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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시한 날

셔터를 내리며

by 승환

셔터를 내리며



마지막 인적이 사라지기 전까지

도시는 아직 잠들지 않았다.


골목 끝의 가로등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흔들린다.

네온사인이 꺼진 거리,

나는 마지막 불빛의 껍질을 뜯어낸다.


한 무리의 취한 젊은이들이 지나가면

씁쓸한 미소가 내 발목을 붙잡는다.


소떼와 양들이 몰려가는 이유를

생각한다.

한 마리씩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고

떨어진 자는 기억되지 않는다.

지갑 속 명함들이

천천히 바스러진다.


젊은 날의 꿈은 시들어버렸다.

행복이 부자는 아니었지만,

가난은 더더욱 아니었다.


나는 믿는다.

못난 건 내가 아니라,

세상이 나를 비껴 흘러간 것임을.


이제 나를 대신 잘라줄 사람도 없다.

그래서 나는 잘리지 못한

불쌍한 중년이 되었다.


욕심을 버리려 애써도,

욕망을 잊으려 애써도

끝내 꿈을 믿는다.


장사는 남는 게 없다는 말이

자꾸 되뇌어져 씨가 되었다.

이제 나는 한 달씩,

다음 달의 목숨을 먼저 살며

죽은 과거를 메운다.


하루는 끝나지 않고,

다 커버린 아이가 있고

늙지 않는 아내가 있다.

그들은 나를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그래도 집으로 가야 한다.

갈 곳이 없다.

나를 받아줄 무리 속으로.


밤안개처럼 뿌연 하루를 닫는다.


나는

셔터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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