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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Feb 19. 2017

낯선 곳에서 길을 잃는 즐거움

피렌체의 골목을 헤메고 다녔다.

처음 걸어보는 낯선 길은 두렵지만 동시에 여행의 짜릿함을 안겨준다.


오후 늦게 피렌체에 도착한 후 저녁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밤거리를 호기롭게 돌아다녔다. 마치 오랫동안 피렌체에 살던 사람인채 했다.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물어볼 생각도, 두리번 거리지도 않았다. 골목길을 헤맨다는 건 잘 알고 있는 장소든 낯선 곳이든 무섭기는 매 한가지이다. 뒤에 따라오는 외국인들의 발자국 소리에 뒷머리가 쭈뼛쭈뼛했지만 그것마저도 즐거웠던걸 보면 여행이라는 마약은 그 효과가 엄청난 것같다. 모든 길은 다 통하게 되어 있다고 했다. 한참을 이골목 저골목을 헤매다가 으슥한 느낌의 큰 건물을 발견했다. 어쨌든 골목을 벗어났으니 휴.



검색을 해보니 피렌체 중앙시장이라고 나왔다. 낮이었다면 사람들로 북적이고 여러 종류의 가죽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2층에 푸드코트가 있다는 글을 봤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 곳까지 왔으니 올라가 보기로 했다. 1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2층으로 올라가는데 입구에 우락부락하게 생긴 가드 아저씨가 서 있어서 잠시 주춤했다.



마치 사용하지 않는 공장같이 어두컴컴한 분위기의 바깥과 달리 2층에는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한국 도착 후에 찾아보니 현지인들도 많이 찾고 관광객들에게도 숨은 맛집으로 알려진 곳이라고 한다. 여행 중에 유레카라는 말은 이럴때 사용하는 거겠지? 피렌체가 내게 주는 첫번째 선물은 바로 피렌체 중앙시장의 푸드코트였다.


여행을 가면 많은 사람들은 현지인들이 먹는 곳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낯섬을 잘 견디지 못한다. 결국 한국인들이 가보고 추천하는 곳, 그들이 먹은 음식들을 먹는다.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후 회사 동료가 이런 말을 했다. 

"이태리에서 피자 먹어봤어요? 난 맛있는거 한번도 못 먹었는데, 다 별로더라구요." 이탈리아까지 가서 인생피자를 맛보지 못한 그녀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이탈리아를 다녀온 후 몇 개월이나 지났지만 우리는 늘 피렌체 중앙시장에서 맛본 피자와 맥주에 대해 추억한다. 피렌체에는 아오이와 준세이의 두오모도 있고 메디치가의 엄청난 예술작품들도 있지만 우리에게 피렌체는 낯선 골목을 헤매다 만난 신세계같은 피렌체 중앙시장 푸드코트, 그리고 그 곳에서 맛본 음식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여행은 이렇게 의도하지 않은 시간과 공간 덕분에 기분좋게 때로는 불쾌하게 기억된다. 좋지 않은 기억이면 또 어떠랴. 만약에 우리가 그 때 이 곳을 발견하지 못해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로 저녁을 먹었더라도 우리는 남들이 가보지 못한 늦은 밤 피렌체의 으슥한 골목을 돌아다닌 추억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피렌체의 기억으로 남지 않았을까.


낯선 곳에서 길을 헤매고 다니는 것이 즐거운 이유는 그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행은 그래서 심장을 더욱 두근거리게 만드는 늘 새롭고 짜릿한 묘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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