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일에 회의적인 이유
돌이켜보면 보람되고 즐거운 순간도 있었기에
관련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키보드 앞에만 앉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이번엔 나의 현 상황을 기반으로 풀어보려 한다.
현재 나는 화면해설 작가를 준비 중이다.
심화과정까지 교육을 마치고 단편 영화 한 편과 장편 영화 일부의 화면해설을 작성했다.
(일로 했다기 보단 실습이다.)
더 많은 화면해설을 하고 싶어 일거리를 알아보고 있는데,
방송작가보다 루트 찾기가 어렵다. 바늘구멍이란 걸 알고 있지만 더 폐쇄적이다.
구인구직 사이트도 없고... 쉽지 않네.
아무튼, 10년 넘게 방송일을 하다가 갑자기 다른 일을 하자고 결심한 건
스스로도 쉽지 않았다. 같은 작가라 불려도 일자체는 다르니까.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대본을 쓰는 일 자체는 좋지만, 문제는 사람이다.
대부분 여자들로 이뤄진 작가팀.
막내 때는 그저 열심히 하면 됐는데, 서브가 되면서부터는 그게 아니었다.
일도 잘해야 하지만 메인작가 밑에서 충직함을 유지해야 했다.
입안의 사탕, 딸랑이처럼.
메인이 작가팀 대표로 피디의 딸랑이라면, 메인 밑의 작가들은
그런 메인의 노고를 알고 피디 욕을 하면 거들어 같이 욕하고 위로도 해줘야 하는 것이다.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행동들을 천성적으로 잘하게 타고난 애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입도 잘 털고 메인과 쿵작도 잘 맞고 알아서 입안의 사탕을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앞에서 꼬리 흔드는 사람한테 끌리는 법.
어느새 난 연차만 높고 팀에서 겉도는 서브가 돼있었다.
팀에서 더 오래 있었고 실력도 인정받고 이런 건 부차적인 게 돼버렸지.
원래 계획은 새 프로그램이 기획되면 기획단계부터 참여해
그 프로그램과 함께 나오려고 했는데, 이것도 내 것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나와버렸다. 붙잡지 않는 메인에 대한 배신감은 한층 더 컸다.
연차는 메인에 가깝지만 팀을 이끈 경험자체는 없었기에 맨땅에 헤딩 같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알아봐서 경력을 이어갔지만
규모있는 프로그램에 메인작가로 들어가기란 어려웠다.
그렇게 방송작가란 일에 다시금 벽을 느끼고, 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과 부대낌이 적을거란 건 착각이다.
프로그램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작가는 팀으로 움직인다.
예능은 더 많을 것이다.
최소 메인-막내인 2명부터 시작하니까. 내가 있던 곳은 5명이었다.
수다가 넘치는 여초 업무환경에 능하다면 몰라도 정반대인 나에겐
10년의 기간도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다 눈을 돌려 찾은 것이 화면해설작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