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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부규 Nov 06. 2023

아파트 공동현관 옆 마늘 찧는 할머니

작은 절구에서 나는 소리가 그립다.

2023.11.5. 일요일

일요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아파트 내 산책로를 따라 걷기 운동을 하러 나왔다.
한 바퀴 돌았을 때쯤 가볍게 한두 방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더 많은 비가 올까 봐 가까운 거리에서 빙빙 돌기로 하고 걷고 있었다.

어디선가 절구 찧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어릴 적에 어머니를 도와 작은 절구를 아주 많이 찧어 보았기에 그 소리가 익숙하게 들린다. 아파트 공동현관 옆 개방된 공간에서 마늘을 찧고 계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연세가 80대 정도 되어 보인다.

출처 : Pixabay


아내의 말에 의하면 며칠 전에도 마늘을 찧고 있었다고 한다. 마늘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었느냐고 물으니까, 옆을 지나가면서 대충 곁눈질로 봤을 때 김장철이 얼마 안 남았으니 미리 마늘을 찧고 계시나 보다 어림짐작했다고 한다. 그때는 조금 허름한 옷을 입고 있어서 어떤 말 못 할 사연이 있으신 분이 아닌가 하고 걱정스럽게 생각하며 지나쳤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은 곱게 차려입으시고 스카프까지 목에 두르고 열심히 마늘을 찧고 계셨다. 아파트를 몇 바퀴 돌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니 모두 찧으셨는지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고 계셨다. 허리를 곧게 펴지 못하시고 공동현관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에서 내 어릴 적 돌아가신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머니께서 살아 계신다면 바로 저 모습이 아닐까 싶다.

틀림없이 자식들이 있을 텐데 그리고 믹서기도 있을 텐데 왜 그것도 바깥에 나오셔서 여러 차례 마늘을 찧고 계시는 걸까?
여러 가지 추측을 할 수는 있겠지만, 저 할머니의 사정은 그 집안만이 안다. 아파트 집 안에서 마늘을 찧자니 층간소음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니까 바깥으로 나왔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30평이 넘는 큰 아파트에 혼자 사시지는 않을 게고, 아들 내외나 딸 집에서 함께 살고 계실 것으로 추정은 가능하지만, 그렇다면 저렇게 바깥에서 그것도 이웃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장소에서 마늘을 찧는다는 것은 필시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무성하다.

마늘 찧던 절구며 마늘을 실은 작은 수레를 끌고 가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참 고우셨다. 안타까운 것은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시면서 팔에 힘이 남아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수척하셨다.

부디 건강하시고 다음부턴 마늘 찧지 마시고 가벼운 산책하러 나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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