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의 기록
10년전 처음 포르투갈에 갔을 때 렐루 서점에 들렸다. 어느날 낮에 방문했다. 서점은 텅 비어 있었다. 몇명의 손님들만이 여기저기서 책을 고르고 또 읽어 보고 있었다. 서점을 상징하는 곡선의 계단이 있었지만 아무도 거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텅 빈 그 층계 앞에서 사진을 찍었음은 물론이다.
시간이 흘러, 렐루 서점이 유명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로 가득찬 사진들을 보곤 내가 갔던 그 서점이 맞나 싶어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다. 입장 티켓을 따로 팔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제 갈 때까지 갔구나 싶었다. 그것은 서점이기를 포기한다는 선언이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문은 들었지만 10년만에, 렐루 서점을 직접 두 발로 찾아가게 되었다. 9시반 오픈인데 10분전에 갔다. 이미 줄이 길었다. 옆에 건물 하나를 통채로 티켓 오피스로 쓰고 있었다. 그곳에서 한참 줄을 서서 표를 샀고, 9시반 정각에 서점 문은 열렸다. 관광객들은 인생샷을 찍으러 쏟아져 들어갔다. 내가 보았던 텅 빈 곡선 계단은 없었다. 서로 사진을 찍기 위해 경쟁하고 싸우는 전쟁터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서점은 사람으로 가득찼지만 아무도 책을 읽지 않았다. 책 읽는 척 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 예쁜 책 한권을 골라 들었을 뿐이다.
아무도 책을 보지 않는 서점. 렐루 서점에서 책을 팔기 위해 생각한 고육지책은 입장료인 5 유로를 책을 구입할시에 상품권처럼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둘째로는 부담없이 관광객들이 책을 사갈 수 있게 세계 명작들을 작은 문고판으로 특별히 제작했다. 감각적인 표지 디자인에 내지에는 렐루 서점에서 만들었다고 써 있으니 기념품으로 그만이다. 피노키오, 앨리스, 오만과 편견등 누구나 아는 명작들이니 책의 재미 또한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사는 이들중 과연 몇명이나 실제로 책을 읽을지는 모르지만 덕분에 그래도 렐루 서점은 ‘책’을 팔고 있다. 이제는 서점이 아닌 관광지라고 불리는 것이 옳겠지만 말이다.
여행이 대중화 될수록 어떤 도시들은, 어떤 장소들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옛 여행자들이 그곳을 좋아했고 즐겼던 이유는 과거의 신화가 되어버리고 관광객들은 나도 왔다 나도 봤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서로를 불쾌하게 만든다. 사람들이란 이상하다. 늘 그곳에 있던 많은 곳들을. 가만 있을때는 관심조차 없다가,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까 자기도 그제서야 좋다고 몰려간다. 누군가 좋아해야 나도 좋아한다. 자신의 힘으로 레스토랑 하나 고르지 못하고 수많은 리뷰에 의지하는 사람들처럼.
사진가로서도 여행자로서도. 나는 언제나 청개구리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더 빨리 어디론가 점프하고 싶도록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도 가지 않는 곳. 나 밖에 없는 곳. 그런 곳들을 많이 가보았다. 하지만 그 장소들이 앞으로도 그런 모습은 아닐 것이다. 렐루 서점이 그랬듯이 언제 갑자기 변해버릴지 모른다. 내가 10년전에 방문한 렐루 서점은 지금의 렐루 서점이 아니다. 그 변화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겠지만, 변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게 아무도 모르는 그 시간에 나는 그 곳에 있고 싶다. 그것이 사진가로서 내가 여행하는 이유다.
-10년전, 아무도 찾아오지 않던 평화로운 렐루 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