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새 인생 개척 소시민]이효진 작가 "무인가게는 꿈을 준 선택"
◈ 2020년 7월 20년 방송작가 퇴직 (프리랜서, 제주MBC, 아리랑국제방송, TBN 제주교통방송) 후 아동문학 작가, 글쓰기 교사 활동
◈ 2025년 4월 1일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창업
◈ 2026년 4월 6일 동화책 <찍혔어, 내 양심> 출간
◈ <오마이뉴스> '아동문학 작가로 가는 길목에서', '무인가게 설명서' 연재, 유튜브 채널 <작가의식탁TV>
20년 방송작가, 아동문학 작가, 글쓰기 교사에서 무인 가게 대표까지 다양한 삶을 살아온 이효진(50)씨가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지난 13일 인터뷰했다. (기자말)
▶ 방송작가 활동을 20년 이상 하셨는데, 일을 그만두는 시점에서 가장 크게 울린 내면의 목소리는?
"대학 때부터 취업에 대한 고민 없이 바로 방송작가 일을 시작했어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맡으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현장을 살아왔죠. 방송작가는 무대 앞에 서기보다 늘 뒤에서 MC와 아나운서를 빛나게 하는 역할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나는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계속 떠올랐어요. 누군가를 빛나게 하기 위해 애쓰는 일이 제 일이었지만, 정작 그 관계 안에서 존중받지 못한다면 과연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묻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당신은 이미 20년 경력이 있으니 꼭 그 자리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라는 말을 듣고 방송작가 일을 내려놨어요."
▶ 어떤 과정을 거쳐 무인가게 일을 하게 되었는지와 이 일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합니다. 그리고 이 일은 먹고 살 수 있는 선택인가요, 아니면 버티는 선택인가요?
"무인가게는 2025년 4월에 개업했고, 남편이 과거에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 아이스크림을 납품한 경험이 있어서 해당 업종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어요. 인건비 부담이 없었고, 운영에 큰 시간이 들지 않는 장점이 있었죠.
방송작가 일을 접은 후 집에서 초등생, 중학생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었어요. 무인가게는 수업이 없는 시간에 틈새 운영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죠. 큰 수익보다는 일정한 보조 수입을 얻으면서 기존의 글쓰기 교육활동을 이어갈 수 있어서 창업했어요.
다만 초기 투자금이 충분하지 않아, 유동인구가 많은 핵심 상권이나 임대료가 높은 입지는 선택하기 어려웠어요. 또한 별도의 인테리어 비용을 들이기보다는 비용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건을 우선으로 고려했어요. 우연히 공실 상가를 보게 되었고, 추가적인 인테리어 없이도 바로 활용할 수 있고 임대료 역시 부담이 적은 공간이었어요.
무인가게 일에는 상품을 진열하고 판매된 상품을 확인해서 재주문하는 등의 매장 상품 관리와 어질러진 진열대를 정리하고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을 점검하는 일, 청소까지 모두 제가 직접 해야 해요.
특히 저는 아이스크림뿐만 아니라 비수기를 대비해 가게 한편에 사발면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었어요. 무인아이스크림 가게는 여름에는 매출이 좀 발생하지만, 겨울에는 확연히 줄어들기 때문이죠. 음식이 추가되면서 관리의 손이 더 많이 가게 되었고, 예전처럼 며칠에 한 번이 아니라 더 자주 매장을 확인해야 했어요.
수익 구조만 놓고 보면, 솔직히 이 일은 '돈을 버는 선택'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예를 들어 막대 아이스크림 하나를 팔면 180원 남는 마진으로, 손님이 많이 오지 않는 이상 수익을 내기는 어려워요. 게다가 여름철에는 전기요금 부담이 커서 벌어들인 수익이 그대로 비용으로 빠져나가는 구조예요.
그럼에도 무인가게는 저에게 '꿈을 준 선택'이었어요. 사실 무인가게는 폐업을 고민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에요. 하지만 이 공간이 제 안에 있던 다른 가능성을 움직이게 했어요. 꿈을 실현시켜 준 셈이죠.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늘 아쉬웠던 게 있었어요. 제가 쓴 글과 전하고 싶은 말은 결국 PD의 기획이 되고, MC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면서 제 이름으로 남지 않는다는 거예요. 언젠가는 '나의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아이를 키우던 중 "엄마, 동화작가 해보면 어때?"라는 말 한마디가 계기가 되어 동화를 쓰기 시작했어요. 무인가게에서 실제로 겪은 일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가 <찍혔어, 내 양심>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어요. 무인가게는 동화작가라는 이름으로 제 인생의 2막을 시작하게 해준, 고마운 출발점이 된 거죠."
무인가게가 동화가 되기까지
▶ <찍혔어, 내 양심>에는 실제 무인가게 운영 경험에서 얻은 영감이 담겨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순간들이 작품으로 이어졌나요?
"무인가게를 떠올리면 많은 분이 맨 먼저 걱정하는 것이 '도둑'입니다. 실제로 창업을 고민하는 분들도 '사람이 없는데 물건을 그냥 가져가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을 많이 하셨어요. 저 역시 같은 걱정을 안고 시작했어요. 초반에 예상과 다른 장면들을 많이 보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양심적으로 행동했고, 스스로 결제하고 돌아가는 모습들을 자주 마주하게 되었지요. 그런 장면들은 동화 속에도 그대로 담겨 있어요. 실제로 도둑 사건도 있었어요. 그 사건이 이 이야기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어요.
또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은 '어른의 선택'이에요. 동화는 아이들만 읽는 책이 아니라, 부모가 함께 읽고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 작품은 아이들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른도 함께 읽으며 자신의 선택을 돌아볼 수 있는 이야기로 쓰고 싶었어요."
▶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동화 속 주인공들은 대개 모험을 떠납니다. 중장년 독자들에게 '인생 2막'이라는 모험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챙겨야 할 비밀 병기 하나를 추천한다면?
"인생 2막도 또 다른 '모험'이에요. 제가 쓰는 동화 속 모험을 떠올려보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나가기보다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여정에 가까워요. 인생 2막의 비밀 병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인생 1막을 살아오면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쌓아왔잖아요. 내가 잘해왔던 일, 오랜 시간 반복하며 익숙해진 능력, 그리고 나도 모르게 단단해진 나만의 방식들이 있어요. 그 자산을 버리지 않고 활용하세요. 이미 가지고 있는 강점을 기반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선택이에요.
저 역시 20년 동안 방송작가로 일하며 쌓아온 경험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어요. 방송작가 일을 내려놓았지만, 그 과정에서 길러진 글쓰기 능력과 기획력은 지금의 삶으로 이어졌어요. 그 공통점을 바탕으로 동화작가로 활동하게 되었고, 글쓰기 교육과 창작물 제작으로도 확장해 나가고 있어요."
▶ 무인가게 운영이 겉으로는 편해 보인다는 인식이 있는데, 실제로는 어떤 순간이 사람을 힘들게 하나요?
"가장 힘든 순간은 사람들이 양심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때예요. 무인가게는 단순히 '무인'이 아니라 '양심으로 운영되는 가게'거든요. 무인 운영이다 보니까 기본적인 질서가 지켜지지 않을 때가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매장 안에 휴게 공간을 마련해 두고 정수기와 전자레인지까지 설치했는데, 외부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고 전자레인지를 사용한 뒤 쓰레기까지 버리고 가면서 매장 상품은 이용하지도 않는 경우가 있어요.
또 에어컨을 켜둔 채 문을 열어놓고 나가거나, 매장 물건이 아닌 것을 가져와서 사용하고 정리하지 않는 일도 있어요. 특히 일부 아이들은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무질서하게 행동해요.
저는 무인가게를 통해 '양심'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자주 찾는 공간인 만큼, 이곳에서의 경험이 아이들 마음에 오래 남는 작은 배움의 씨앗이 되기를 바랐어요. 그런 마음이 담겨 <찍혔어, 내 양심>이라는 동화를 쓰게 되었어요."
예상치 못한 기쁨의 순간들
▶ 무인가게 운영과 동화작가라는 전혀 다른 길에서 예상 못 했던 기쁨은 언제였나요?
"무인가게를 운영하면서 느낀 가장 큰 기쁨은 사람들이 '양심'을 지켜주는 순간이었어요. 처음에는 사람이 없는 공간이라 오히려 질서가 무너질 수도 있을 거라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실제로는 그 반대의 장면들을 자주 보게 되었어요.
누가 보지 않아도 스스로 결제하고, 질서를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생각보다 더 따뜻하고,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구나'라는 것을 느꼈어요. 또 매장 안에 작고 하얀 칠판이 있는데, 그곳에 "사장님 응원해요", "대박 나세요", "가격이 너무 좋아요"라는 글들이 남겨져 있었어요.
그런 글들을 볼 때마다 예상하지 못했던 위로와 기쁨이 밀려오더라고요. 무엇보다, 무인가게를 통해 <찍혔어, 내 양심>이라는 이야기가 탄생했고, 동화 작가라는 새로운 길로 이어졌다는 점 자체가 제게는 큰 기쁨이죠.
▶ 무인 가게, 이 길을 꿈꾸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하는 준비 사항과 전망은?
"무인가게는 겉으로 보기보다 훨씬 세밀한 준비가 필요해요. 특히 중요한 것은 '입지'와 '고객층에 대한 이해'예요. 일반적으로 무인가게는 아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가게는 오히려 연령대가 높은 분들이 많이 와요.
그러다 보니 단순히 기계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는 운영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데 집중했어요. 무인 주문기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용 방법을 단계별로 안내하고, 글뿐만 아니라 사진을 활용해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매장 안에 부착해 두었어요.
무인가게는 단순히 '사람이 없는 가게'가 아니라, '사람이 없어도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설계'가 중요한 공간이에요.
또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은 수익 구조예요. 특히 아이스크림 가게는 여름이 성수기이긴 하지만, 냉동 설비로 인한 전기요금 부담이 상당합니다. 이걸 어떻게 감당하느냐에 따라 실제 수익이 달라져요.
아이스크림만으로 운영하기보다는 계절이나 상황에 맞게 다른 상품을 함께 구성하는 방향도 고민하고 있어요. 또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이기에 임대료 부담이 낮은 상가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수익을 높이기 위해 무인가게를 여러 개 운영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무인가게의 전망은 가게가 계속 늘어나는 만큼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여요. 단순히 '무인이니까 편하다'라는 접근보다는, 어떤 고객이 이용하는 공간인지, 그리고 그 공간을 어떻게 더 편하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함께 필요해요. 결국 무인가게는 편한 사업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노력이 많이 필요한 사업'인 거죠."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현재까지 총 69화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전 인터뷰 기사가 궁금하시면 책 <퇴직 후 나는 다른 일을 한다>(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2999879)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