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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부규 Aug 10. 2023

출판 업계에서 용접 기술자로 변신 성공, 그 비결은?

[퇴직 후 새 인생 개척한 소시민 이야기] 베테랑 용접산업기사 남단엘씨



남단엘

(가명, 58세)

※ 인터뷰하신 분의 요청에 의해 이름과 얼굴을 비공개 처리함을 양해바랍니다.


▶2009년 12월 31일 (주)○○(학습지) 퇴사(19년 차)
▶2010년 8월 13일 용접기능사, 용접산업기사 국가기술자격증 취득
▶2011년 11월 수도권 (주)○○○○에 용접 기술자로 입사, 현재 제작팀장



사무 직종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다 40대 중반에 기술 직종으로 갈아탄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다. 개인적으로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 결정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절실함이 있었고, 본인 적성에도 맞았던 천재일우가 있었다. 쉽지 않은 길을 각고의 노력으로 버텨내며 인생 2막을 성공적으로 개척하여 베테랑 기술자가 된 남단엘 씨(58)를 지난 7월 말 만났다. 그는 죽기 살기로 앞만 보고 달려가지 말고 시야를 조금만 확장하거나 바꾸어 보면 더 넓은 길이 보일 것이라고 조언한다. (글쓴이 말)






◈ 전 직장을 퇴직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대형 학습지 회사보다 규모가 작은 회사에 대학 졸업하고 바로 입사해서 19년 동안 다녔어요. 45세 때쯤이었어요. 회사 경영 상황이 위태로워지고 또 저출산으로 초등학교 취학 아동이 차츰 감소하는 추세에 따라 학습지 시장 전체가 많이 위축되는 상황이었죠.

비전이 없어서 2009년 12월 말 회사가 파산하기 1년 전쯤 나왔어요. 제가 관리 분야에서 일했으니까, 월급이 다 나오지 않는다거나 제때 나오지 않고 미뤄지는 걸 보고 결정을 했죠. 최종적으로 퇴사할 때 700만 원 정도 못 받고 나왔어요."
                                     

용접 중인 남단엘 씨



◈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현재의 일을 하게 되셨나요?


"학습지 회사에서 어쩔 수 없이 퇴사는 했지만 고민이 많았어요. 제가 뭐를 해야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전혀 없었거든요. 동종 업계로 옮길까도 생각해 봤지만, 업계 자체가 기울어 가는 상황에서 오래 버티기가 힘들겠더라고요. 길게 갈 수 있는 업종에 대해 조사를 해봤죠. 결국엔 기술이더라고요. 전기, 보일러 등등 다양하게 알아봤는데 그래도 생계 걱정을 하지 않을 정도의 수입이 보장되는 기술이 '용접'이었어요.


여기저기 알아보니까 정부에서 교육비용을 지원해 주는 재취업 과정이 있었어요. 고용노동부와 연결된 사설 직업전문학교나 한국폴리텍Ⅱ대학에서 직업교육을 무료로 받을 수 있었어요. 저는 인천에 있는 직업전문학교에서 7개월 교육을 받았어요. 그때 용접 자격증 두 개(용접기능사+용접산업기사)를 취득했어요. 그 후 어떤 회사에서 용접 기술자를 뽑는다기에 처음 면접 보러 갔었죠. 자격증이 있어서 그런지 실제 용접 테스트 없이 구두 면접만 보고 채용되었어요."


남단엘 씨의 용접산업기사 국가기술자격증

  

◈ 사무직에서 현장 기술자로 변신. 쉽지 않았을 텐데


"그 당시 우리 아이 둘이 고등학생과 중학생이라 돈이 많이 필요했어요. 퇴사 후 절실한 마음으로 용접 기술을 배웠고 취직(직원 10여 명 회사) 후에도 점심시간(대부분 낮잠 시간)에 저는 부족한 기술을 보완하기 위해 용접 연습을 꾸준히 했어요. 어떤 날은 잔업이 끝나고 밤 8시 반쯤부터 1시간 정도 또 연습했어요. 모르는 게 있으면 직장 동료에게 질문하고 인터넷 검색도 하면서 꾸준히 공부했어요. 그런 식으로 기술을 익힌 덕에 13개월 후 더 큰 회사(직원 50여 명)로 옮길 수 있었어요. 이 회사에서 약 12년 정도됐습니다."


◈ 하루의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우리 회사는 제품 조립을 위한 중간단계 재료인 기본 틀을 만들어서 ○○○전자 납품업체에 납품하고 있어요. 아침 8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밤 8시 반에 일과가 끝나요. 보통은 5시까지 일하고 끝날 수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잔업을 해요. 쉬는 시간은 점심과 저녁 식사 때 한 시간 쉬고, 시간대별로 직원들이 알아서 잘 쉬어요."


◈ 용접하신 지 14년 차이신데 처음 용접 업계에 몸담았을 때 일의 강도는 어땠나요?


"제 인생 첫 직장인 출판 쪽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계속 머릿속으로 기획하거나 어떤 프로세스가 잘 흘러가게끔 총괄하는 역할을 해야 하니까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했거든요. 지금 여기는 육체적 피로가 훨씬 많아요. 그렇지만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일의 강도는 훨씬 낮아요. 중간 정도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용접 첫 직장에서는 정말 초보 같은 마음으로 일했죠. 10년 이상 지난 지금은 도면까지 분석하면서 물건을 만드니까 수준이 많이 높아진 거죠."


◈ 용접 기술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와 있나요?


"지금 회사 제품에서 어떤 도면이 오더라도 이렇게 저렇게 관리를 했을 때 품질 등 모든 면에서 순조롭게 제작할 수 있다면 최고 수준이죠. 그 정도는 된다고 생각해요. 난도가 높은 기술이 있어야 하는 제품은 제가 많이 하고 있어요. 제가 취급하는 제품은 스테인레스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요. 제품 아래 판과 중간에 둥근 통을 접합하는 어려운 용접이에요."


제품별 용접 부위



◈ 용접 일을 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어떤 준비를 미리 해야 할까요?


"직업전문학교에 가서 배우는 게 제일 빠를 것 같은데 그보다 마음가짐이 더 중요해요. 기술을 배우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막상 가서 하다 보면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제가 직업학교 졸업할 때 27명이 함께했었는데 졸업 후 계속 이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은 반도 안 될 거예요.


본인이 적응하려고 하는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하고 기본적으로 눈썰미나 손기술이 있어야 발전할 수 있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나무로 뭐든 만드는 걸 되게 좋아했었어요. 출판업계보다는 용접 기술이 저한테는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제2 인생을 제대로 찾은 거죠. 출판업계에 종사한 세월도 무시할 수 없어요. 거기서 배운 게 많거든요."




◈  출판업계에 있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신 것 같은데요?


"'이거 내가 만들었어' 하고 누군가에게 보여줄 때 그 성취감이나 자부심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어요. 나만 가지고 있는 특별한 기술이 있기에 뿌듯하고, 또 어렵사리 뛰어든 새 인생이 적성에 맞는 것도 큰 기쁨이지요."


◈ 전직 후 가장 힘든 순간이 있었다면?


"전직 초반에는 용접 초보라 급여가 낮아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고, 직종이 바뀌면서 갑자기 육체 활동을 많이 하니까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용접하려고 앉았다가 일어서면 어지러운 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이제는 운동을 많이 하고 있어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어요."


◈ 이 일을 하시면서 보람이 있었다면?


"제가 회사에 제안을 여러 차례 했었어요. 지금은 안 하지만 예전의 회사에 출근하면 아침에 체조하고 구호를 외치는 시간이 있었지요. 그 구호를 새롭고 간단하고 누구나 알기 쉽게 만들어서 제출했는데 압도적인 지지로 채택되었어요. 포상금으로 50만 원 받았어요. 어떤 때는 태블릿PC를 포상 품으로 받아서 우리 애들한테 준 적도 있었어요."


◈ AI 로봇 시대가 성큼 다가왔는데 전망은 어떨까요?


"우리 회사에도 로봇이 두 대 있어요. 그런데 로봇 활용을 100% 할 수가 없어요. 중소기업에서 자동차 회사처럼 대규모 정형화된 로봇 작업장을 갖출 수도 없고 다양한 제품을 프로그램화하여 맞출 수가 없어요. 일일이 사람 손에 의해 작업할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우리가 작업하고 있는 제품을 예로 들면 전체가 100이라고 할 때 로봇 용접기를 적용할 수 있는 작업이 5% 정도밖에 안 돼요. 아직은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망은 좋아요."


◈ 60세 은퇴자가 용접 기술을 1년 정도 배워서 취업할 수 있을까요?


"일단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의지와 기본적인 역량만 있으면 충분히 취업할 수 있어요. 지원 인력이 없어요. 용접 업계는 서류상의 정년은 있겠지만, 실질적인 정년은 거의 없어요. 저도 60세 넘어도 계속 일할 수 있어요. 회사에서 필요한 사람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달라지죠."


 수입은?


"용접 첫 회사에서는 2010년 연봉으로 2400만 원 받았어요. 초보 기술자라도 대부분 최저임금보다 더 많이 받긴 했지만 학습지 회사보다 훨씬 적었죠. (2010년 최저시급 4110원, 2023년 9620원) 현 직장에서는 연봉으로 6000만 원 조금 넘게 받아요. 연말 성과급은 해마다 있는 게 아니어서 급여로 보긴 어렵지만, 3년 전인가 190만 원 받은 적이 있었어요."


◈ 끝으로 "이 얘기는 꼭 해야겠다" 하는 게 있으신가요?


"자기가 해왔던 패턴을 바꾸는 건 정말 두려운 거거든요. 두려움은 있지만, 시야를 조금만 확장하거나 바꾸면 갈 길이 넓어진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어요. 죽기 살기로 앞만 보고 달려가지 말고 주변을 살펴보라는 거예요. 많은 다른 길과 방법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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