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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시한 날

하프문베타

by 승환

하프문베타



장미를 꺾었다.

피를 머금은 채 물 속으로 떨어진다.


물결이 폐처럼 움직이고

지느러미가 펼쳐진다.


피는 어항 벽을 따라

천천히 경계를 그었다.

그 경계를 찢고 나오는

하프문베타를 보았다.


붉은 웨딩드레스를 펼치듯

자신의 그림자를 키운다.


소리없는 기척이 퍼진다.

우리는 같은 어항 안에 있었지만

서로의 온도를 알지 못했다.


물결을 따라 가다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춤은 두 그림자를

겹치지 못한 채 흔들었고

그 흔들림이

이별인지 끝인지

알 수 없었다.


떨어져야만 보이는 것들

빛의 가장자리,

네 얼굴의 뒷면,

장미가 물이 되는 순간들.


하프문베타,

우리는 서로를 견딜 수 없어

의미 없는 춤사위를 펼쳤고

누군가 하나 사라질 때까지

숨을 참았다.


조금 더 먼 곳에서

떨어져 보아야

빛나고 아름다운 생이라는 사실.


빈 어항을 기울이자

붉은 달이 떠올랐다.

하나가 떠올랐다.

너였는지

나였는지

알 수 없는 붉은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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