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회의에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할까?

논의만 하는 회의에서 결정하는 회의로 재 설계하는 방법

by 희영

“조금 더 생각해보죠”

“다음 회의에서 다시 이야기해요”


긴 시간을 투자해 열띤 토론을 했지만, 정작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참석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충분히 이야기한 것 같지만, 회의실을 나서는 순간 개개인의 해석은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결국 실행은 흐려지고 다음 회의 안건은 지난번 논의했던 그 안건이 됩니다.


흔히 회의가 많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결정이 없는 회의가 많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회의를 하지만, 정작 회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의사결정은 자주 미뤄집니다. 의견은 넘치지만 책임은 사라지고, 토론은 길어지지만 방향은 흐려집니다.


이는 개인의 소극성이나 리더의 우유부단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의사결정 없는 회의는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권한과 책임이 명확하게 설계되지 않은 조직의 위험 신호입니다. 결정권자는 드러나지 않고, 모두가 참석하지만 누구도 최종 책임자가 아닙니다. 결국 회의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목적에서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변하게 되죠.


이 글에서는 왜 많은 조직이 회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지 그리고 HR이 무엇을 설계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회의에서 의사결정이 미뤄지는 이유


결정권자가 불분명한 경우
많은 사람이 회의에 참석하지만 정작 이 안건을 최종적으로 의사결정해야 하는 사람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직급이 가장 높은 사람이 결정권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들 동의하거나 문제가 없으면 이라는 조건이 붙습니다. 최종 결정권이 역할이 아니라 분위기 또는 합의에 맡겨진 회의에서는 언제나 의사결정이 미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의견을 내지만 누구도 결정의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회의의 목적이 불분명한 경우
회의의 목적이 정보 공유인지, 아이디어 도출인지, 의사결정인지 명확하지 않으면 참여자는 회의의 방향을 쉽게 잃습니다. 어떤 의견을 내야 하는지, 어디까지 논의해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목적이 불분명한 회의에서는 논의 시간은 길어지고 의사결정은 흐려집니다. 회의가 많아질수록 중요한 결정은 오히려 회의 밖에서 비공식적으로 이뤄지고, 회의는 그 결정을 사후 공유하는 자리로 전락합니다.


합의를 의사결정으로 착각하는 경우
의견을 듣는 과정과 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다릅니다. 그러나 많은 조직에서는 ‘충분히 논의했는가’가 결정의 기준이 됩니다. 반대 의견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면 결정을 내리지 않고, 모두가 편안해질 때까지 논의를 이어갑니다. 그 결과, 회의는 결정을 위한 자리가 아닌 불편함을 제거하는 과정이 됩니다.


결정의 책임이 평가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
결정은 언제나 리스크를 동반합니다. 그러나 그 리스크를 감당했을 때의 보상과 실패했을 때의 책임이 평가에 연결되지 않는 조직에서는 누구도 선뜻 결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HR이 성과 창출 유무만 평가하고 의사결정의 맥락과 책임을 다루지 않는 순간, 회의 참석자는 가장 안전한 선택지인 결정하지 않는 것을 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HR은 무엇을 설계해야 하나?


의사결정이 전제된 회의 유형 구분
모든 회의가 결정을 내려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어떤 회의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는 데에 있죠. HR은 회의 유형과 목적을 명확히 구분하고 의사결정 회의에서는 예외 없이 결정 안건과 결정권자, 결정 시점 등이 사전에 정의되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결정권이 사람이 아니라 역할에 귀속되는 구조 설계
의사결정이 리더 개인의 성향에 따라 흔들리는 조직에서는 회의의 질도 매번 달라집니다. 때문에, HR은 결정권이 역할에 귀속되는 구조로 설계하고 안착 시켜야 합니다. 최종결정자, 의견 제공자, 실행 책임자의 구분이 명확할수록 회의 시간은 짧아지고 결정은 빨라집니다.


회의의 성과를 결정 내용으로 재정의
HR은 회의의 성과를 회의록 작성 여부가 아닌 결정의 유무와 명확성으로 재정의해야 합니다. 의사결정 회의록에는 단순히 논의 요약과 참석자 이름만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다음 내용들이 명확히 기록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의사결정 내용 및 의사결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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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검토 시점


역량 평가와의 연계
조직이 결정하지 않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결정을 해도 달라지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HR은 회의를 역량 검증 장치로 활용하여 누가 구조적으로 사고하는지, 누가 리스크를 인식하는지, 누가 감정이 아니라 논리로 말하는지 등을 살펴보고 평가에 반영해야 합니다.


대표 단일 의사결정 구조를 가진

소규모 조직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소규모 조직, 특히 창업 초기 조직에서는 대표가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직접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비효율의 신호라기 보다 조직의 성장 단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이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채 회의를 ‘함께 결정하는 자리’로 설계했을 때 발생합니다. 최종 결정권은 대표에게 있는데 회의에서 구성원의 합의와 동의를 이끌어 내기 때문이죠. 이러한 회의가 반복될수록 구성원은 ‘어차피 긴 시간 토론해도 결국 대표가 결정할 텐데’ 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대표는 ‘왜 아무도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거야’ 라는 피로를 느끼게 됩니다.


이때 HR이 해야 할 일은 권한 위임을 억지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위임이 어려운 현실에서도 조직이 멈추지 않도록 의사결정 구조를 재 설계하는 것입니다.


결정 분산 대신 투명한 결정 구조 설계
대표 단일 의사결정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설계는 누가 결정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결정하는가를 공유하는 것 입니다. 안건에 따라 구성원이 결정할 수 있는 영역과 대표의 판단을 돕는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여 상호 기대치를 맞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성원은 의견을 내고도 결과에 실망하고 대표는 의견만 많은 회의로 인식하게 됩니다.


회의 질문을 판단 요소 보완 질문으로 구성

대표 단일 결정 구조에서는 회의 질문을 구성원의 의견을 요청하는 질문 대신 대표가 놓칠 수 있는 판단 요소를 보완하는 질문으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A안을 선택했을 때에 발생하는 가장 큰 리스크가 무엇인지, 의사결정을 미루었을 때 발생하는 추가 비용은 얼마인지 등 결정을 위한 판단 근거를 함께 논의하고 정리한다면 결정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구성원 평가 기준을 결정 참여가 아니라 판단 기여로 정의

결정은 대표가 하되 판단은 조직이 함께 만든다 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 때 회의는 신뢰를 회복합니다. 때문에, HR은 회의를 통해 중요한 리스크를 제기한 사람, 실행 관점에서 현실성을 보완한 사람 등을 관찰하고 이들에게 점진적으로 권한을 위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회의를 바꾸는 일은 단순히 회의 스킬을 교육하고 바꾸는 문제가 아닙니다. 조직이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구조를 재 설계하는 일이며, 그 중심에는 HR이 있습니다. HR이 이 영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한 회의는 계속해서 책임을 미루는 장치로 남게 될 것 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어떤가요?

회의에 대한 구성원의 불만이 반복되고 있다면 지금이 적기입니다. HR이 구조의 문제를 인식하고 의사결정 흐름을 재 설계할 때, 회의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는 자리가 아니라 조직의 속도를 높이는 장치로 작동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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