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의 풍경은 잔인할 만큼 대조적이다.
창가 자리의 박 과장은 오늘도 모니터 속 엑셀 시트와 씨름 중이다.
그의 등은 거북목이 될 정도로 굽어 있고, 책상엔 빈 커피잔만 쌓여간다.
반면, 건너편 이 과장의 자리는 한산하다.
그는 이번 주말 이사님과의 라운딩을 위해 골프장 날씨를 체크하고, 의전 차량을 예약하느라 분주하다.
그리고 대망의 승진 발표 날.
회사는 박 과장의 '데이터'가 아니라 최 과장의 '골프 가방'을 선택했다.
탕비실에서는 자조 섞인 수군거림이 들려온다.
"역시 일만 잘하면 뭐 해. 줄을 잘 서야지."
성실함이 미련함으로 치부되고, 기민한 아부가 능력으로 포장되는 순간.
우리는 묵묵히 일했던 박 과장의 뒷모습을 보며 묻게 된다.
이 조직에서 '실력'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이 씁쓸한 풍경 위로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이 겹쳐진다.
인간을 몰아내고 동물들의 낙원을 꿈꾸었던 그곳에는 두 부류의 동물이 있었다.
특권을 누리며 지시하는 '돼지'들과, 묵묵히 땀 흘려 일하는 '다른 동물'들.
그중 가장 눈에 밟히는 건 짐수레를 끄는 말, '복서'다.
우직한 그는 남들이 잘 때도 일어나 풍차를 건설하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한다.
"내가 더 열심히 일하겠다! 나폴레옹(지도자) 동무는 언제나 옳다!"
하지만 복서가 과로로 쓰러져 폐가 망가지자, 돼지들은 그를 병원으로 보내지 않는다.
폐마 도살업자에게 그를 팔아넘기고, 그 돈으로 자신들이 마실 위스키 한 상자를 사들인다.
줄(권력)을 잡은 돼지들은 살찌고, 일만 했던 말은 위스키 값으로 치환되는 비극.
승진 누락 통보를 받고 짐을 싸는 박 과장의 모습은 슬프게도 복서의 최후와 닮아 있다.
도대체 왜 조직은 실력자를 홀대하고 간신을 곁에 두는 걸까?
AI에게 이 비합리적인 인사의 원인을 물었다.
AI의 분석은 냉정했습니다.
첫째, '불안한 리더십' 때문이란다.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지 못하는 리더일수록, 업무 능력보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지 않을 '맹목적 충성'을 선호한다.
최 과장의 승진은 리더의 불안이 만들어낸 방어막인 셈이다.
둘째, '복서의 역설'이다.
조직은 복서(박 과장)의 성실함을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당연한 상수'로 여기고 착취한다.
정치력이 없는 성실함은 슬프게도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부품으로 취급받기 쉽다는 점이다.
우리는 복서의 비극에서 배워야 한다.
"내가 더 열심히 하면 알아주겠지"라는 순진한 믿음은, 부패한 농장(조직)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박 과장,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야근이 아니라 '농장 밖을 보는 눈'이다.
복서의 실수는 세상의 전부가 '동물농장'이라고 믿은 것이다.
담장 밖, 즉 '시장'에서 나의 가치를 확인해야 한다.
최 과장이 이사님 옆에 줄을 설 때, 박 과장은 업계의 네트워크에 줄을 대야 한다.
줄을 서라는 선배의 말은 틀렸다.
우리는 줄을 서는 사람들이 아니다.
스스로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최 과장은 결국 '이사님의 사람'으로 남겠지만, 박 과장은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가 되어 농장을 떠날 것이다.
누가 진정한 승자인지는, 회사가 아닌 시장이 증명해 줄 것이다.
"그러니 박 과장님, 부디 기죽지 마세오. 당신은 위스키에 취한 돼지가 아니라, 드넓은 초원을 달릴 명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