론이 아닌 그런 두 교황의 모습에서 감동이 오곤 했습니다.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까지 265대가 내려오는 동안 종신직인 교황이 생전에 퇴임한 경우는 다섯 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진 퇴임한 교황은 딱 한 명뿐이었습니다. 1274년 취임 5개월 만에 사임한 첼레스티노 5세가 바로 그입니다. 그 사실은 <두 교황> 영화에서도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연기한 앤서니 홉킨스의 입을 통해서도 나옵니다. 사임을 만류하는 프란체스코 교황(당시는 추기경) 역을 맡은 조나단 프라이스에게 사임의 정당성을 피력하기 위해 그런 역사적인 사례를 들어준 것입니다. 생전 퇴임한 다른 교황들은 성직 매수나 왕권에 밀려 강압적으로 불명예스럽게 퇴진했습니다.


이렇듯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자진 사임한 두 번째 교황이 됩니다. 그런즉 우리는 2천년 카톨릭 역사상 정말 흔치 않은 두 교황의 시대를 살아온 것입니다. 2005년 5월 취임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8년 만인 2013년 2월 사임하고, 2022년 12월에 선종했으니 10년 동안을 그런 희소한 역사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 기간 중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공식 호칭은 명예 교황(Pope Emeritus)이었습니다. 교황은 독립국가로서 선거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바티칸시국의 군주이기도 하니 기간 중 그는 상왕 역할을 한 것입니다. 마치 조선 태종 시 정종과 태조처럼 말입니다.


생전에 자진 사임한 265대 베네딕토 16세 교황 (1927~2022, 재임 2005~2013)


다른 캐릭터를 지닌 상반된 두 교황의 모습은 영화 <두 교황>에서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유럽 중에서도 엄격한 독일인으로서 학문에 심취하며 성장해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신학자가 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모습과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남미의 자유로운 아르헨티나 거리에서 자라며 탱고와 축구를 즐긴 프란체스코 교황의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릴레이션쉽이 계속 이어집니다. 대화는 티격태격하며 갈등을 보이는 것도 같지만 축구의 티키타카처럼 끊이지 않고 계속 생산됩니다. 유쾌함이 기조를 이루지만 그 안엔 그들의 가슴 아픈 현실과 과거의 모습도 나옵니다. 두 교황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서로의 내면을 확인하며 화합을 이끌어 갑니다.


베네딕토 16세(요제프 라칭거 추기경)는 그가 교황이 된 2005년의 콘클라베에서 경쟁자로 나선 프란체스코 교황(호르헤 베르골리오 추기경)을 바티칸으로 호출해 그를 잇는 적임자로 점지합니다. 그가 사임을 결심하며 이 사람이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교회의 위기를 돌파하고 사안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생각이 다른 그가 교황이 되면 전임자인 그의 흔적을 지울 수도 있기에도 그렇습니다. 물론 사임을 결정하는 것부터가 그렇습니다. 교황은 14억명이 넘는 세계 카톨릭 신자의 정점에 있는 최고 지도자이고 권력자이니까요. 1294년 7월 교황이 되고 151일만인 그해 12월 자진 사임한 첼레스티노 5세와는 경우가 다릅니다. 당시 그는 주교가 아닌 숲속에서 은거했던 수도사로 교황청의 공식 언어인 라틴어도 모르는 등 학식과 조직 운영능력이 부재했던 교황이었으니까요.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추천으로 교황이 된 것인데 교황좌가 고통스러웠던 그가 사임하며 본래 있던 수도원으로 돌아간 것이었습니다. 그가 교황이 되기 전 교황좌는 27개월간 비어있었습니다.


물론 교황이 마음에 두는 후임자가 있다고 해서 그 추기경이 교황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2013년 콘클라베를 통해 아르헨티나의 추기경이었던 프란체스코 교황은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세계는 굴뚝에서 피어오른 하얀 연기로 그의 선출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281년 선출된 그레고리오 3세 교황 이후 역사상 두 번째로 선출된 비유럽권 출신의 교황입니다. 그레고리오 3세 교황이 과거 로마 제국의 영향 하에 있던 지중해 연안의 시리아 출신임을 감안하면 실상 최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회 출신 사제로서는 최초의 교황이기도 합니다. 카톨릭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빈자의 아버지 266대 프란체스코 교황 (1936~2025, 재임 2013~2025)


두 교황의 이야기이다 보니 <두 교황> 영화에선 두 번의 콘클라베를 보여줍니다. 대신 현재 극장에서 장기 상영 중인 영화 <콘클라베>와는 달리 <두 교황>의 콘클라베는 다큐성으로 빠르게 처리됩니다. 오전에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전 세계에서 온 추기경들이 콘클라베를 위한 미사를 드리고, 오후에 파올리나 성당에 모여 성가를 부르며 투표장인 시스티나 성당으로 입장합니다.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 성당은 영화 <콘클라베> 보다 상세히 보여줍니다. 전면 제단 뒤로 보이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천정화인 <천지창조>를 다 보여주니까요. 이 장면들은 역시 <콘클라베> 영화와 같이 실제 시스티나 성당이 아닌 세트와 3D CG를 통해 실제보다는 조금 크게 재현되었습니다.


프란체스코 교황이 선종하며 이제 두 교황의 시대는 완전히 종료되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년 3개월 먼저 선종했지만 프란체스코 교황 마음속엔 그 기간 동안 그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계속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선종 시 그를 인정하고 귀하게 쓰고자 했던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많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수준급 실력을 갖춘 그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했던 순간, 딱딱한 독일인인 그 교황에게 탱고를 가르쳐주고 춤추었던 순간, 독일과 아르헨티나 월드컵 축구 경기를 함께 환호하며 시청했던 순간, 시스티나 성당 옆방에서 로마 시내에서 사온 거리의 피자와 환타를 먹던 순간 등.. 제가 너무 영화에 몰입하고 있는 건가요?


'두 교황'에서 피아노 연주와 감상으로 두 교황이 함께 즐기는 모습


'두 교황'에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에서 만난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경기를 두 교황이 응원하는 모습. 경기는 독일이 우승


사실 베네딕토 16세가 명예 교황으로 재직 시 두 교황이 갈등을 보이는 모습도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도 프란체스코 교황은 생전 인터뷰에서 "그분은 저에 대한 지지를 한 번도 철회한 적이 없습니다. 그분이 동의하지 않는 사안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결코 입밖에 내지는 않으셨습니다"라고 하며 오히려 그로 인해 겪었을 그의 고통에 대해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나에게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고까지 했습니다. (바티칸 뉴스)


아래는 2022년 12월 28일 프란체스코 교황이 병상에 있던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마지막으로 만나 그와 작별했던 순간을 술회한 내용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3일 후인 12월 31일 선종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침상에 누워 계셨습니다. 여전히 의식은 있었지만 말은 하지 못하셨죠. 저를 바라보시고, 제 손을 꽉 잡으시고, 제가 하는 말을 알아들으셨지만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분의 손을 잡고 있었어요. 그분의 맑은 눈이 기억납니다. 저는 그분에게 다정하게 몇 마디를 건네고 그분을 축복했습니다. 그렇게 작별인사를 나눴죠." (바티칸 뉴스, 프란체스코 교황의 대담집인 <후계자>란 책으로 출간 예정)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체스코 두 교황이 만나는 모습. 아마도 역사상 최초이자 다시없을 모습 (출처, 바티칸 뉴스)


프란체스코 교황은 선종을 하며 마지막으로 전쟁이 없는 세계의 평화를 기원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유언과도 같은 이 기도가 세계의 전쟁 당사국들에게 얼마나 유효하게 작용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팔레스틴 등 주요 전쟁 지역의 종교는 베타성이 강한 정교회, 유대교, 이슬람교로 교황은 그들에겐 서방의 종교 지도자에 불과하니까요. 그래도 프란체스코 교황의 마지막 기도가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그들 모두가 섬기는 하늘에 계신 신은 이름은 달라도 같은 유일신(하느님, 하나님, 여호와, 야훼, God, Allah)일 테니까요.


오늘 26일 프란체스코 교황의 장례식이 끝나면 곧바로 콘클라베에 돌입하게 됩니다. 성 베드로의 후계자인 267대 교황을 뽑는 선거입니다. 지금 바티칸은 전 세계에서 온 추기경의 카디널 레드로 붉게 물들여지고 있습니다. 이번엔 누가 교황으로 선출되고, 또 어떤 기록을 남길까요? 콘클라베가 시작되면 세상의 모든 눈은 성 베드로 성당 뒤편의 굴뚝을 주목하게 될 것입니다. 그 굴뚝은 굳게 잠긴 콘클라베 시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로 바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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