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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May 22. 2018

휴대폰과 멍때림, 창의력과의 관계

<심심할수록 똑똑해진다>

솔직히 나는 <심심할수록 똑똑해진다>를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제목을 잘못 지은 것 같은데?'였다. 물론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심심할수록 똑똑해진다>라는 제목을 붙였는지 알았지만 그래도 책의 내용에 비해 뭔가가 많이 부족한 제목이라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미리 말하겠다. <심심할수록 똑똑해진다>는 요즘 유행하는 멍때림을 하는 방법이나 지루함이 창의력과 우리의 뇌과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휴대폰의 단점만을 늘어놓으며 절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이 책은 휴대폰을 잠시라도 손에서 놓는 순간, 우리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저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준다.     


책은 묻는다. 휴대폰이 당신의 생산성을 방해하는가? 당신 스스로 휴대폰에 중독되었다고 느끼는가? 휴대폰이 당신의 건강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만약에 이 세 가지 질문에 하나라도 속한다면 잠시 휴대폰을 손에서 놓고 <심심할수록 똑똑해진다>를 읽기를 권한다.    


<심심할수록 똑똑해진다>의 기본은 '휴대폰을 손에서 놓았을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 관한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휴대폰이 좋지 않다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현재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 기기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그것들에 파묻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거나 머릿속이 흐릿해져가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 테크놀로지는 앞으로 더 빨리, 더 많이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심심할수록 똑똑해진다>는 디지털을 받아들이되 그 속에서 나의 창의성과 아이디어, 생활을 잊어버리지 않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그 방법으로 '마음 방황'과 '멍 때리기'를 이야기한다. 스스로 휴대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일주일간의 '지루함과 기발함 프로젝트'를 통해 당신도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책에는 '지루함과 기발함 프로그램' 7단계 도전 방법을 실었다. 각자에게 필요한 부분의 단계에 도전해도 되지만 단계별로 차근차근 책과 함께 도전과 성취를 느껴봐도 좋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지루함을 즐기는 능력을 길러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디지털과 충돌할 때마다 이겨내는 힘과 잊고 있었던 창의성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잠시의 지루함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항상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고 끊임없이 영상을 본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잠깐 동안에도 지루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렇다면 그 '지루함'이란 도대체 뭘까? 그것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지루함을 그렇게 견디지 못하는 걸까? <심심할수록 똑똑해진다>에서는 지루함이라는 단어가 산업혁명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물론 그 이전, 인류가 존재했을 때부터 지루함은 있었고 느꼈겠지만 다르게 표현되었을 뿐이다. 지루함에 대해 여러 정의가 있지만 그중에서 나는 지루함은 기발함을 탄생시키는 부화장치이며, 현재의 목표가 더 이상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매력적이지도 않고 아무런 의미도 없을 때 지루함은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고자 하는 동기부여를 의미한다는 설명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옥스퍼드 대학의 J.R.R 톨킨 교수는 <호빗>이 "한 여름 눈앞에 채점할 시험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끔찍하게 지루한 시간에 탄생했다."고 말했다. 한 학생이 백지로 제출한 시험지를 발견했을 때 그는 너무 기뻐서 "만세! 읽을 게 없어!"라고 탄성을 질렀다. 1968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톨킨은 "그때 나는 그 시험지에 '땅에 난 구멍 속에 호빗이 살고 있었다"고 휘갈겨 썼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판타지 소설의 첫 문장이 그렇게 탄생했다.    


10여 년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정도로 빠르게 변한 세상 속에 살고 있다. 물론 그런 변화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줬지만 그 이면에는 분명 부정적인 측면들도 있다. 그중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될 대표가 바로 스마트폰이다. 휴대폰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변화시켰고 빠르게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해줬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의 시간을 빼앗아가고 내가 느끼고 감동받아야 할 많은 부분들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이제 인쇄된 종이의 내용을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한다. 페이지 마지막 줄을 읽을 때까지 맨 위의 문장을 기억하고 있을 만큼 나의 뇌가 오래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편소설 전집을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신의 눈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스크롤하듯 페이지를 건너뛰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디지털 기기의 속박에서 벗어나 변화할 수 있을까?  

   

<심심할수록 똑똑해진다>와 함께 도전해 볼 '지루함과 기발함 프로젝트'의 7단계는 다음과 같다. '도전 1:자신을 관찰하라', '도전 2:이동할 때는 기기를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둬라', '도전 3:하루 동안 사진을 찍지 말라', '도전 4:앱을 삭제하라', '도전 5:페이크케이션을 떠나라', '도전 6:다른 것들을 관찰하라', '도전 7:지루함과 기발함 도전'    


디지털 사용 습관을 파악하기 위한 꼼꼼한 질문을 통해 스스로 디지털에 얼마나 빠져 사는지 먼저 파악한다. 무작정 당장 휴대폰을 끄라는 것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말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실천했던 도전인 만큼 도전하는 방법과 앞서 도전했던 사람들의 소감 등을 첨부해서 어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다. 하지만 힘들 것이다. 휴대폰을 최상의 장점과 최악의 단점을 모두 가진 베스트 프렌드라고 말했던 청취자의 말처럼 이미 휴대폰은 그 어떤 것보다 우리와 친밀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도전하고 실천해 보길 바란다. 휴대폰으로 인해 잃어버린 당신의 상상력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다시 떠올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고 앞으로 더 빠르게 세상을 변화시킬 기술을 반대하는 안티 테크가 아니다. <심심할수록 똑똑해진다>는 건강하게 휴대폰을 사용하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현재의 삶을 즐기기를 바랄 뿐이다.    

 

딸과 가까워지기 위해 딸의 학교 현장 학습에 참가했다. 그러나 그는 버스를 타는 순간부터 여행 내내 사진을 찍고, 페이스북에 올리고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을 추적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아빠가 1시간 동안 자기한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딸이 불평할 때까지 말이다.     


<심심할수록 똑똑해진다>의 수많은 예들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들이었다. 출퇴근하면서, 업무 중에, 티브이나 책을 읽으면서도 휴대폰을 옆에 두고 끊임없이 보고 있다. 딱히 찾아봐야 할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급하게 보내야 할 메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습관처럼 잠시 놓치면 굉장한 소식을 놓칠 것만 같은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책을 읽으면서 마주한 내 모습을 보니 왜 요즘에 이렇게 글이 안 써지는지, 머리가 점점 굳어져 가고 상상력을 잃어가는 느낌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단계씩 <심심할수록 똑똑해진다>의 프로젝트를 실천해 볼 것이다. 한 단계씩 클리어해 가면 휴대폰으로 인해 잊어버렸던 창의력을 다시 찾을 수 있겠지. 벗어날 수 없다면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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