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취미마저 헤비합니다.
드리님. 지금쯤 볼리비아의 어디 지역에서 여행하고 계실까요? 문뜩 궁금합니다. 아마도 드리님 특유의 유머스러움으로 그 지역 사람들과 어울리며 맥주 한잔하고 계시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합니다.
편지가 늦게 도달한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 역시 컨디션 저하로 글 쓰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던 날, 이해해 주셨잖아요? 서로를 배려하면, 더 좋은 글이 나오리라 믿어요. 부디 여행 간 곳에선 아프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새로운 취미가 생긴 거에 대해 축하합니다.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는 소식은 아쉬울 따름이지만, 기타를 즐기다 보면 또 다른 글 소재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는 음악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리라 믿으며, 새 취미를 온전히 더 즐기셨으면 합니다.
이번엔 제 취미를 공개하겠습니다. 글쓰기를 제외한 제 취미 중 하나는 운동입니다. 정확히는 헬스죠. 그렇다고 3대 500을 거뜬히 해내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절대 아니고요. 그냥 달리고 기구 운동 그 자체를 취미로 즐길 뿐입니다. 원래는 운동을 정말 좋아하지 않았지만,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죠.
사실, 저는 운동을 정말 좋아하지 않습니다. 10대 시절부터, 체육이 싫은 과목 중 하나였고요. 남들이 금방 하는 걸 나는 몇십 번을 반복해서야 해낼 수 있었기에, 정말 혐오했습니다. 20대가 되어서도, 다이어트가 아니면 운동이랑 거리를 뒀습니다. 살 빼는 목적으로 헬스장 러닝머신 타는 게 저에겐 가장 익숙했기에, 2017년 바다 마라톤 10km 참가도 간신히 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맨정신에 말고, 술기운에 말입니다.
“마, 한번 해보자!”
“하, 진짜 하기 싫은데……. 알겠어. 이번만이다!”
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진짜 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빌었죠. “당일 날 비가 폭우처럼 쏟아져서 대회가 중단되게 해주세요.” Dreams come true!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2017년 10월 15일, 믿을 수 없게도 비가 폭우처럼 쏟아졌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날씨에도 마라톤은 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비바람에 맞서 싸우며 저는 뛰기 시작했습니다. 비를 맞다 보니, 조금씩 오한이 들었습니다. 바다에서 불어 드는 바람까지 맞으니, 추위로 인해 덜덜 떨려왔어요. 그 상태로 부산 광안대교 위를 걷는다는 건, 생사의 문제로 연결되었습니다. 마라톤이고 뭐고 일단 살아남아야 했어요. 그래서 걷는 것을 포기했고, 따뜻해지기 위해서라도 뛰어야만 했죠. 생존의 본능 덕분에, 완주를 해낼 수 있었고, 10km 59분이란 놀라운 기록까지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부턴 헬스장에선 러닝머신 위에 올라가는 게 익숙한 루틴이 되었습니다. 20대 때까진 30분 5km 쉬웠는데, 이젠 35분은 투자해야 5km를 뛰더라고요. 이렇게 나이를 먹는 게 생생히 느껴집니다.
러닝머신 다음으론, 유산소 기구로 유명한 천국의 계단 타는 걸 즐겼습니다. 연예인들이 애용한다는 그 기구를 보자마자, 일단 타고 봤습니다. 도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소문이 자자한 걸까? 그 궁금증은 단 10분 만에 풀렸습니다. 왜냐고요? 10분만 타도 죽을 거 같다는 걸 생생하게 체험했기에! 속도 6km/h로 10분 탔을 뿐입니다. 그 덕분에 허벅지 감각도 없어졌고요. 거기까지면 다행이겠다만, 심지어 영혼마저도 모조리 사라지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때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거다! 이거 하루에 한 번씩 꾸준히 타면 다이어트 100% 성공한다! 그렇게 하루에 한 번씩 [천국의 계단] 위에 올라탔습니다. 계단을 수없이 타며, 본의 아니게 한 가지 일을 추가로 더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왜 과자를 엄청나게 먹었지? 나 자신에게 사과하자. 미안하다.”
“하, 술 좀 적당히 마실걸! 으악!!! 당분간 술 먹지 않겠습니다.”
“치킨? 생각도 안 나……. 아니, 먹고 싶지도 않아. 집에 가서 식단도 조절하겠습니다.”
“먹는 양 줄이라고요? 아! 당연히 덜 먹어야죠! 무조건 줄이겠습니다. 아니, 그냥 아예 먹지 말까요? 솔직히 말하면, 먹을 자신이 없어요. 입에 밥을 넣을 의욕조차 사라졌어요…….”
눈치채셨나요? 바로 고해성사입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저는 무교입니다. 매일매일 고해성사(?)와 더불어 [천국의 계단] 위에서 살아가다 보니, 10분에서 20분으로, 속도는 6에서 8로 점점 늘기 시작했고요. 그렇게 4개월 정도 이용하다 보니, 한 번 탈 때 1,000kcal 이상 소모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집중했고, [천국의 계단]과 더불어 다른 기구들까지 사용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으며, 15kg 감량까지 해냈습니다.
참고로,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롯데 자이언츠 덕분입니다. 천국의 계단 위에서 롯데의 패배를 목격할 때마다, 솟구쳐 올라오는 분노 때문에, 그 화를 다스리고자 계단 위에서 쉽게 내려올 수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러닝머신을 오래 타게 해주는 것 역시 자이언츠 덕분이네요.
또 다른 취미는 ‘읽기’입니다. 일단 책 읽는 걸 무척 좋아합니다. 한 주에 한 권씩은 꼭 읽고자 노력하지만, 막상 쉽진 않습니다. 그리고 웹소설 ‘읽기’ 역시 매우 좋아합니다.
첫 시작은 [달빛조각사]였습니다. 친구의 추천으로 시작한 [달빛조각사]. 재밌습니다. 정말로. 보면 볼수록 빠져듭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계속 보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레벨을 올리고 장비를 맞추며 적들과 싸우는 성장 소설이긴 하나, 특이합니다. 주인공이 항상 고통을 받아요. 끊임없이. 말이 안 되는 난이도의 퀘스트가 나타나고요. 그런데, 이를 상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깨고 맙니다. ‘이건 못 해내겠지?’ 하는 것도 삶에서 배운 지혜, 인간관계에서 얻은 노련함으로 해결하는 무서운 주인공을 볼 수 있는 게 바로 [달빛 조각사]입니다. 참고로, 주인공이 겪는 괴로움은 외부적인 요인도 있지만, 스스로 만들어 낸 것도 있어요. 이 소설만 5회독을 했습니다. 1,450화를 말이죠. 진짜 스스로 생각해도 웹소설에 미친 놈입니다. 드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놈은 웹소설조차도 헤비하게 즐기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끝나면 다행이지만, 이게 시작입니다. 본격적으로 웹소설에 몰두하기 시작한 제가 2번째로 접한 건 바로 [나 혼자만 레벨업]입니다. 최근에는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이 유명한 웹소설을 무려 3회 반복해서 봤습니다. [달빛 조각사]와 마찬가지로 성장물이긴 하나, 완전히 달랐어요. F등급으로 폐급 취급을 받던 주인공이 새로운 기회를 얻어 S급으로 성장하며 눈앞에 주어진 위기들을 해결하는 이야기인데, 갈등의 전개, 주인공의 해결 방식, 위기를 넘기는 방법들 등 작가의 필력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그런 웹소설입니다. 구성도 깔끔하며, 회차도 적당해요. 270화! 이 역시 5번 읽었고요. 언젠가는 또 볼 겁니다. 꼭! 그만큼 완벽한 소설이었던 [나 혼자만 레벨업]입니다.
그 이외 주인공 인성이 파탄 났으나, 엉망진창인 인성으로 주어진 문제들을 어떻게든 풀어나가는 산지직송님의 [도굴왕] (총 415화, 3회독), [재앙급 영웅님이 귀환하셨다] (총 509화, 2회독). 거대한 세계관을 구성하며, 마치 어벤져스급 그 이상의 웹소설을 펼쳐낼 걸로 보이는 [두 번 사는 랭커] (총 862화, 2회독), [부서진 성좌의 회귀] (570화, 1회독). 대학원에 다니다 죽은 이의 영혼이 이계의 마법학교에 갔다! 한국 대학원생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진짜 대학원이 이만큼 무서운 곳인가 싶게 만드는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 (연재 중, 현재 833화까지 읽음). 지금 언급한 게 다 제가 읽은 것들입니다. 꽤 많죠? 양도 어마어마하고요.
참고로 말하자면 여기까지가 카카오페이지에서 완독했거나 현재 보는 중인 웹소설입니다. 네이버에서 보는 건 더 많습니다. 외전마저 300화 이상 연재하고자 하는, 미친 전개력 [전지적 독자시점]. 개인적으로 가장 필력이 뛰어나다고 여기면서, 전개마저도 예측하기가 가장 어려운 [게임 속 바바리안으로 살아남기].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한 [나 혼자 만렙 뉴비]. 2024년 1월 21일 기준 6억 2,459만 명이 다운을 받았고, 평점 9.29이며, 현재까지 1,659화가 나와 언제 끝날까 궁금한 무림소설 [화산귀환]. 근본의 무림소설로 이것을 읽지 않으면 무림소설은 보지 않은 거라고 할 수 있는 (매우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광마회귀]. 의사의 머리에 AI가 들어갔다? 하다 하다 종교화까지 되는, 나마저 그 종교에 빠져(?)들어 갈 거 같은 기분인 [A.I.닥터].
그 이외에도 [천화서고 대공자], [절대 검감], [천재타자가 강속구를 숨김], [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 [66666년 만에 환생한 흑마법사], [재벌집 막내아들], [운명을 보는 회사원], [취사병, 전설이 되다], [나노마신], [마신강림], [국세청 망나니]. 이것들도 다 읽었습니다. 막상 쓰고 나니, 제가 생각해도 저는 정말 웹소설을 많이 봤습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웹소설을 봤는지 계산하려다가,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확실한 건 꽤 많은 돈을 썼다는 사실이고, 이 기세라면 앞으로 더 많은 쿠키를 구울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정확한 숫자를 알게 되면 왠지 현타 맞을 거 같아서, 계산하는 걸 포기했어요.
독서를 통해 다양한 책을 접하고, 웹소설로 만난 여러 이야기로 깨닫는 바가 있다면, 저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는 겁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더 열심히 글쓰기에 몰입했습니다. 제가 즐기는 운동, 글쓰기! 둘 다 티가 나는 엄청난 변화를 동반하는 취미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남들이 알아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죠. 그러면 어떤가요? 스스로가 만족한다면 꾸준히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 자신을 위해 노력하다 보니, 기회가 닿아 책도 낼 수 있었고, 언젠간 또 출간 도전할 겁니다. 죽기 전엔 베스트셀러 내보는 게 꿈이고요. 운동을 통해 다이어트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다이어트는 죽기 전까지 하는 거라고……. 최근 증량의 시기가 찾아와, 다시 다이어트에 돌입해야 합니다. 하여튼 운동 역시 즐기며 건강을 유지하고자 합니다.
운동을 통해 그날의 스트레스를 어떻게든 더 해소합니다. 환자분들에게 말하는 건강의 중요성을 저 역시 찾으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거죠. 글을 통해서 내 내면을 좀 더 알아가기도 하고요. 운동과 독서! 그게 저의 스트레스 푸는 방식입니다. 단지, 선을 지키지 못하는 헤비한 사람이라 천국의 계단 2,000kcal 타는 식도 있고, 웹소설을 주체하지 못하고 보는 경향도 있긴 하지만, 그게 뭐 어떻나요? 제가 즐거우면 된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명품 가방을 사는 것처럼 과소비는 아니니깐, 괜찮을 거라 스스로 다독여 봅니다.
드리님의 지난 답장을 통해 덕업일치에 대해 깊게 고민했습니다. 모든 일이 덕업일치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덕업일치가 되더라도 무조건 행복할 수 없긴 합니다. 그런 관점으로 롯데 자이언츠에 대해 돌아봤습니다. 야구 역시 프로의 측면, 즉 돈을 버는 입장으로 들어가게 되면, 마냥 운동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구를 행복하게 시작했던 이들도, 프로의 세계에선 마냥 행복하지 못할 거란 거죠. 그게 어쩌면 드리님이 직장으로 롯데를 선택할 수 없었던 이유와 연결되지 않을까 싶어요. 야구를 야구로만 즐기는 게 오히려 행복할지도 모릅니다. 저에게 의료지원 자체가 즐거운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역시 짧고도 짧은 순간이었기에 행복한 기억으로 남은 걸지도 모릅니다. 평생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면, 야구를 즐기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도. 그렇기에, 드리님이 즐기는 기타, 제가 즐기는 웹소설 보기, 운동 등의 취미 역시 취미로 국한되기에 행복하게 즐길 수 있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덕업일치로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이야말로 부러운 인생입니다.
드리님의 이번 여행 이야기가 궁금해요. 남미의 볼리비아라는 곳을 선택한 이유부터 그곳에서 겪고 있다는 이야기들 전체를 알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야구 덕후답게 자이언츠의 2024시즌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부디, 야구를 핑계로 한 드리님의 또 다른 모습들을 글로 만나보길 기대하며, 다음 편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야구 이야기를 핑계로, 야구보단 취미 이야기를 90%로 가득 채운 헤비한 롯데 자이언츠 팬 주니 드림.
[이전 편지]
http://brunch.co.kr/@drikim/24
[이후 편지]
http://brunch.co.kr/@drikim/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