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은 개인이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활동 또는 습관을 의미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 회사 업무를 시작하는 순서 등이 대표적인 예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루틴이 많기로 유명하다. 타자들이 타석에서 투수의 공을 기다리면서, 투수들이 공을 던지기 전에 반복하는 행동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루틴의 장점은 특정 상황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리바이스 청바지, 뉴발란스 운동화, 검은 터틀넥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루 24시간, ‘월화수목금토일’은 일상을 지배하는 강력한 루틴이다. 조직에서도 업무수행의 효율을 높이고자 다양한 루틴을 만든다. 모든 조직에서 만드는 각종 회의체가 대표적이다. 필자가 속한 조직의 사업부에서도 매년 초 다양한 정기 회의체를 결정한다. 사업부 내부 팀별 현안회의, 사업부 외부 조직과의 정기적인 현안회의, 사업부 전략 달성을 위한 주제별 회의체가 대표적이다. 그 결과 사업부장이 한해 회사에서 보낼 시간 중 30% 이상은 사전에 결정된다. 조직 내 업무루틴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조건과 상관없이 특정 주기별로 반복하는 회의체 같은 루틴과, 완료보고와 같이 특정조건을 충족했을 때 수행하는 루틴이 있다.
운영부서는 업무의 특성상 반복하는 업무가 많다. 예를 들어 은행 지점에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하루를 마감하기 위해, 대출과 같은 특정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같은 업무를 반복한다. 이러한 반복업무는 최근 로봇을 활용한 자동화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운영업무와 달리 프로젝트는 특성상 매 프로젝트마다 루틴을 정해야 한다.
업무루틴이 제공하는 장점은?
- 무엇을 할지, 언제 할지 고민할 시간이 줄어든다.
조직에서 루틴업무가 정착되면 그 업무를 수행하는 당위성을 부여받는다. 따라서 개인들은 루틴업무로 채워진 시간들은 무엇을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만큼 개인의 업무계획수립에 투입되는 시간은 줄어드는 셈이다. 예를 들어 00 팀장이 사업부장이 요청한 업무를 언제 보고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긴급하지 않는 대면 보고는 주 또는 월단위로 예정된 회의체에서 보고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바쁜 사업부장의 일정과 품질팀장의 일정 중에서 빈 시간을 찾아서 일정예약을 해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회의에 배석하는 임원이 많아지면 일정조정은 더욱 힘들어진다.
- 업무 거버넌스를 위한 도구가 된다.
많은 업무 루틴들이 업무를 확인하고 점검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업무루틴들은 잘 활용하면 관리의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다. 지켜보지 않는 냄비는 빨리 끓는다는 말이 있다. 업무 루틴들은 지켜보지 않는 냄비를 줄여준다. 다만 업무를 점검하는 루틴이 잘못 운영되면 관료적인 프로세스로 변질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문제는 축소하고 성과를 포장하기 위한 보고서만 양산하는 업무루틴은 문제예방이라는 목적은 사라지고 보고라는 수단만 남는다.
- 조직원들의 긴장을 관리할 수 있다.
개인이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이 있듯이 조직원들도 긴장하여 협업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관리팀이 주관하는 연간 경영예산 확정, 기획팀이 주관하는 전략회의, 마케팅팀이 주관하는 국제 전시회 준비는 해당팀의 조직원들이 해당업무를 수행하는 기간 동안 긴장도가 매우 높아진다. 월마다 반복되는 업무루틴은 위의 예보다 긴장도가 낮지만 조직원들을 관리하기엔 좋다. 예를 들어 월 1회 사업부 품질현안과 모범사례를 공유하는 품질회의를 매월 4주 차 수요일에 진행한다면 3주 차와 4주 차의 품질팀원들의 업무긴장도는 높아진다.
아래 그림에서 세로선은 매월 전사 품질회의를 운영하는 일자이고 곡선은 품질팀의 긴장감을 의미한다. 품질회의에서 다루는 현안에 따라 긴장감의 크기와 준비기간의 모양은 매월 다르지만 품질회의를 정점으로 조직의 긴장감이 높아지는 모양을 반복하며 이는 곧 조직의 리듬이 된다. 높은 수준의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고 낮은 수준의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조직의 건강에 좋지 않다. 적정 수준의 긴장감을 유지하거나 아래 그림과 같이 긴장감이 변하지만 규칙적인 리듬을 가져가는 것이 조직의 건강에 좋을 것이다.
업무리듬과 조직의 긴장감 예
- 루틴을 통해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
조직원들이 집중하는 업무루틴은 대나무의 매듭과도 같다. 하나의 업무를 잘 매듭짓고 다음 업무를 매듭짓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조직이 성장할 수 있다. 물론 업무 루틴은 성장의 기회만 제공할 뿐이고 그것을 잘하는 것은 별개다. 월간 품질회의를 사업부 품질향상을 위해 잘 운영할 수도 있지만, 잘못 운영하면 매월 정기적으로 조직원들의 시간을 낭비하는 회의체로 전락할 수도 있다.
-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할지 예측 가능하다.
루틴이 있는 업무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업무도 예측가능하다. 루틴업무는 일정뿐만 아니라 역할도 정하기 때문이다. 이는 조직 내 의사소통을 효율적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4주 주기로 반복되는 스프린트가 있을 때 스프린트 계획수립, 사용자 스토리 리뷰, 개발, 스프린트 리뷰를 위해 누가 언제 무엇을 할지 프로젝트 팀원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협업하는 업무의 내용에 집중하여 의사소통하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일정에 대한 의사소통도 해야 한다.
프로젝트의 업무루틴 관리 시 유의할 사항은?
운영조직은 오랫동안 유사한 업무를 같은 사람들이 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업무루틴이 생겨나고 사람들이 그에 적응한다. 반면 프로젝트는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업무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기 때문에 대부분이 백지인 상태이다. 프로젝트 관리자는 새로운 조직을 어떤 리듬으로 관리할지 고민해야 한다. 작곡은 계획수립에 해당하고 지휘는 관리에 해당한다. 좋은 작곡을 훌륭한 지휘자 아래 훌륭한 연주자들이 연주할 때 좋은 음악이 만들어지듯이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이다. 프로젝트 팀이 어떤 리듬으로 긴장감을 가지게 할 것인지는 계획하기도 쉽지 않고 계획대로 팀원들을 움직이게 하기도 힘들다. 프로젝트 팀의 리듬이나 긴장감이 드라마의 배우 대사처럼 프로젝트 계획서의 WBS에 괄호를 넣어 ‘프로젝트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가지고’를 쓰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워터폴 방식의 프로젝트 긴장감은 아래 그림과 같이 설계완료 이후 통합테스트 시작 전까지 긴 시간을 긴장감의 큰 변화 없이 유지하다, 통합테스트부터 시스템 오픈 이후 안정화까지 긴장감이 최고에 달한다.
워터폴 프로젝트의 긴장감
스프린트를 적용하는 애자일 프로젝트의 긴장감은 어떨까? 프로젝트의 긴장감은 일정준수에 대한 스트레스와 비슷하다. 일정을 준수할 수 있고 품질에 문제가 없으면 긴장감이 높지 않다. 일감이 많아 일정준수가 염려되고, 몰랐던 품질이슈가 발생할 때 긴장감은 높아진다. 따라서 프로젝트의 긴장감은 프로젝트 이슈의 심각도에 비례한다. 애자일을 제대로 적용하면 몰랐던 프로젝트 이슈가 후반부에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따라서 프로젝트 후반부의 긴장감이나 스트레스의 크기가 워터폴을 적용한 프로젝트보다 작을 것이다. 물론 애자일 프로젝트에서도 통합테스트나 오픈 시점의 긴장감은 스프린트의 긴장감보다는 높다. ‘프로젝트 긴장감 총량’이 방법론과 상관없이 비슷하다고 가정해도 애자일 프로젝트는 긴장감을 스프린트라는 반복되는 리듬 속에서 나누어 소화한다.
애자일 프로젝트의 긴장감
애자일의 12가지 원칙 중에 업무리듬과 관련된 다음의 원칙이 있다.
‘애자일 방법론은 지속할 수 있는 개발을 장려한다. 후원자, 개발자, 사용자는 일정한 속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지속할 수 있는 개발은 이해관계자와 프로젝트 팀원이 합의 가능한 속도를 찾을 때 가능하다. 너무 빠른 속도는 프로젝트 팀을 힘들게 하고, 너무 느린 속도는 이해관계자들이 허용하지 않는다. 일단 그 속도를 찾아 합의한다면 다음은 그 속도를 유지하면 된다. 속도를 유지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리듬을 찾고 반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월 마지막 주에 다음 달에 릴리스할 기능을 정의하고, 매월 첫 주에 그 달에 출시할 기능에 대한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매주 금요일 오후에 진행 현황을 리뷰하고, 매월 마지막 주에 그 달에 완료한 기능을 리뷰하는 식이다. 물론 매달 개발하는 물량은 일정 수준에서 유지해야 한다. 애자일 방법론에서는 프로젝트 팀의 릴리즈 주기를 케이던스(cadence)라고 한다. 케이던스는 1분에 자전거 페달 밟는 횟수, 화성학에서는 음악을 끝내는 방법(종지법)으로 사용하지만 의미는 같다.
릴리즈 주기를 일정하게 유지했을 때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고객중심의 상품기획과 프로젝트 관리, 2002>에서 인용)
- 개발 팀 내부에 지속 가능한 리듬을 만든다.
최초 출시를 위한 프로젝트가 모든 것을 쏟아붓는 단거리 경주라면, 출시 이후 운영은 상품을 단종하기 전까지 지속하는 마라톤에 비유할 수 있다. 마라톤의 페이스처럼 개발 팀이 소화 가능한 리듬을 만들지 못하면 릴리즈 주기를 유지할 수 없다. 리듬은 업무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예를 들어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 개선된 상품기능을 릴리즈 한다고 하자. 계획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월 마지막 주에 다음 달 릴리즈 기능을 확정하고, 매월 초엔 릴리즈 계획을 수립하고,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는 릴리즈 기능에 대한 쇼케이스를 하면 많은 작업들의 루틴이 정해질 것이다. 상품개발 팀은 에러를 고치고, 조직에서 요구하는 개발 외 업무도 수행하면서 소화 가능한 신규개발 업무의 규모를 나름대로 체득하게 된다.
- 상품기획, 영업, 마케팅 업무도 반복적인 리듬을 따른다.
매월 신규 기능을 릴리즈하려면 상품개발 팀 외 유관조직도 반복적인 리듬을 따라야 한다. 상품관리자는 매월 정해진 시점까지 상품 요구사항의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한다. 우선순위가 결정되면 영업·마케팅 팀은 요청한 신규기능이 언제쯤 릴리즈될지 예측할 수 있으며, 금월에 릴리즈 할 기능이 최종 확정되는 시점이 언제인지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상품개발 외 업무도 정해진 리듬을 따르고 일정을 예측할 수 있다.
- 품질수준이 높아진다.
일정 주기로 릴리즈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도 변경에 유연해야 하고, 코드품질도 좋아야 한다.
- 일정준수를 위한 버퍼 확보나 학생 신드롬을 최소화시킨다.
1개월 동안 팀이 할 수 있는 업무 규모에 대해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버퍼를 확보할 필요가 없고, 확보도 어려워진다. 또한 규칙적인 리듬에 따라 일을 하기 때문에 마감일에 임박해 일을 하는 학생 신드롬이 줄어든다.
- 릴리즈 주기가 짧으면 비효율적 요소를 제거할 수 있다.
릴리즈 주기가 짧아지면 각종 비효율(불필요 문서, 단계별 검토의 비효율 등) 요소를 제거할 수 있다. 짧은 릴리즈 주기를 유지할 수 있는 조직일수록 그만큼 상품개발의 비효율이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